월간참여사회 2005년 06월 2005-06-01   957

명예철학박사학위, 그까짓 것 그냥…

대학은 12세기 무렵 유럽의 살레르노, 볼로냐, 파리 등에서 설립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의 시험 제도, 학위 제도, 그리고 바칼라리우스(baccalarius)라는 명칭과 가운 등은 모두 이슬람 세계의 교육제도를 본뜬 것이다. 중세 유럽의 십자군이 ‘성전’을 명분으로 이슬람 세계를 약탈했던 침략전쟁이 대학제도 수입의 계기가 된 것이다.

이슬람 세계의 교육 기관에서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주제 별로 이야자(ijazah)라는 학위를 주었다. 이것으로부터 유럽 대학에서 독터(doctor), 마스터(master), 배첼러(bachelor)라는 학위가 생겨났다. 교수 자격을 증명하는 칭호인 독터는 19세기 초 독일의 근대 대학 형성과정에서 학위제도의 중심으로 정착했다. 근대 독일의 대학에서는 신학, 법학, 의학 등 전통학문에 대해 철학의 우위를 주장했다. 그래서 Ph. D(철학박사)가 박사학위의 전형이 되었다.

이러한 대학제도와 학위제도의 부산물로 학술 및 문화 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특별한 공적을 쌓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박사학위가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미국 극동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와 초대 주한미군사령관인 존 하지였다. 서울대 명예박사학위 3호는 독재자 이승만이었다. 그 밖에 덜레스 미국무장관, 무초 주한미대사,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 고딘 디 엠 베트남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9월의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명예박사학위를 줄 수 있는 국내 대학이 무려 137개에 이른다. 자료를 제출한 108개 대학에서 3703명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주었으며, 이 중 내국인 수여자는 1607명이다. 명예박사학위를 많이 준 대학은 경희대, 한양대,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로 사립대학교였다. 또 1995년 이후 명예박사학위 수여자가 그 이전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 5월 2일 고려대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회장에 대한 학위수여식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무노조 경영이라는 미명으로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며 노조를 탄압하는 삼성 재벌의 총수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학생들의 강력한 반대 시위로 수여식은 재단 이사장실에서 이 회장의 가족과 재단 및 학교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변칙으로 치러졌다. 사실 이 회장의 둘째 딸과 김병관 고려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둘째 아들이 결혼하여 이건희 회장과 김병관 이사장은 사돈지간이다. 그러므로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식은 가족모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개인적 관계에 더해 이건희 회장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을 짓는 데 480억 원의 기부금을 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돈으로 학위를 거래하여 학문의 위기를 자초한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 것이다.

만일 내가 고려대 경비원이라면 이렇게 한 마디 하겠다. “명예철학박사학위 그까짓 것 총질이나 좀 하거나 돈 다발 좀 뿌리면 되지, 뭐 힘든 것 있나? 안 그류?”

박상표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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