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6월 2005-06-01   469

농촌을 지키는 사랑스런 마녀들

면에서 여는 대체의학 강좌를 석 달 째 듣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먹거리를 비롯해 전반적인 생활 개선을 추구하는 목적의 강좌인데, 아무래도 약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냉이, 질경이, 민들레, 엉겅퀴, 쑥과 같이 흔한 풀들이 얼마나 보배로운 존재들인지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다. 나는 특별한 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기회가 닿으면 생활에 활용해보자는 약간의 실용적 동기에서 강의를 듣고 있지만 대체의학 공부가 소득 증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강의를 듣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기능성 전통식품을 개발해 지역 특산물 축제에 내 보자거나 묵히고 있는 산밭에 무엇을 심어보자는 제안을 반신반의하면서도 결코 흘려듣지 않는 수강생들의 분위기로 미루어 본다면 말이다.

강의를 듣는 목적이 무엇이든 이들의 모습은 건강하게 다가온다. 현대인은 아이도 병원에서 환자가 되어 낳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자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육시설과 학교, 학원에 맡겨져 ‘인적자원’으로 관리된다. 현대인은 집을 손수 짓지 못한다. 건강에 관해서는 더 완벽한 무능력자다. 배탈이 나도 병원이나 약국에 달려가야 한다.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사는 데 필요한 돈만 많이 벌면 유능한 생활인으로 인정받는다. 이렇게 뒤집혀진 세상에서 제 몸을 제 힘으로 돌보겠다는 태도는 보기 드물게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십전대보탕을 배운 당일은 이십전대보탕(?)이라도 만들 것처럼 기세 등등해서 집에 돌아가지만 하루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나와 달리 많은 수강생들은 퍽 진지하고 실천적이다. 냉이를 고아 달여 건강식품을 만들기 위해 밤새 냉이를 캤다는 사람도 있다. 대체의학 모임에서 5월 중순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울대 약초원으로 현장학습을 나갔다. 떡과 집에서 담가온 식혜가 전세 버스 안에서 나누어졌다. 간식에서는 가공식품 공장 냄새가 아니라 쌀 냄새, 흙 냄새가 났다. 흐뭇한 마음으로 떡이나 받아먹으면 될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떡과 함께 강도 높은 복습을 받아야 했다. 오래 전 TV로 방영되었던 외화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의 분위기엔 못 미쳤지만 언제 호명돼 대답을 재촉 당할지 몰라 긴장감마저 감도는 분위기였다. 돌아오는 길엔 정리 학습이 이어졌다. 내가 내심 두려워했던, 주부들의 단체 나들이에 으레 따라붙는 음주행위는 없었다. 음주의 단짝친구인 가무도 물론 없었다.

최근 중세 서양의 마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다. 마녀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주술로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사악한 여자들이 아니라 약초를 잘 알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치료한, 지혜롭고 존경받았던 농촌 부인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의료산업의 장악을 노리는 의사 집단에게 축출되는 과정이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녀’가 되기를 자청한 사람들이다. 사실 우리 농촌의 현실은 초월적인 마력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활로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신산(辛酸)하다. 그 힘으로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고, 나아가 무너지는 농가 살림의 한 귀퉁이라도 지탱할 수 있다면 마녀면 어떠랴. 중세의 마녀는 광신적인 박해의 대상이었지만, 이 사랑스런 마녀들은 건강한 농촌공동체의 파수꾼으로 자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도 좋을 것이다.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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