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1월 2012-11-05   1529

[읽자] 사라진 지식인을 찾습니다

사라진 지식인을 찾습니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1월의 책

 

지식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일까.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을 들 수 있을까. 아마 크게 잘못된 선택은 아닐 테지만, 오늘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본다면 오히려 스티브 잡스나 이건희 회장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기업 사회와 혁신을 대표할 뿐 아니라 이들의 생각과 발언이 어떤 지식인보다 대중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래도 이들을 지식인이라 부르기에는 뭔가 부적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도대체 지식인이란 무엇인지, 어떤 이들이 지식인이라 평가받는지,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실천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함께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오늘날, 지식인은 무엇인가

비타 악티바 개념사 시리즈 『지식인』은 ‘개념사’라는 시리즈 이름과 ‘지식인’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식과 지식인의 개념 설명에서 시작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지식인에 대한 관점과 그들에게 요구된 역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각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의 내용과 지식인의 상에 따라 지식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대에는 보편적 진리에 대한 탐구가, 중세에는 종교에 중심을 둔 지적 활동이,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주의가 그리고 18세기에는 계몽주의가 시대를 이끌었는데, 이런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지식인은 지식과 사회의 상호 관계 속에서 규정되며, 기존의 지식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오면 새로운 지식인이 나타나 기존 지식인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 책에는 그람시와 사르트르에서 바우만과 촘스키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아홉 가지 지식인 유형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한데 묶는 건 지식인은 사회의 약자 편에 서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물론 지식 학문이 아닌 정보 학문의 장으로 변한 대학, 즉자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만을 요구하는 미디어 환경, 보편적 지식인이 아닌 전문적 기능인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의 득세 등 현대 지식인은 그 역할을 위협하는 다양한 상황들에 포위당한 형국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간섭이 아닌 연대, 훈계가 아닌 대화로 지식을 나누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희망을 찾는다.

 

제목 없음           제목 없음            제목 없음
     『지식인의 표상』          『지식인의 책임』토니 주트 지음            『지식인의 표상』
    이성재 지음. 책세상           김상우. 오월의봄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최유준 옮김. 마티
   

지식인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제 구체적 현실의 장에서 지식인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볼 차례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가 『지식인의 책임』에서 다룬 세 명의 지식인은 정치가 레옹 블룸, 소설가 알베르 카뮈, 철학자 레몽 아롱이다. 세 인물은 ‘내부 비판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데, 프랑스 사회주의의 수장으로 불리는 레옹 블룸은 비시정권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투사로 존경받지만, 세계주의적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본 탓에 조국 프랑스의 한계를 예민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뮈는 알제리 독립 문제가 불거졌을 때 (완벽하게 옳은 이가 한 명도 없는 상황을 보며) 지식인의 책임은 입장을 정하는 게 아니라 입장이 없으면 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태도로 침묵하며 독립 지지와 반대 양쪽 세력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다. 우파 철학자 아롱은 냉정한 현실주의로 공산주의와 유토피아적 희망에 빠진 지식인들의 무지와 무책임을 가차 없이 비판했고, 덕분에 프랑스 지성계에서 고립되었다. 하지만 외부 학계에서는 오히려 독특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고, 토니 주트는 그가 프랑스 공적 토론의 기틀을 새롭게 세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거라 평가한다. 세 가지 경우 모두 지식인이 정치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고,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시대와 불화했지만 그들에 대한 공동체의 평가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해질 무렵에 겨우 찾아왔다는 저자의 언급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곱씹어볼 지점이다.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에드워드 사이드는 책 제목 『지식인의 표상』처럼 ‘지식인의 표상’으로 불리는 사상가다. 그의 지식인론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망명자로서의 지식인과 아마추어로서의 지식인인데, 전자는 팔레스타인 출신인 자신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지만 지식인은 관습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불안정한 상태의 타자가 되어 쉼 없이 운동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후자는 앞서 언급한 전문적 기능인으로서의 지식인을 거부하며, 이익과 이기심 그리고 편협한 전문화가 아니라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하는 지식인의 태도를 일컫는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행위에서도 그 행위가 국가, 권력,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음을 이해하고, 그곳에서 발견되는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그는 지식인이 세속적 존재라고 말하는데, 이는 신에 대한 믿음 같은 절대적 확신에 대한 반대 표시인 동시에, 지식인의 도덕성이라는 건 결국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권력과 정의를 얼마나 적절히 분별했는지 등 현실에서의 활동에 근거한다는 말이다. 결국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실천하며 지식인을 표상해내야 한다는 말인데, 당연히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에드워드 사이드 자신은 그러한 표상으로서의 삶을 살아냈고, 이 책이 하나의 증거임은 분명하다.

 

한국사회에서 지식인 담론이 사라진 지 오래다. 권력에 복무하며 이익을 좇기 바쁜 지식인에게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거나 요구할 기운조차 사라진 시대이기 때문일까. 오히려 되새겨봐야 할 건 그들과 우리를 나누며 일방적인 선도를 바라는 태도 아닐까. ‘집단 지성’이 상황을 타개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지식인 사회 내부의 자각과 반성을 넘어선 사회 공동체 속에서의 지식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고민이 문제를 풀어갈 시작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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