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0월 2000-10-01   894

아줌마 활동가로 사는 법

3월부터 고양시에서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5년동안 일산에서 살았다지만 바쁘단 핑계로 이웃 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한 상황에서 누구와 무엇부터 시작할까, 생각하면 정말 암담한 시기였다. 당시 우연한 기회에 ‘지하철 화정에서 대화까지’라는 통신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이때 내 닉네임이 바로 ‘쭘마’였다. 20대가 주축이 된 통신모임에서도 나는 아줌마임을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7년간 몸담았던 녹색교통운동을 정리하고 지역운동을 선택했던 것은 아줌마로서의 나를 좀더 잘 가꿔 나가기 위해서였다. 일산에서 종로5가 사무실까지 1시간 30분이라는 출퇴근 시간도 힘겨웠지만 일주일에 반 이상은 유치원 문닫을 시간에도 일을 마치지 못해 다른 친구집에 얹혀 지내야 하는 아들녀석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밥 하고, 엄마랑 책 읽는다고 늦게 잠든 아들녀석을 억지로 깨워 밥 한술이라도 뜨게 하고, 7시 반에 유치원에 보내고, 만원 전철에 오르면 전철 손잡이에 매달려 잠들기 일쑤였다. 일과시간에도 아들의 유치원이 끝나는 7시 반까지는 집에 돌아가야 하므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6시 퇴근 시간, 다 못한 일은 집에서 해야지 하며 주섬 주섬 일감을 챙겨들고 일어나는데 ‘회의 좀 해야겠는데요. 내일은 시간이 없어서….’

순간 아찔해진다.

부리나케 남편에게 전화를 해 보지만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단다. 결국, 유치원에 전화해서 ‘저 오늘 좀 늦을 것 같으니 우리 아들은 유진이 엄마편에 보내주세요. 제가 유진이네 집으로 데리러 갈게요’, 하고 회의실로 들어가지만 회의 시간 내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아줌마들의 시간대에 시간을 맞춰주지 못하는 단체 운영방식이 못내 불만이었지만 항상 무슨 일이든 급하게 터져 정신없이 처리해야 하는 시민단체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라 그냥 가슴만 답답해질 뿐이었다.

이런 일들의 반복….

남편에게 짜증도 내보고 가끔은 아이를 시골에 보내고 편안한 휴가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본질적인 것들은 슈퍼우먼이 되지 않으면 무엇 하나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현실뿐이다. 중앙의 중견 활동가로 살아갈 것인가? 아줌마로 살아갈 것인가? 현실은 나에게 자꾸 선택을 강요한다.

슈퍼우먼이 되기 싫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난 아줌마 활동가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두 가지 다른 길 사이에서 슈퍼우먼이 되기 싫었던 까닭이다. 난 이제 거의 모든 회의에 아들을 데리고 다닌다. 회의시간쯤은 이제 내가 조절할 수 있다.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줌마들이므로 오히려 아줌마인 것이 당당하다.

가정 살림, 예전엔 대충 해도 죄의식이 없었으나 이젠 가정 살림을 잘 해야지만 지역 활동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정 살림에서 불편하다고 느낀 것,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 대부분은 지역운동으로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정살림과 육아 등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핵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면서 일감을 바깥으로 끌고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지역공동체 만들기, 마을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러브호텔 문제로 밤 11시까지 회의를 했다. 같이 회의에 참여하는 지역 시의원 집에 아들녀석을 맡겨놓았던 터라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다. 그러나 활동가들 간의 공동체에서 주민들과의 공동체로 발전하려면 난 아무래도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아직까지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약한 여자보다는 강한 어머니, 당당한 아줌마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아들녀석과 함께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김미영 고양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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