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0월 2000-10-01   913

네티즌들이 뽑은 대중문화 게릴라

가수 이은미 · 자우림

좋은 공연이 하나 있다. 시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자원봉사로 뛰는 공연. 시민들이 제 손으로 만나보고 싶은 가수를 뽑았다. ‘이은미’와 ‘자우림’이 그 영광을 거머쥐게 되었다. 참여연대 문화사업국에서 이 공연을 네티즌들에게 제안했고, 공연기금은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운동기금’으로 기부될 예정이다. 공연은 9월 30일. 예술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진행된다. 공연을 앞두고, 그 주인공들을 만나보았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내려오면서 죽고싶어요. 이번 생은 죽는 날까지 가수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역시 짐작되던 바였다. 무대에서 맨발로 뛰어다니고, 혼신을 다해 노래부르는 모습과 그가 한 말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어, 하고 고개를 끄떡일 시간도 없다. 그가 또다시 열변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노래할 때만큼이나 말하는 것에도 열정이 담겨 있다.

“제 자신이 맑은 크리스탈 잔이었으면 해요. 담고자 하는 음악을 제 몸 속에서 고스란히 담아 투명하게 전달하고 싶은 거죠. 무대에 서는 가수의 모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예요. 일상에서의 어떤 생각, 느낌, 삶의 방법에 따라 그 색깔이 드러나는 거죠.”

이번 공연은 네티즌들이 만나고 싶은 가수를 뽑아 직접 기획한 것임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 내가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놀랐고, 너무 기뻤다. 알다시피 나는 그리 대중성 있는 가수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립싱크 하지 않고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가수는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는 현실에 실망스럽기도 했다.”

시민단체에 대한 생각은?

“외국 사례를 보면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막들이 한국의 상황보다 많이 눈에 띈다. 기본적으로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였으면 한다. 개인들은 각자 역할을 성실히 하면 될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개발풍토는 변해야 한다. 산허리를 다 끊어놓고, 마구잡이로 소비한다. 얼마 전 태국 여행을 갔었는데 그네들은 기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키면서 개발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점이 너무 부러웠다.”

무대 위에 선 그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일상인으로서는 어떤 빛깔일까? 가수가 아니었으면 무엇이 되었겠냐는 질문으로 유추해보려 했다.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선생님이란다. 의외였다. 아마 그런 지향은 삶의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아픈 지난날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몸이 아파 학교생활이 힘들 정도였다. 그때는 밤 시간에 음악을 듣는 것이 그의 전부였고, 언제나 조용한 학생이었다.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은 늘 골골했던 그가 그렇게 열정적인 가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 가수가 된 현재는 어디 아픈 데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를 두고 가수가 되려고 앓은 무병이 아니었겠느냐고도 한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기를 “돈을 벌면 음악인으로서 하고 싶은 것도 있다”고 했다. 음악인으로서의 포부 외에도 그 동안 신세졌던 사람들과 좋은 음악한다고 고생하는 후배들 술도 사주고 싶고, 무엇보다도 ‘선후배들이 어울려 공연할 수 있는 좋은 공연장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돕고 싶다는 생각이 있던 그는, 최근 친한 연예인들과 “매달 5만 원씩이라도 거둬 혼자 사는 무의탁 노인들에게 보일러를 놓든지 장애인들 휠체어를 장만하는 일에 동참하든지”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중요한 것은 ‘지킬 수 있는 것을 하자’입니다.”

그냥 한번 인심쓰는 식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지속적으로 하자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자우림은 사람이 많은지라 다들 모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다른 멤버들이 모이기 전에 이선규 씨(기타)를 먼저 만났다. 이번에 나온 3집은 1, 2집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집이 “신선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면 2집은 “사운드의 질은 높아진 반면 신선한 맛은 다소 떨어진 것”이었다고 했다. 1·2집의 장점을 살린 것이라면?

“지나친 것은 배제했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두 번째로 나타난 이는 구태훈 씨(드럼)였다. 독자들도 금방 미장원에 들러 머리를 뻥 튀겨온 귀여운 그의 모습을 봤어야 했다. “누가 금메달이었어요?라며 장난기 어린 얼굴로 묻는다.

“저희들은 너무 놀랐어요. 저희들 눈엔 자우림을 좋아하는 팬들이 잘 안 보여요. 그런데 저희가 뽑혔다니 너무 기쁘죠.”

이선규 씨의 말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구태훈 씨, 이런 말 할 땐 단호하다. “음악하는 사람은 그저 음악으로 인정받으면 좋겠어요. 음악 외에 부수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상품이 되기 위해서 다른 활동을 많이 해야 하죠. 이렇게 미디어 노출을 살벌하게 강요당하면서 음악하는 데가 한국말고는 없을 거예요.”

이때 김윤아 씨(보컬)가 들어왔다. 자우림은 2집의 다수 곡들이 금지된 적도 있었고, 가사 내용도 기존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는 평이 있다. 이 평가에 대해 물어보았다. “우리는 단순한 것을 추구합니다. 우리 세대 젊은이들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그냥 솔직하게 담은 거죠. 어떤 생각이 들면 그걸로 가감없이 곡을 만들죠.” 이선규 씨의 말을 받아, 구태훈 씨가 “이게 장사가 될 것 같으니까 이런 곡을 만드는, 대중심리를 쫓아가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대로 만든다”며 설명을 보태주고, 마지막으로 김윤아 씨는 “우리가 사회 속에 있는 현상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아요”라고 마무리했다.

얼마 전 부산에 공연을 위해 간 적이 있었다. 옥상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공연 내내 안전을 염려하여 시커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관객들을 ‘착석’시키는 것을 봤다. “그런 분위기에서 공연하면 기분이 되게 더러워요”라고 이선규 씨가 말했다. 김윤아 씨가 옆에서 “그 깡패 같은 사람들이 애들을 때리기까지 했다지?”라며 격분했다.

멤버들은 자리를 이리저리로 옮기고 대답을 번갈아 해가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얘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김진만 씨 (베이스)가 오면서 자리는 다 채워졌다. 아마 자우림의 분위기는 자신들이 말한 것처럼 개인적인 느낌에 솔직하고 자연스런 모습이 어울리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대중문화를 저급한 문화라고 치부하죠. 그러면서 장사를 하죠. 한국은 베끼기 문화예요.”

멤버들은 표절문제를 언급했다. “그리고 매체에 끌려 다니죠. 예전에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한국 대중문화에서 비평이 제대로 굴러가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 대중매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요”라고 김윤아 씨가 말했고, “이 얘기는 3일 밤낮을 새워 얘기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윤아 씨는 “여자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왜? “제가 여자니까요.” 성정체성이 명확한 대답이었다.

“70년대까지 음악은 남성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여자가 부르는 노래도 남성적이었죠. 그래서 저는 여성성이 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그건 느낌으로 알아요.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어떤 기타리스트는 기타를 휘두르면서 ‘난 남자야, 난 남자야’라고 외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희 팀 남성 멤버들은 그런 면에서 배려해주고 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참 고마운 부분이 있어요”라고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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