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0월 2000-10-01   1214

생존마저 위협하는 구멍뚫린 생보자 의료대책

가난에 대한 사회적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진영은 다소 흥분했다.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사람에 대해 국가가(정확히는 세금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사회가) 이를 연대해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이 법의 제정 취지였다. 이 책임에는 생계·주거·의료·교육·해산·장제·자활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저 암울하다. 가난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놓기는커녕 가난은 여전히 세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도 전무한 실정이다.

가난의 세습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교육과 의료이다.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을 경우 가난이 세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현실의 상황에서 건강문제는 더욱 심각하여 가족의 질병이나 사고가 원인이 되어 가계가 가난해진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리나라와 같이 건강보험이 부실한 경우 중산층도 버티기 어려운 의료비를 가난한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 이들은 대개 치료를 포기하고 노동력 상실과 영구적 빈곤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반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사고와 질병이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죽음 앞에 방치된 생보자의 건강권

그렇다면 우리나라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의료이용 실태는 어떠한가. 이론적으로는 완전 사회보장이 이뤄졌지만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의료이용의 현주소는 이와는 자못 다르다.

사진 1은 간경화증으로 복수가 가득찬 환자가 집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경우 곧 복막염이 발생되는 것은 의학적으로는 자명한 사실이다.

사진 2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누워 있는 환자가 돌보아줄 가족이 없어 거대 욕창이 생긴 모습이다.

사진 3은 의료보호1종 독거 노인으로서 방광암이 식도암으로 전이되었으나 경제사정으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는 상태이다.

상대적으로 가족 자원이 충분한 건강보험 대상환자는 이런 경우 대개 의료기관에 가게 된다. 그러나 의료보호 환자의 의료이용은 각종 경로와 여러 이유를 통해 제한 받는다.

무엇보다 큰 제약요건은 경제적 장벽이다. 지금까지는 법적으로 1종 의료보호대상자는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2종의 경우 20%의 진료비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의료보호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각종 비급여 항목으로 인해 실제 본인부담금은 1종의 경우 35%, 2종의 경우 46% 정도에 이른다. 의료보호 환자라하더라도 진료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환자의 평균 본인부담금이 55%인 것과 비교하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의료보호 환자의 특성상 노인이 많고 거동이 불편하여 간병인이나 보장구 등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저소득층(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의 법정 본인부담금을 당연히 없애는 동시에 급여 확대를 통해 실질적인 의료이용의 경제적 장벽을 없애야 할 것이다.

의료보호 환자는 이처럼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각종 차별을 받고 있다. 우선 의료보호 환자는 입원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올바른 의료보호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응급실에 대기시켜 놓고 입원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입원 보증금을 요구하는 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서울경기지역의 모 대학병원 두 곳에서는 의료보호 환자에 대해 10만 원과 50만 원의 보증금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입원중 치료비 중간정산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원래 중간계산서는 현재 의료비가 얼마 나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며 반드시 수납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약자인 환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시내 모 대학병원에서는 중간 수납을 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약을 주지 않는 사례까지도 발견되었다.

생보자 건강 외면하는 병원

최근 의약분업 실시 이후 의료보호 환자에 대한 조제를 기피하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기피 현상은 의료보호에 대한 체불이 심하다는 사실에 기인하며 동시에 규모가 영세한 약국으로서는 전국 각지의 시군구로 조제료와 약가를 신청하기가 매우 번거롭다는 사실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별의 근원은 무엇일까. 한 건강 관련 시민단체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글귀를 그대로 옮겨 본다.

“경기도에 있는 종합병원입니다. 6개월째 8억 원의 의료보호 환자 진료비를 국가로부터 지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선 보험환자와 차별이 없다면 박대할 이유가 없겠지요? 미수금이 많으니 경영난으로 허덕이는 병원에선 당연히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적은 돈도 아닌데 언제 줄지 모르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치료를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차별의 근원은 의료기관일까요? 정부일까요?”

즉, 의료보호환자에 대한 차별의 근원은 의료보호진료비 체불로 평균 진료비 체불기간은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1개월까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보호의 경우 의료기관이 전국의 시군구로 진료비를 청구하게 되어 있으며, 의료보호기금이 중앙에서 교부되어 시군구까지 흘러가고 다시 진료기관으로 지급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의료보호 환자에 대한 진료기관의 차별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에 따라 새로운 법안인 의료급여법을 제안하고 국무회의까지 통과하였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의료급여법에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우선 의료보호 2종환자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그대로 부과하려는 조항이 있으며, 급여의 확대도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더욱이 의료보호대상자의 급여나 건강보호를 위한 시민이나 당사자의 참여 구조를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본인부담금의 20%를 부과하였던 의료보호2종 대상자를 새로 제정될 기초법의 조건부 수급자로 갈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건부 수급자는 소득과 무관하게 근로능력이 인정되어 한시적 자활급여를 통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게 하려는 군을 일컫는다. 이렇듯 한시적으로 자활급여를 받아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려는 이들에게 병이 생겼다 치자. 이들은 당장 소득이 없기 때문에 원활한 의료이용을 할 수 없게 되고 질병은 영구적인 노동력 상실로, 다시 노동력의 상실은 영구적 빈곤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자활을 통해 빈곤계층의 수를 줄여보자는 정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개정 의료보호법, 생보자 건강 ‘모르쇠’

이러한 문제점에 근거해 빈민단체를 중심으로 지난 8월 25일 올바른 의료보호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현재 29개 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에 속해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이번 가을 정기 국회에서 입법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며 향후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 차별사례를 발견하고 행동지침 리플렛을 작성하여 배포하기로 하였다.

물론 공대위의 단기적인 활동 목표는 의료보호법의 개정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의료는 국가가 주는 시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히 찾아야 할 권리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건강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연대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정은일 올바른 의료보호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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