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3월 2018-03-01   532

[통인뉴스] 적폐의 발전사 : 87년 이후 30년의 교훈

적폐의 발전사
: 87년 이후 30년의 교훈

글.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적폐’. 오랜 시간에 걸쳐 겹겹이 쌓인 폐단을 뜻한다. ‘적폐청산’. 두터운 층위를 이룬 폐단을 들춰내고 이로부터 단절하는 것을 말한다. 그 적폐의 지층이 깊고 전반에 걸쳐 스며있다면 이를 폐절(廢絶)하는 것은 부단한 일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우리는 그 적폐를 인식하기조차 싶지 않을 것이다.

 

공통된 인식하에 즉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적폐들, 즉 권력집단과 그들의 강고한 동맹은 미약하게나마 해체의 과정을 겪고 있다. 저항이 빈발하지만, 촛불 이후 ‘국가의 정상화’에 대한 국민적 상식은 그들을 명확히 부패동맹으로 포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적폐의 잔뿌리라면? 심연의 근본적이고 역사적인 거대한 한계 또는 모순이라는 원뿌리의 파생물이라면?

 

촛불이라는 단절적 계기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실재적인 내용으로 채우려면 수동적인 청산이 아닌 그 원뿌리 즉, 구조적 원인을 발견해야 한다. 이는 한국 발전모델의 역사적 경로를 추적하고 그로부터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저개발국가로서 한국이 걸어온 압축적 발전 경로를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적폐의 원뿌리를 발견하고 민주적 자본주의 모델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는 지난 23일, 이병천 강원대 교수를 모시고 <참여사회포럼 :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한국 모델의 교훈>을 개최했다.

 

이병천

 

‘다원적 개발주의’라는 보수적 대안

이 교수는 한국의 경제발전사를 유형화하며 한국모델의 보수적 경로와 민주적 경로를 추적했다. 우선 보수적 경로로서 권위주의적 근대화체제의 박정희 모델을 살펴봤다. 이 모델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압축·고성장의 국가주도 후발 추격발전, 독일과 일본의 계보를 잇는 ‘반동적 근대화’(국가-재벌동맹), 6·25전쟁 경험과 남북 대결주의의 응축으로서 극우적 반공안보국가라는 삼중의 속성을 띄고 있다. 이른바 극우반공적 개발주의라는 예외주의적 체제가 성장 ‘기적’과 적폐 축적의 이중주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국가와 재벌의 지배복합체가 주도하는 개발주의 체제하에 한국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성취했지만, 그 이면엔 국가의 의한 특혜적 지원, 노동자 및 국민의 희생, 재벌에 의한 국가 포획과 정경유착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국가 공공성의 붕괴를 낳았다. 이는 곧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타락하는 퇴행적 경로였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를 계승·발전한 노태우 정부는 개혁적 보수의 가능성의 길로서 새로운 대안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이는 다소 도발적인 해석인데, 성장지향 개발주의가 국가 재벌의 수직적, 폐쇄적 동맹 틀을 일정하게 벗어나 민주화 시대에 표출된 다양한 이해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개발주의의 다원주의적 진화 경로를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 시기에 사회경제의 제도적 조절양식, 노동체제 형성, 재벌에 대한 규제력 획득, 토지공개념 3법 입법·시행, 대외개방 관리의 결과로 소득분배 개선, 소비구매력 증대, 실질임금 상승, 노동시장 유연화 억제 등 국민경제의 안정을 이루었다. 이로부터 [수출 내수의 공진-고투자 성장-유연화가 규제된 고용확대-가계저축]의 거시회로가 선순환을 이루는 축적체제가 작동했고 이 교수는 이를 한국 경제발전사에서 보기 드문 경로라고 평가했다. 물론 다원적 개발주의는 효과적인 재벌규율체제의 결핍, 경영권의 과잉보호와 재벌의 금산복합체적 성격, 자본에 대한 노동의 견제력 미약,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등 한계점이 있었지만 보수적 대안 경로로서 뚜렷한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폴라니적 모순에 처한 ‘자유·복지주의’ 대안

그렇다면 민주적 경로는 어떤 경로를 밟아왔을까? 이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중도자유주의적 대안을 ‘자유·복지주의’라 명명했다. 이는 시장지향과 복지확대, 관치경제 폐해 및 규율공백 상태로부터 탈피, 정치적 노동기본권 신장, 노동부문의 확대(민주노총의 합법화, 노사정위원회)를 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기업-은행, 대-중-소기업, 완제품-부품 생산관계 등에서 위험공유와 자기조정시장의 양식이 해체되면서 노동 유연화, 고용불안, 고용정체를 가져왔고 부동산 규제 정책들이 전면적으로 완화되거나 폐기되었다.

 

이로써 [수출독주-투자양극화-저성장-불안정노동확대-가계부채폭등-부동산투기]의 악순환에 빠진 축적체제가 등장했고, 이러한 ‘과잉’ 시장자유화의 부정적 결과를 방어하기에 생산적 복지는 턱없이 ‘과소’했다. 민주정부 하에서 벌어진 이러한 실패를 이 교수는 ‘폴라니적 모순’(과잉시장과 과소복지간의 모순)이라 표현했다. 이후 자유·복지주의 노선은 5년간 지속되었지만, 이전 시기 개혁의 경로 의존적 성격으로 도리어 저임금, 고용불안이 만성화되었고 자본의 고삐는 한층 더 느슨해졌다. 

 

민주화의 역설, 불편한 진실

한국의 근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중혁명을 꽤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절반의 진실만 보여준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이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의 극우반공 개발주의라는 유산과 민주화 시대의 시장주의/신자유주의가 낳은 이중적폐 유산의 공존 위에 서 있다. 이 교수의 분석대로 97년 이후 10년, 자유복지주의 대안이 87년 초기 다원적 개발주의 대안을 능가한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화의 중대한 역설이자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이러한 뼈아픈 진실 앞에서 민주개혁세력은 어떤 발전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한국은 자신의 역사에서 민주적 자본주의의 준거점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은 포럼 전체를 관통하는 무거운 질문이다. 아직 민주개혁세력은 역사에서 대안적 경로를 성공적으로 보여준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은 민주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에 곧바로 향한다. 적폐청산 이후의 사회를 구성하려는 진보적 시민운동 진영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역설적 진실이라는 적폐의 원인에 해당하는 원뿌리를 마주하고 도려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안적 경로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이라는 수동적 개혁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며, 지난 광장의 항쟁이 ‘혁명’으로 명명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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