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3월 2018-03-01   1238

[특집] 왜 지금 헌법을 바꿔야 하나?

속표지

 

특집1_오늘의 헌법, 내일의 헌법

왜 지금 
헌법을 바꿔야 하나?

 

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 상임운영위원

 

 

헌법 개정 얘기를 하면 흔히 돌아오는 질문들이 있다. “헌법 중요한 거 누가 모르나? 하지만 바꿀 수 있기는 한가?”, “지금 당장 필요한 민생개혁은 뒷전으로 미루고 정치권의 이권다툼으로 정쟁만 격화되는 거 아닌가?” 대개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 걱정이다. 헌법 개정을 정치권에만 맡겨둘 경우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나서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16년 겨울, 광장에서 우리 모두가 확인한 것도 바로 그것 아닌가? 

 

촛불광장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대한민국 헌법으로 

모든 개헌이 혁명은 아니지만 시민의 촛불항쟁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명실상부한 시민혁명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개헌이 수반돼야 한다. 4.19혁명 이후에도, 6월 항쟁 이후에도 헌법을 개정하여 국민이 요구한 권리와 변화한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국민이 뜻이 반영된 헌법 개정은 오직 이 두 차례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시민들의 주권에 대한 자각과 헌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낡은 헌법을 손보는 일도 몇몇 정당과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조건이 성숙한 셈이다. 낡은 헌법을 바꿔야 한다면, 촛불광장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은 지금, 국민의 발언권이 가장 강력한 바로 지금이 헌법 개정의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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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꾸는 개헌

헌법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규정함으로써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헌법이란 결국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내 삶을 규정하는 구조들을 제도적으로 표현한 문서다. 헌법에서 ‘권리’로 인정되면, 국가는 그 추상적인 권리를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추상적으로 헌법에 담는 것과 사회보장권과 국가의 책무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권리담지자인 국민들이 의무 담지자(擔持者)인 국가에 구체적으로 청구할 권리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아동과 노인,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헌법조문을 유지하는 것과 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헌법에 명문화하는 것의 차이도 분명하다.  

 

이번 개헌은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갖는 국민의 권리를 구체화하고 대폭 확대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보장받아야 할 기본 인권과 성평등을 강화하고 구체화하여 조문화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특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지금, 각종 차별을 금지하고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누구도 부당하게 배제되고 추락하지 않도록 각종 헌법적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시대적 과제인 생태위기와 자연재해, 미세먼지와 먹거리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이미 현실이 된 정보사회와 탈산업사회에 대비하는 것도 헌법이 해결할 과제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할 개헌  

87년에 개정되어 30년이 흐른 현행 헌법에는 그동안 극심해져 온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저출산 고령화를 해소할 적극적인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 현행 헌법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으니 헌법 탓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문제해결에 관심이 없는 한가한 소리다. 헌법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헌법을 개정하여 재벌대기업의 독점과 전횡을 막을 적극적 수단, 부동산 투기를 막을 적극적 수단,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육성할 근거, 넘쳐나는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을 해결할 대책, 그리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구적 수단을 헌정질서의 일부로 확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과 사회서비스에 관한 권리,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를 보장받을 권리, 건강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와 학습할 권리, 문화를 향유할 권리, 임신·출산·보육에 관한 권리와 국가의 지원 의무 등을 헌법에 구체화하여 사회적 기본권과 안전망이 온전히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낡은 정치를 바꾸는 개헌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도 개헌은 필수다. 촛불집회 이후에도 국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적폐청산도, 사회대개혁도 국회 앞에만 가면 멈춰 선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민의에 따르지 않고도 그럭저럭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과두제 정치구조,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는 국회가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여 입법 활동과 행정부 견제에 전념하지 않을 때, 국민이 심판할 수단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회만이 문제는 아니다. 국민이 제대로 견제하고 개입할 수 없는 정부와 사법부를 그대로 두고서는 1,700만 명이나 참여한 촛불집회로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도 쉽사리 다시 후퇴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국정농단 사태도 87년 헌법의 미비점 때문에 생겨났다. 87년 헌법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를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도록 개정한 것은 큰 성과였지만, 대통령을 ‘국가원수’니, ‘헌법의 수호자’니 하며 제왕처럼 떠받드는 국부독재 시절의 독소조항이 적지 않다.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사법부를 비롯한 다른 헌법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도 지나치게 크다. 사법부나 검찰, 국정원과 군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의 개입과 장악이 손쉬운 반면, 국민이 통제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이참에 낡은 정치구조, 오래된 특권적 관료통치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촛불의 정신은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 

촛불정신을 온전히 제도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의기구가 작동하지 않을 때 주권자가 직접 나설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것이다. 국회가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지 않을 때 국민이 일정 수의 서명으로 직접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발안제, 국민이 법안을 발의해도 국회가 움직이지 않을 때 국민에게 직접 의견을 구하는 국민투표제, 나아가 부적격 정치인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국민소환제의 도입이야말로, 촛불광장의 정신을 제도화하는 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확대하고 자치권과 저항권을 강화하는 것은 촛불시민들이 당당히 요구해야 할 핵심 개헌과제라 할 수 있다. 

 

탄핵연합은 개헌연합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당장 개헌이 필요한 이유를 열거해 봤다. 이 모든 이유와 당위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굳이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개헌에 목매야 하는가’가 의심된다면 이걸 생각해보자. 

지난해 우리가 사상 유래 없이 평화롭고 압도적인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시민의 의지에 놀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라는 일시적인 연합정치가 작동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연합이 늘 성공적으로 형성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고 압도적 시민행동이 매번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낡은 제도와 정치구조를 그대로 두고 주권자와 주민들의 ‘슬기로운’ 투표행위를 통해서 극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이 앞으로도 압도적인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리라 단정하여 다양한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는 정치구조와 조화롭게 배분된 권력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나중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탄핵운동에 동의했던 70~80%의 국민들과 합리적 보수정치세력들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헌법 개정과 정치 개혁을 위한 연합이 재건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① 

 


졸고, “촛불혁명 연합을 개헌과 선거개혁을 위한 연합으로”, 창비주간논평. 2018. 1. 18

 

 

특집. 오늘의 헌법, 내일의 헌법 2018_3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왜 지금 헌법을 바꿔야 하나? 이태호

2.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개헌 이기우

3. 민주적인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하승수

4. 기본권 개헌의 의미와 내용 박태순

5. 참여민주주의와 인권 실현을 위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 시안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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