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5월 2005-05-01   1252

일본의 우경화,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치 않다. 우경화 원년이라 불리는 1999년 이후 국기·국가법, 주변사태법, 유사법제,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자위대 이라크 파병, 교과서 파동, 영토 문제 등 전후 민주주의의 기본 골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경화의 ‘끝’은 일단 헌법개정일 것이고, 심지어는 일본 핵무장론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경화는 경제력에 걸맞는 군사적·외교적 리더십을 국제사회에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지만, 문제는 주변국과의 충돌·대립·갈등을 조장할 수밖에 없는 역사인식상의 복고주의적 경향과 맞물려서 가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경무장 평화주의에서 친미 중무장 국가주의로

최근 우경화 바람에 의해 부정되고 있는 전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란 보수와 혁신의 대립과 공존에 바탕을 둔 의회민주주의, 고도성장, 그리고 경무장 평화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가운데 경무장 평화주의는 헌법 9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위 ‘해석 개헌’을 통해 자위대를 합헌적 존재로 인정하고, 미일안보조약에 바탕을 둔 미국의 ‘핵우산’을 통해 일본의 안보를 미국에 위탁하는 형태로 지탱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 등의 주변 국가는 일본의 외연을 막아주는 일종의 완충지대나 전투기지 노릇을 하는 대가로 시장, 기술, 자금을 공여받았으며,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반공군사독재국가를 유지했다. 일본 국내적으로는 사회당 등의 호헌 평화세력이 국회 의석의 1/3을 유지함으로써 자민당의 일방적 개헌을 통한 중무장 국가화를 막아 왔다. 호헌 평화주의가 전후 민주주의의 방파제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 전후 민주주의를 지탱해왔던 안팎의 조건이 변화했다. 호헌 평화주의의 대표세력이었던 총평과 사회당은 각각 해체와 몰락을 길을 걸었다. 기지 제공이나 자금 공여를 일본에 요구해왔던 미국은 1990년대 들어 일본에 군사적 위험의 분담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일본의 완충지대·전투기지 역할을 하면서 일본의 경무장 평화주의에 따른 안보 공백을 일부 보완해주던 한국 등의 주변국도 민주화를 겪으면서 완충지대 역할에 ‘이의 제기’를 하기에 이른다. 최근의 일본 우경화는 냉전 해체 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는 가운데, 기존의 경무장 평화주의가 친미 중무장 국가주의로 바뀌는 흐름을 뜻한다.

‘과거사’와 ‘군사대국화’의 분리에서 결합으로

문제는 이와 같은 군사대국화가 왜 역사인식의 ‘전환’과 맞물려 진행되는가이다. 사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일본 정부도 과거사 문제와 군사대국화 문제를 분리시켜 추진할 생각을 일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는 잘못했다. 하지만 헌법개정은 하겠다. 그리고 자위대는 군대화해야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은 2002년 조일정상회담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후, 일본 우파는 ‘머리만 있고 발은 없는’ 고립에서 벗어나 ‘머리와 발을 갖춘’ 네트워크형으로 발전한다. 납치 문제가 정계, 재계, 시민단체 등으로 고립 분산되어 있었던 우파들에게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다. 이후 일본은 주변국과의 갈등을 전면화시키고 중간층에 있는 일본 국민을 재결집시켜 헌법 개정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야스쿠니 신사 문제나 영토 문제는 역사인식의 문제를 국가 간 대결로 몰아가는데 가장 적절한 의제였던 것이다.

‘분리’에서 ‘결합’으로의 일본의 변화를 한국정부는 적절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한국 사회의 여론이 들끓던 시점인 3월 23일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은 그간 자위대 해외파병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놓고, 이제는 재군비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는 고통스런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일본이 사과하고 우리가 이를 받아들여 새로운 파트너십을 선언한 마당에, 보통의 나라들이 일반적으로 누리고 있는 국가의 권능을 일본만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일본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에서 우리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왔습니다.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사 문제에 관해 ‘망언’을 하지 않으면, 헌법개정을 통한 군사대국화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조용한 외교’의 핵심내용일지 모른다. 특히 이라크에 병력을 보낸 현 정권 입장에서 보면,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과 같은 자위대의 외연 확장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사태는 과거사 문제와 군사대국화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정부에게 두 가지 문제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를 들면, 다소 성격이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역사문제와 독도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일본의 안보리 진출에 대해 한국 정부는 명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시민사회에 대한 보편적 관심과 지원 필요한 때

그러나 이 같은 상황 변화를 ‘확인’했다고 해서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일본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일본사회 내부이다. 주변국의 압박은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 다만, 한국 사회가 사용하는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단체 혹은 시민과 연대한다’는 표현에서 ‘양심’이라는 것이 ‘한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의 뜻으로 일방적으로 사용된다면 문제가 있다.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의제와 전선이 오직 한국이라는 좁은 통로 속에서만 이해되는 잘못된 결과를 낳고, 일본의 시민단체가 일본 우익으로부터 ‘한국의 앞잡이’라는 역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는 현재 전후 민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의제와 대치점이 존재한다. 교과서, 독도처럼 한국과의 통로만 가지고 있는 의제들만이 아니라 헌법개정 움직임 등을 포함한 중요한 변화 가능성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 민주화 운동에 쏟아졌던 일본 시민사회의 지원과 관심이 보편적 관점이라는 기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은혜 갚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원과 관심은 ‘한국’이라는 좁은 통로에서 벗어 나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넓은 시야를 갖지 않고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담보될 수 없다. 동북아 평화는 한국만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운명은 서로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이다.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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