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5월 2005-05-01   1046

유엔 인권체제와 인권위원회의 개혁

제 61차 유엔인권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ssion)가 지난 4월 22일 막을 내렸다. 매년 3월 중순에서 4월 말까지 6주간의 회기로 열리는 인권위원회는 경제사회이사회(Economic and Social Council) 산하의 한 기능위원회로 인권에 관한 유엔의 가장 대표적인 기구이며, 유엔헌장에 그 설치 근거를 두고 있다. 현재는 53개 회원국 정부대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정부도 회원국의 하나로 참여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회기동안 인권 주제별로 세계 각 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토론하며, 특정한 인권 상황에 대한 권고와 유엔차원의 조치 등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할 수 있다. 유엔에는 이밖에도 각종 국제 인권조약별 기구들이 있다. 종종 유엔인권위원회와 그 명칭에서 혼동을 가져오는 인권이사회(Committee on Human Rights)는 ‘시민정치적권리규약’을 다루는 위원회이며, 그밖에도 ‘경제사회문화적권리규약’, ‘고문방지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인종차별철폐협약’, ‘아동권협약’ 등 주요 6대 인권규약에 따라 인권상황을 심의하는 위원회들로 구성돼있다. 조약별 기구들은 조약 비준국가들이 매 5년마다 제출하는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에 근거해 심의하며, 조약과 어긋나는 상황에 대해서는 권고를 내릴 수 있다. 한국정부는 열거한 6대 주요 인권조약 모두의 비준국으로, 현재 ‘시민정치적권리규약’ 이행에 관한 정례보고서를 제출해 놓았으며, 내년 중 이에 대한 심의가 있을 예정이다.

유엔헌장과 조약에 따른 인권기구들 외에 중요한 유엔의 인권기능 중에는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라는 것이 있다. 특별절차는 국가별 또는 주제별 인권상황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조사, 분석 등이 필요할 때 결의안 형태를 통해 만들어진다. 최근 북한인권 상황이 주목을 받으면서 언론을 통해 그 이름이 많이 익숙해진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비팃 문타본(vitit muntarbhorn) 교수도 그와 같은 특별절차에 따라 임명된 것이다. 특별절차는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이라는 임명형태 이외에도 실무그룹(working group), 독립전문가(individual expert) 특별대사(special ambassador) 등 여러 가지 다른 명칭을 갖기도 한다. 한국인으로는 서울대학교의 백충현 교수가 1990년대 중반 아프카니스탄 인권상황 특별보고관을 한 차례 역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현재 유엔인권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정진성 교수가 인도의 불가촉천민의 인권상황 관련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되었다.

핵심이슈로 부각된 유엔개혁 논의

제 61차 인권위원회의 의제 중 북한인권 결의안이 국내에서는 가장 큰 관심이슈였으나, 제네바 인권위원회 현장에서 가장 큰 화두는 유엔 인권위를 비롯한 유엔개혁 논의였다. 유엔 개혁논의가 특히 이번 회기에서 핵심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코피 아난 사무총장 산하의 ‘위협과 도전, 변화에 관한 고위급 패널 (High-Level Panel on Threats, Challenges and Change)’이 유엔 주요기구의 역할과 운영에 대한 분석과 권고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유엔 인권위에 대해, “각 정부가 회원국의 지위를 자국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한편 인권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이중 잣대를 적용함으로써 유엔 인권위의 신용과 전문성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유엔인권위의 주된 회의 방식인 ‘일반적 논쟁(general debate)’은 특정국의 인권침해에 대한 지적과 비난, 해당국의 반발과 역비난이 끝없이 이어지는가 하면, 그 수준 또한 인권 언어로 포장된 정치적 성격의 공방으로 인권위원회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의심케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쿠바, 미국과 중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도와 파키스탄 등 그와 같은 충돌의 주요 당사자들만으로도 그 논쟁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위안부, 일본인 납치, 역사교과서왜곡, 북한인권 등의 이슈에 대해 북한과 일본이 사사건건 서로를 비방하며 충돌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권고사항으로 회원국(현재 53개국) 구성을 191개 전체 유엔회원국으로 확대하고 인권분야에 탁월한 전문성과 경험을 지닌 인물이 각 정부대표단을 이끌도록 해야 하며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으로 하여금 전 세계의 인권상황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준비하도록 요청하고 장기적으로는 유엔 인권위를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의 한 기능위원회가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Security Council), 경제사회이사회(Economic and Social Council)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로 승격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민간단체들은 이미 상당부분 제 기능을 상실한 유엔 인권위를 개혁하고 위상을 높이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고 지지하는 반면, 유엔 인권위 회원국 구성을 191개 전체 유엔회원국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결국 어느 국가도 인권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도덕적 정당성 갖는 ‘인권의 주류화’ 모색돼야

인권위원회를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로 대체하자는 코피아난 사무총장의 제안의 목표는 ‘인권의 주류화’에 있다. ‘인권’을 ‘안보’와 대등한 반열로 올리고 유엔의 중심활동의 하나로 설정하겠다는 유엔인권사의 가장 혁신적인 제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 비일비재한 학살, 고문, 실종, 납치 등 비인도적인 범죄와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인권’과 ‘인도주의’를 내세운 ‘개입’의 논리가 도덕적,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1948년 이후 ‘인권’을 명분으로 한 개입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북한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종종 ‘침략’을 치장하는 도구로 전락해 왔다. 이렇듯 상호간 취약한 정당성으로 인해 국가간의 인권 담론은 정치적 논란으로 귀결되어 온 것이다. 벌써부터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인권의 주류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엔개혁에 대한 NGO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시점이다.

박원석 참여연대 사회인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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