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5월 2005-05-01   835

세계 평화로 가는 또 하나의 길

‘대인지뢰 금지운동’

한반도 곳곳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대인지뢰에 노출되어 지뢰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들이 해마다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민간인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피해도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지뢰로 인한 민간인과 군인의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대인지뢰금지운동의 현황과 과제는 무엇인가. 편집자주

4월 1일 국회에서는 지뢰피해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안)을 검토하기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특별법(안)은 지난 3년 동안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 이하 대책회의)가 준비한 내용을 국회 법제관실이 정리해 내놓은 것이다. 대책회의가 많이 양보한 까닭에 별 문제 없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뜻밖에도 정부쪽 참가자로부터 신랄할 정도의 부정적인 반론이 나왔다.

반론 내용은 첫째, 지뢰피해자의 상황을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 보상법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둘째, 국가배상법상 3년 시효가 지난 것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하면 국가배상법이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지뢰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너도나도 보상을 신청함으로써 도덕적 해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 입장도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 않으나 지난 40여 년 간 아무런 죄 없이 지뢰를 밟아 죽거나 다친 민간인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다. 피해자 대부분은 국가권력에 의해 사용된 무기인 지뢰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무장 민간인들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참혹한 현실은 국내에서 철저하게 무관심과 외면만 받아오다 국제적인 지뢰금지운동 활동 덕분에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정부의 이중성 드러낸 대인지뢰

1997년 12월 3일은 캐나다 오타와에서 유엔의 역사적인 대인지뢰전면금지조약(오타와조약)이 성립된 날이다. 오타와조약의 성립에 즈음해 마지막까지 국제적으로 논란이 됐던 것은 바로 한국의 무차별적인 지뢰 사용 문제였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오타와조약의 초안 작성에서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해 예외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했으나 국제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정부는 민간인 피해자가 한국에는 한 명도 없으며, 후방지역에는 지뢰를 사용하지 않고 비무장지대에만 한정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한다고 공언했다.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대인지뢰를 대신할 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대인지뢰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국에서 대인지뢰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계획을 2006년까지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뒤를 이은 부시정부는 이 약속을 어기고 2010년까지 대인지뢰를 사용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로 인해 한국의 지뢰문제는 국제적인 관심사가 됐다. 한국정부는 대인지뢰 사용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대인지뢰금지운동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 유엔이 조성하는 대인지뢰금지운동기금에 매년 자금을 기부하고 있다.

민족 분단과 대치의 상흔, 한반도의 지뢰밭

유엔 오타와조약의 성립을 주도한 국제NGO인 국제대인지뢰전면금지운동(ICBL)과 그 대표 조디 윌리엄스가 1997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됨으로써 지뢰금지운동은 국제적으로 더욱 확산됐다. 이에 앞서 한국에서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몇 개의 NGO들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지뢰문제를 다루기 위한 연대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그 결과 1997년 10월 17개 단체가 참여하는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가 결성됐으며 오타와에서 개최된 조약서명식에 대표를 보냈다. 이와 함께 조디 윌리엄스를 초청해 한국의 지뢰상황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1998년 2월, 경기 파주 금파리를 방문한 윌리엄스는 대인지뢰 피해자 7명에게 의족을 선물했고, 이를 통해 한국에 지뢰 피해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1999년부터 해마다 한국의 지뢰사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ICBL을 통해 유엔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매년 5∼15명의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한편 대책회의는 후방의 지뢰사용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후방 36개 지역에서 대인지뢰를 사용하고 있고, 과거에 사용되던 지뢰밭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렸다.

이러한 보고서들은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에 거짓말을 해왔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조사보고서는 또 한국군이 지뢰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방치함으로써 민간인들의 피해를 방조한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군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우면산에 지뢰를 묻었고, 남한산성이 있는 검단산에도 수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 부산 영도 중리산의 지뢰는 마을 뒷산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었다. 유실지뢰가 논밭으로 흘러 들어가 민간인을 죽고 다치게 했다. 지뢰가 수백 ㎞를 흘러가 해안에서 피서객들의 다리를 날린 참혹한 사건도 속속 알려지게 됐다. 당황한 합동참모본부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후방의 36개 지뢰지대에 묻힌 대인지뢰를 모두 제거하고, 광대한 미확인지뢰지대의 지뢰를 제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때마다 인도적인 측면에서의 지뢰금지운동은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작 국내의 피해자들에게는 의족 하나 만들어 준 적이 없다. 군과 정부는 당연히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절차를 안내하고 적극적으로 보상해야 하며 철조망 관리와 대민 홍보 등 지뢰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들이 국가보상법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오래된 철조망은 잘라지거나 산사태에 밀려 사라진 곳도 많다.

대인지뢰금지운동의 과제

한국의 지뢰금지운동은 민간인 피해자들을 그대로 두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국민적 공감대를 운운하지만 이들의 처참한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이들은 다름 아닌 군인들이 아닌가. 군이 지뢰지대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에게 “폭발물 사고에 군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불법적인 각서를 요구해 국가배상법에 의한 보상청구권의 행사를 억압했으므로 특별법을 통해 보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민간인 지뢰 사망자들은 경찰서 변사사고처리 기록, 부상자는 병원 진료기록이 남겨져 있을 것이므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간인 지뢰 피해자의 구제 외에도 군 작전에 불필요한 미확인지뢰의 제거, 국제적인 지뢰금지운동에 대한 협력, 오타와조약의 남북 동시가입 등 한국의 지뢰금지운동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그 길은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길이다.

조재국 연세대 교수,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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