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5월 2015-04-30   1902

[만남] 길 – 김희 회원

김희 회원

 

인터뷰.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길’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이탈리아 영화인데 안소니 퀸도 나오고. 여주인공인 젤소미나는 바보에 가까운 여자인데 마음씨가 착해요. 근데 어떤 분이 제게 그 여자를 닮았다고 하는 거예요. 처음 그 소릴 들었을 땐 기분이 나빴죠. 근데 갈수록 그 여자가 매력 있게 느껴지더라구요. 결국 그 바보 같은 여자가 강철 같던 남자를 울리고 회한에 빠지게 만들거든요. 언제 저희 카페에서 상영하면 보러 오세요.”
젤소미나를 닮았다는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60여년에 걸친 삶을 짧은 시간 안에 말해야 한다는 것에 진한 아쉬움을 내비치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녀가 사는 곳, 부암동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 & 대안예술공간 ‘마음은 콩밭’을 찾았다.
“어느 가을에 우연히 백사실 계곡에 놀러갔는데 도심 안에 그런 계곡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부암동이라는 동네에 홀딱 반해버렸죠. 함께 왔던 일행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데 저만 남아서 동네를 돌아다녔죠. 그러다 딸이 일러준 ‘데미타스’라는 카페에 가봤는데 그곳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근데 마침 그 카페주인이 자신이 사는 집을 전세 놓는다고, 마당이 165평이라고. 그래서 다음날 당장 찾아갔죠.”
널찍한 마당에는 감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감들의 주홍, 담장을 타고 넘는 담쟁이 넝쿨의 빨강, 바람에 무심히 날리는 형형색색의 낙엽들.
“풍경이 너무 회화적이어서 어디에나 이젤만 세우면 그림이 되겠더라구요. 조용한 골목길, 버스가 구불거리며 올라가는 모습….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동네였어요.”
이틀 만에 계약을 마칠 만큼 그녀를 사로잡았던 그 동네에 그녀는 카페도 차렸다.
“전부터 막연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라 그동안 그려놓은 그림들도 있고 해서 갤러리 카페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녀의 카페는 조용한 주택가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문외한인 내가 언뜻 봐도 장사가 잘 될 것 같지 않은 곳.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유를 물었다.
“길가의 점포들은 권리금도 비싸고 또 차 소리에 공기도 안 좋고, 더 큰 이유는 가게를 월세로 빌리면 아무래도 수익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면 카페를 찾는 손님들을 잘못 대하게 될까봐, 가게를 살 수 있는 곳으로 찾다보니까 여기에 열게 됐어요. 물론 가게를 산 돈도 융자이긴 하지만 월세를 내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장사가 이렇게 안 될 줄은 모르고(웃음). 제가 장사 마인드는 없는 거죠.”
남의 돈을 빌려 가게를 내면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머물러야 하는 곳이 어딘지 생각했다.
젤소미나. 바보에 가까운, 그러나 마음씨만은 한없이 착한 그녀의 마음이 가 닿은 곳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또 다른 이의 마음이었다.
“제 천성이 그런 것 같아요. 평소에도 나보다 남이 더 편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나와 내 것들을 앞세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카페에 손님 한분이 들어와도 그분이 얼마를 있든 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편히 있다 갈 수 있도록 내도록 신경을 쓰곤 해요.”
테이블 위, 떡이 소복이 담긴 접시와 그 옆 작은 병에 꽂힌 라일락 가지 하나에도 그녀의 마음이 담겨있다.
“떡은 아침 시간이라 식사들을 거르고 오실 것 같아 준비했어요. 이 라일락은 저희 집 마당에서 꺾어 온 거구요. 나무한텐 미안하지만 꺾은 자리엔 다시 가지들이 자랄 거니까. 저만 예쁜 거 보면 뭐해요. 함께 즐겨야죠.”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마음은 콩밭에?
카페 이름이 참 독특해요. 사연이 있나요?
“의정부에서 오래 살았어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는데 나중엔 동네 사람들을 모아서 누드드로잉 수업도 하게 됐죠. 문방구집 아줌마부터 남녀노소 합쳐 한 열 명쯤 함께 그림을 그렸고 나중엔 전시회도 했는데 그때 그분들이 얼마나 감격해하시던지 몰라요. 한번은 문방구 아주머니가 이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자긴 늘 문방구에서 일을 하지만 마음은 항상 그림에 가 있다고, 자기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고. 전시회 제목을 찾다가 세련되고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마음은 콩밭’전으로 하자고 제가 그랬어요. 카페 이름도 거기서 따온 거예요.”
의정부에 살게 된 사연 또한 독특하다. 남편 직장이 지하철 1호선을 타야하는 곳에 있었는데, 어느 날 1호선을 타고 끝까지 가보니 종착역이 의정부였다고. 
“한적하고 자연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맘에 들었어요. 상가건물 한 층을 빌려 살았는데, 중간을 장롱으로 막아 한 쪽에선 살림을 살고 한쪽에선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죠. 그땐 참 그렇게 가난했네요. 근데 사실 없는 살림 때문이라기보다 내 일이 하고 싶었던 거죠.”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처음 들어서는 그 ‘길’이 참 중요하더라구요. 아이나 어른들을 가르치면서 저도 배우고 성장해요. 근데 아쉬운 건 그런 일들을 하느라 정작 제 작업을 할 시간들을 놓쳤다는 거예요. 지금도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라고. 그렇게 자신의 작업을 하면서 그 안에서 연결되는 여러 길들을 찾아야 한다고.”
구불구불 인생길을 돌아 온 그녀의 입에서 자기반성이 짙게 밴 회한의 한마디가 나온다. 
“자신이 먼저 행복하게 바로 섰을 때 저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더 편해지는 것 같아요.”
함께 드로잉 수업을 한 이들의 작품들로 가득한 카페 안. 가르친 이와 배운 이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자신을 행복하게 세우는 작업, 그리고 그 행복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 이 작은 공간이 그녀에게 그저 ‘카페’만이 아닌 이유다.

 

참여사회 2015년 5월호 (통권 222호)

 

주인의 얼굴을 닮은 곳
콩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로 엄청나다. 영화감상을 하는 ‘콩밭극장’, 사진전, 강연, 전시회, 드로잉 수업, 텃밭 만들기 워크숍, 콘서트, 바느질 수업….
“처음부터 이런 공간을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치마 제가 만든 거거든요, 파는 옷들은 맘에도 안 들고 비싸서 직접 만들어 입었더니 누군가 이걸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바느질 수업을 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제가 만든 물건들을 카페 한쪽에서 팔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일이 벌어지는 거죠.”
그중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이번에 ‘다시 봄은 왔다’라는 콘서트를 했어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콘서트인데, 이런 일은 돈은 안 되지만 마음속에 굉장히 진한 여운을 남기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도 모두 보석 같은 분들이고, 그런 사람들 하고 같이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좋아요. 재능 있는 작가들이 전시할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런 분들에게 저희 카페를 무료로 대관해서 그분들이 세상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도 뿌듯하구요.”
자신이 가진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것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는 그녀가 이번에는 카페통인에서도 바느질 수업을 열었다.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참여연대가 가까이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제 딸에게도 참여연대에 좀 가보라고 권하기도 했고 또 저도 카페지기로 자원활동도 하고 그랬어요. 통인카페에서 연락이 와서 바느질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죠. 카페 앞쪽 큰 창이 있는 테이블에서 바느질 수업을 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 들어올 수도 있고 회원 모집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길래 흔쾌히 승낙했어요.”
카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헌 스웨터를 잘라 만든 벙어리장갑, 낡은 골덴 바지를 오려 만든 에코백, 감물을 들인 천에 곱게 수를 놓아 만든 티매트…. 비뚤배뚤 놓인 바늘땀들을 손끝으로 따라가 본다. 한 땀 한 땀이 주인의 얼굴을 닮아 욕심 없이 말갛다.  
“세상엔 기교가 넘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이런 소박한 것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아요. 에코디자인이라는 것도 별다른 게 아니라 주변에서 흔하게 버려지는 것들을 갖다가 내 감각대로 오리고 꿰매고 해서 만드는 거죠. 낡으면 낡은 대로, 구김이 있으면 구김이 있는 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들 안에 멋스러움이 있는 거고 그게 바로 예술이죠.”
대안적 공간이 된 카페 ‘마음은 콩밭’을 연 지도 이제 3년째. 요즘 그녀는 고민이 많다.
“예전엔 딸이 도와주고 그랬는데 요즘엔 저 혼자 운영을 하려니 힘에 부치네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이 공간을 누군가 같이 꾸려나갈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 명이 요일별로 카페 운영을 맡아서 각자 개성을 살려 다양한 것들을 실험해 봐도 좋을 것 같고. 이런 공간은 없어지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어요.”
더불어 사는 삶 속에 있을 때 솟아나는 행복. 자발적인 가난을 감수하면 가능해지는 많은 일들. 나 한명 정도는 이 동네에서 그렇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런 게 아닐까, 그녀는 오늘도 스스로를 향해 다짐처럼 묻는다.
“젊은이들이 세상의 흐름이나 부모의 바람으로부터 좀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으면 해요. 물론 그런 게 쉽게 찾아지지도 또 곧바로 이루어지지도 않아요. 결국 살면서 한걸음씩 다가가는 거죠. 소질과 능력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실패는 있어도 후회는 없는 인생을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용기 내어  나아가다 보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거, 그 길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또 나타나거든요. 저라도 나서서 돌 하나라도 보태줄 마음이 있구요.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저희 카페로 오세요.”

 

콩밭으로 가는 길
인터뷰 내내 비가 오고 흐리던 하늘이 이내 맑게 개었다. 봄날의 햇살이 한껏 깨끗해진 공기 사이를 가로지른다. 덩달아 경쾌해지는 골목의 풍경. 그러고 보니 그녀의 삶은 이 골목을 참 많이도 닮았다 싶다.
“저는 항상 빗겨나 있는 걸 좋아했어요. 조명을 받거나 중심에 서는 게 좀 두렵기도 했구요.  꽃다발 속 장미보다는 안개꽃 쪽인 거죠. 제가 원하는 삶은 앞에 나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아니라 뒤에서나마 제게 주어진 작은 몫을 해내는 것이에요.”
골목에 카페를 내며, 혹은 동네 아이들에게, 문방구집 아줌마에게 연필과 스케치북을 쥐어주며 그녀가 만들어 갔던 작은 길들. 그 길을 함께 걸어갔던 보석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골목을 채웠던 사진과, 그림과, 노래들. 이 모든 것들이 한 땀 한 땀 투박한 바느질로 엮어 작은 조각이불이 되기를, 그리하여 자신만의 길을 힘차게 가보지 못한 그녀의 깊은 회한을 살며시 덮어주기를….  
자하문 터널 초입, 마을버스가 언덕을 구불거리며 올라가는 부암동의 좁은 골목. 그곳엔 오늘도 그녀가 세워놓은 가로등 하나에 불빛이 들어온다.
‘마음은 콩밭’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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