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9월 2000-09-01   795

남북신뢰가 장사 밑천

통일무역하는 만수기획 신병문

정부의 통일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갈 때에도 묵묵히 보따리짐을 짊어지고 남과 북을 오갔던 사람들이 있다. 소위 ‘통일무역’을 하는 중소업자들.

그 동안 북한의 예술품을 반입해 온 만수기획 신병문 사장(41세)도 이 중 한 명이다. 그는 중국 광동성과 강소성에 화학섬유제조공장을 설립했다가 사업상 통역을 맡은 한인들과 접하면서부터 북한과의 거래를 시작했다. 통역사들은 대부분 평양 유학파들로 북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줬다. 거창하게 통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사업가인 그에게 솔깃할 만한 정보들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속된 이유’일 뿐이었다.

그가 지난 96년 벌인 첫 사업은 북한의 묘지석 반입. 당시 미술품은 가짜가 많이 돌았고 전문적인 식견도 없던 터라 쉬운 것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 이산가족들이 북한의 자갈과 흙을 산소에 뿌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방송 등을 통해 자주 봤던 터라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벌인 사업이다.

“북한에서는 비석에 돌 조각으로 고인의 사진을 넣습디다. 그래서 남쪽의 이산가족들로부터 사진을 받아 이를 평양 만수대 창작사에 건네주어 비석을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밖에도 보석화도 주문받아 북쪽에 의뢰했다. 보석화란 스테인리스판 위에 에머랄드, 자수정, 흑유리 등 보석가루를 붙여 사진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을 말한다. 북쪽과의 관계가 이 정도 진전되기까지 그는 여간 공을 들인 게 아니다.

“그쪽의 예술가들은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소위 ‘남조선 괴뢰도당에게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라는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개수작 부리는 남쪽 사람들을 자주 봤다’며 대화조차 꺼리더라고요.”

우선 신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손해보는 장사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쪽과의 약속은 꼭 지켰다고 한다. 인천 보세창고 등에 쌓아둔 재고품만도 반입단가로 무려 8억여 원. 지난 광주비엔날레에 전시하기 위해 10만불을 들여 반입한 27점도 아직 고스란히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 외교하듯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북쪽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지 못하면서도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단다.

만수대 창작사와 거래를 트면서 신뢰를 쌓아가길 4년. 최근에는 오히려 북측에서 “방송이나 신문 광고도 좀 하고, 사무실에만 붙어 있지 말고 나다니면서 물건을 팔아달라”고 보채는 상황이라고 전한다. 개인적인 신뢰 관계뿐 아니라 남과 북의 변화한 정치적 상황이 뒷받침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예술품 남북 교역의 현주소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북한의 외화벌이 상품이 국내에 반입돼 작품으로 둔갑되는 예가 빈번합니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진위 파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종종 백화점 전시장 한쪽 구석 에 싸구려 북한 예술품들이 진열되는 것은 이 같은 불법적 경로를 통해서입니다. 이는 결국 남북의 예술교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또 양 당사자 간의 신뢰 문제에도 큰 오점을 남길 수 있습니다.” 결국 북한 예술이 장사치들의 농간에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남북 교역은 “어느 한쪽만이 수혜자이어서는 지속되지 않는다”며 “서로 돈버는 일을 통해서 통일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소망을 덧붙였다. 이제부터라도 북쪽과 함께 제대로 된 장사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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