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5월 2021-05-01   2197

[특집] 외국인이기 전에 ‘아동’이다

외국인이기 전에 ‘아동’이다

글. 김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전 세계 가장 많은 국가가 비준한 국제협약인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본인 또는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아동이라면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가 있음을 규정하며, 협약 당사국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과 결정에 있어 아동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1991년 협약을 비준한 이후 아동권리협약을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아동의 권리와 관련한 다양한 법령을 두었다. 이 중 특히 아동의 복지를 보장함을 목표로 하는 「아동복지법」은 제2조의 기본 이념에서 아동은 자신 또는 부모의 종교, 사회적 신분, 출생지역,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고 자라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국제인권법과 국내법의 원칙과 기본 이념에 따라 한국에서 이주아동은 한국 국적 또는 체류자격 유무와 관계없이 한국 땅에서 차별받지 않고 아동에게 주어진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한국 땅에서 이주아동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별에 노출된다. 출생의 신고와 증명에 대해 다루는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대한민국 ‘국민’의 출생에 대해서만 증명사항을 규정하고 있어 국민이 아닌 외국인 아동은 한국에서 출생의 등록 및 증명이 불가능하다.

 

태어났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출생신고 제도 문제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은 부모의 국적국 재외공관에서 출생을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동이 재외공관에서 출생신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본국 정부로부터의 박해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본국을 떠나 한국으로 피신해온 난민 아동은 국적국의 정부 기관인 재외공관에 방문하는 것을 피할 수밖에 없다. 본국에도, 태어난 나라인 한국에도 출생을 신고하지 못하는 아동은 어디에서도 존재를 확인받을 수 없게 된다.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 어떤 국가의 대사관에서는 출생신고를 조건으로 ‘불법체류’를 중단하고 귀국을 요구하기도 한다. 미등록 체류자의 수를 줄이기 위한 한국 정부의 압박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외국인 등록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출생신고 없이는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떠한 공적 서류도 받을 수 없다.

 

출생신고는 아동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시작점이다. 법이 아동의 다양한 권리를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출생 신고를 통해 아동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권리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협약 및 지침을 통해 아동의 ‘출생신고될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외국인 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를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외에도 자유권규약위원회, 사회권규약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인권이사회 등은 수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마련에 대한 권고를 해왔다. 한국 정부는 2019년 5월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시작으로 2021년 2월에는 법무부 정책위원회 심의 결과와 함께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방법과 대상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5월호 (통권 285호)

법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한국 땅에서 이주아동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별에 노출된다

 

이주아동의 교육권과 체류권

성장하여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중에도 이주아동은 지속적으로 차별에 노출된다. 현재 한국에서 이주아동은 「초ㆍ중등교육법」과 법무부 및 교육부의 지침 등을 통해 국적과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공교육을 받을 수 있고, 미등록 이주아동이라 하더라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강제퇴거를 유예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상 비차별의 원칙이 충실히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의무 교육으로 정하고 있는 「교육기본법」은 의무교육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어 국민이 아닌 외국인 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다. 즉, 절차에 대한 특례 규정에 해당하는 「초ㆍ중등교육법」의 시행령에 근거해 학교장에게 입학 또는 전학을 신청할 수 있을 뿐, 학교장이 재량에 따라 입학을 거절한다면 이에 대처하기 어렵다. 실제로 2015년에는 영종도 난민지원센터에 입소한 아동 10여 명이 한국인 학생과 정서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입학이 거부되어 난민지원센터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공립 다문화학교에 다녀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한국에서 이주아동은 다양한 이유로 전입학이 거절되고 있으며,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은 전학 또는 진학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잘못 인식한 교원의 조언에 따라 학교폭력 등 인권침해에 노출되는 경우에도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학교에 다닐 수 있다 하더라도 각종 교육비 지원에서 제외되며, 스쿨뱅킹 계좌 개설, 학교의 홈페이지 가입,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대회 참여 등 다른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와 교육 서비스에서 소외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학교 재학 중에 체류자격을 별도로 부여받는 것이 아닌, 강제퇴거 명령의 집행이 유예되는 것뿐이므로 아무리 오래 체류한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체류의 연장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적합한 체류자격이 없이는 대학 진학도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2017년에는 한 아동이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던 중 단속되어 강제퇴거 처분을 받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해당 아동과 누나, 세 명의 동생들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강제 퇴거된 후 체류자격을 상실한 채로 어머니와 함께 미등록 상태로 거주해 왔다. 이들 남매는 모두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했거나 재학 중이며, 본국과의 관계는 사실상 단절되어 한국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다행히 강제퇴거처분은 소송을 통해 취소되었고, 이 아동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한국에서 체류자격을 부여받은 후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무부는 항소를 포기하며 발표한 자료를 통해 이 아동이 “초등학교 재학 시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재학 시에도 “예의가 바르고 선행사실이 뚜렷”했고, “3년 내내 개근하여 개근상을 받은” 사실 등 특수한 배경과 요건 등을 고려한 것일 뿐 이 결정과는 별개로 법무부의 “불법체류자 억제, 단속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한편,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국제사회의 꾸준한 권고와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하여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제도를 마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법무부는 2021년 4월 19일,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한국에서 출생해 15년 이상 거주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조건부로 체류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 법무부의 최초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나 이 정책에도 아동 인권을 고려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체류자격 부여 대상은 국내 출생 아동에만 한정되어 국내에서 출생하지 않은 아동은 태어나자마자 입국했다 하더라도 구제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합리적 기준 없이 15년이라는 긴 기간의 체류기간을 요건으로 제시한 것 역시 문제다.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해외 사례를 보면 짧게는 2년에서 길어도 7년 사이의 체류기간을 체류자격 부여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고, 아동 최상의 이익의 원칙 등을 심사 기준으로 삼아 함께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5월호 (통권 285호)

한국에서 이주아동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상상해 봤으면 합니다. 당신이 태아이고, 

어머니의 국적을 모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학교 친구의 난민 인정을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사연을 올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 아주중학교 학생회가 친구의 난민 인정을 환영하며 발표한 성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고 어울렸던 학생들은 이주아동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본인의 선택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주아동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한국에 입국하여 한국에서 성장해 왔다. 이중 어떤 아동은 체류자격 없이 태어났고, 어떤 아동은 어린 나이에 체류자격을 상실한 후 미등록 상태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체류자격이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이들의 선택이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동이라면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다. 국제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법무부의 그나마 전향적인 장기체류 외국인 아동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발표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인 아동ㆍ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낸 이들에게 안정적으로 거주하며 한국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극히 제한되어 있다. 

 

➊ 이 글에서 ‘이주아동’은 한국 국적이 없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18세 미만의 사람을 의미하며, ‘미등록 이주아동’은 국내에서 체류자격 없이 살고 있는 이주아동을 의미한다


특집 어서와, 불친절한 한국은 처음이지?

프롤로그. 방글라데시에서 온 라셰드 이야기 라셰드  

1. 재난은 평등했으나 대책은 차별적이다 우다야 라이

2. 외국인이기 전에 ‘아동’이다 김진

3. 바다 위에서 유예된 인권 김종철

4. 한국에 이주민 정책은 있는가? 이한숙

부록 #평등하다 만인선언 캠페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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