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4월 2005-04-01   669

사법판결을 열린 광장으로 끌어낸다!

‘[판결비평] 광장에 나온 판결’1호 요약

지난 1월 대법원 제 1부 이용우·윤재식·이규홍·김영란 대법관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김 모 씨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게시 등) 위반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김 모 씨는 작년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느 출마예정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 출마예정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글을 썼는데, 검찰은 그런 행위는 선거법에서 정한 방법이외에 후보(예정)자를 지지, 비판하는 글을 배포해서는 안 된다는 선거법 93조를 위반한 것이라 하여 기소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맡은 1심 판사들은 다른 곳도 아니고 최소한 후보(예정)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조차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혼탁한 선거를 방지하는 선거법 목적을 넘어 ‘정치의사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이 정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위헌적인 법률적용이므로 무죄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검사의 항고로 진행된 2심의 판사들도 1심과 동일한 법률해석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상고심을 맡은 대법관들은 1심, 2심 판사들과는 달리 선거법 93조는 후보자 홈페이지에 후보자를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글을 쓰는 것도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못박고 김 모씨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선거법 93조를 통해 얼마만큼 제한할 수 있는가에 대해 대법관들이 최종적으로 법적 결론을 내린 것인데, 대법관들이 하급심 판사들의 전향적인 법 해석을 경직된 법 해석으로 퇴행시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지극히 부정적인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참여연대가 지난 3월 16일 사법판결비평 ‘[판결비평] 광장에 나온 판결’ 첫 호를 발표했다. 세간에 많이 알려진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의 장면삭제 가처분 결정에 대한 비평과 함께 국민의 정치의사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법원과 하급심 판결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위에 인용한 요약문이 그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출범 초기부터 했던 판결비평 활동을 좀 더 활발히 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판결비평] 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이다. 판결비평문을 발표하는 것말고도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이란 제목으로 공개좌담회를 열 계획이며 필요한 경우 네티즌 투표도 실시할 계획이다.

법관 ‘무오류(無誤謬) 신화’에서 벗어나야

최근 어느 기자로부터 “시민단체의 판결비평 강화 방침에 대해 일부에서는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법관들이 선고한 판결에 대해 비평하는 것, 잘한 것은 잘했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지적하고, 또 그것을 법률 전문가들끼리만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에 대해, 보수적인 법률가들은 상당히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와 비슷한 분위기는 얼마 전 취임한 대한변협회장이 “오랫동안 법조생활을 해온 우리는 누가 대법관이 될만한 자격이 있는지 다 아는데, 아는 것도 많지 않고 몇 가지 사례밖에 모르는 시민단체들이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던 데에서도 읽혀진다. “법률문제는 전문가인 법률가끼리 다룰 문제일 뿐”이라는 배타성이 이런 생각의 밑바닥에 깔려있다. 참여연대가 [판결비평]을 내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영역에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려는 것이다.

법관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과정을 거쳐 판결한다. 첫째는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이다. 소송서류, 진술서, 사건정황을 비롯하여 여러 증거자료를 토대로 하여 누구의 말이 사실에 맞는 것인지를 정한다. 검찰과 피고인, 원고와 피고의 주장에서 어느 것이 사실에 맞는 것인지 법관은 정해야 한다.

사실을 확정한 다음에는 그러한 사실행위가 어떤 법 조항에 해당하는지, 형사사건인 경우 어떤 죄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 전에 향우회를 조직하고 관광을 주선한 복기왕 의원 사건에 있어, 대법관들은 선거법의 사조직결성 금지죄에는 해당하지만, 사조직을 이용한 사전선거운동 금지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병역의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때 처벌한다고 하는 병역법 제 88조 1항을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법관이 결정해야 하는 법률적용의 문제다.

이 밖에도 법관은 법률에서 부여한 재량권을 행사하여 판결한다. 예를 들어 법관은 피고인의 범죄와 관련한 제반 사정을 감안하여 선고형량을 줄여주거나 더 무겁게 하거나 또는 선고를 유예할 수도 있다.

더 나은 판결과 권위 있는 사법부를 만드는 자극제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법관이 선고한 판결에 오류는 전혀 없는 것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이 있는 판결도 있고, 반대로 탁월한 법률 해석이나 재량권 행사로 칭송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문자에 얽매인 법률해석에 그치는 판결도 있을 수 있고, 실체적 정의와 헌법정신을 고려한 법률 해석으로 전향적인 결론을 이끌어낸 판결도 있을 수 있다.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관의 개인적 주관이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설득력 없는 이유를 내세워 중형을 내려야 할 범죄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판결은 지극히 당연히 비평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설령 기존의 법 해석이나 판례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흠 없는 판결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인권의식이나 가치관, 변화하는 사회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판결인 경우도 있다. 그러한 판결은 현실적으로는 법적 효력을 가진 판결이겠지만 사실상은 생명력이 없는 판결이나 마찬가지이다.

판결비평은 이미 선고된 판결의 법률적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견해가 다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진 뒤에는 그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법부 무오류 신화’에 사로잡히지 않고 법관들이 더 나은 법률해석과 더 깊은 사회현상 이해를 바탕으로 사건을 판결하도록 이끄는 동시에, 사법부가 실체적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기관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법조계 내부에서의 고답적이거나 실무적인 판결비평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관이 내린 판결이 분명 국민들의 가치 판단과 행동양식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판결은 사회에서 폭넓게 토론되고 올바르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한 열린 비평이 활발할수록 법관들은 재판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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