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4월 2005-04-01   673

시민운동, 2004년 평가와 2005년 전망

사회운동을 통해 바람직한 세상의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계획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장의 한가운데 서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모두가 동의하는 분명한 방향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3월 14일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열린 참여사회연구소 주최 제 44회 참여사회포럼은 칼로 무 자르듯이 1년을 단위로 한 평가와 논의라기보다, 1987년부터 시민운동의 정점을 이루었던 2000년을 거쳐 2004년까지의 흐름 속에서 그동안의 활동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개혁의 발목 잡은 정치지체현상

토론회는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인 홍성태 상지대 교수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홍 교수는 2004년 시민운동은 최선을 다했지만, 뜻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정치영역에서 제17대 총선은 표면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압승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한나라당이 제 1야당의 자리를 확고히 하면서 수구세력의 건재함을 드러냈다. 이것은 개혁의 발목을 잡는 우리 사회의 ‘정치지체현상’으로 나타났고, 시민운동이 성과를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경제영역에서 우리 경제가 전반적 위기라는 진단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강하고, 노무현정부가 ‘토건(土建)국가’로 이른바 올인하여 부자연합세력을 끌어안고 다음 집권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이것에 맞서는 주역인 노동운동은 조합주의의 덫에 갇혀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영역에서는 개인이 각자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선진한국’이 되어야 하지만, 복지 증진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실질적으로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투잡스족’의 증가로 이어질 뿐이다. 생태영역은 ‘부안항쟁’, ‘환경비상시국선언’ 등으로 한국사회가 생태적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보여준 한 해였고, 노무현정권의 반생태적 정체성을 분명히 확인한 해였다.”

시민사회가 껴안아야 될 이중적 민주화의 과제

이후 시민운동의 전망에 대해 그는 정당정치의 정상화와 법치의 구현이라는 전통적 민주화의 진척과 복지사회와 생태적 전환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화의 과제라는 ‘이중적 민주화의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시민운동은 중앙 중심의 시민운동을 넘어서는 지역화를 이루는 한편, 미시적 영역에서의 각개약진과 함께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 변화 과정의 큰 방향을 모색하려는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는 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박진섭 환경연합 정책실장,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참여해 몇 가지 쟁점과 합의를 이끌어냈다.

먼저 ‘정치지체현상’이 정치민주화와 사회선진화를 크게 저해하는 정도인지, 아니면 절차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평가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복지 실현 등의 실질적 민주화 과제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

둘째,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에서 논쟁이 있었다. 노중기 교수는 노동운동이 사회적 책임을 잘 못하고 있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자본가의 논리를 빌려 대기업노조 노동자의 ‘철 밥그릇’을 문제삼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전체 노동자의 56%(통계청 자료)를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유리 밥그릇’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오히려 시민운동의 체제내화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운동이 자신의 이익에 매몰될 위험은 갖고 있지만, 그것이 항상 그럴 수밖에 없는 절대적 정체성은 아니며, 서구유럽 복지사회는 강력한 노동운동이 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 연대와 논의 필요

한편 성장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거시적 담론을 마련하고 시민운동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연대와 논의가 시급하다는 데 대해서는 참석자 대부분이 공감했다.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지역토호세력이 아닌 자치세력이 지역의 중심이 되어 지역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당면 과제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1987년 이후 급격하게 성장했던 시민운동은 15년을 넘어 정체를 겪고 있고, 사회변화의 주요 동력이었던 노동운동도 많은 사람들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서 보듯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사회운동이 정체와 위기를 딛고 일어나 우리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이룰 도약의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거시적 담론을 형성하고, 지역 속에서 더 구체적인 실천으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할 때다.

구은정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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