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4월 2005-04-01   716

납세자 주권 실현은 납세자 스스로

지난해 말 국회에서 확정된 2005년 예산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해 약 167조 원이고, 여기에 각종 기금을 합한 정부의 총지출규모는 208조 원에 이른다. 국민은 이처럼 막대한 국가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은 물론 갖가지 부담금 등의 준조세를 국가에 내고 있다. 우리 국민의 세금 부담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재경부 발표대로 해도 올해 국민 1인당 세 부담은 270만 원인데, 이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 126만 원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10년 만에 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국가재정은 팽창하고 국민 부담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납세자인 국민의 권익은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만 지울 것이 아니라 납세자 참정권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국민에게 예산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산 낭비에 대한 직접 감시와 시정 요구권을 줄 것과 의회의 예산심의 강화 등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렇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납세자들의 권리를 너무나 가벼이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최근 있었던 한두 가지 사건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정부와 국회 거치면서 껍데기만 남은 주민소송제

지난해 말 국회에서 주민소송제 도입을 뼈대로 한 지방자치법개정안이 의결되었다. 주민소송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행위에 대해 지역 주민이 직접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해당사업의 중지 또는 취소나 무효화, 낭비예산의 환수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납세자 소송제와 형식은 비슷하지만 중앙정부를 소송 대상에서 빼버리고 지방정부에 대해서만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법안을 마련하면서 주민소송 전에 반드시 주민감사청구를 거치도록 하고, 주민감사청구를 위해 100~300명의 주민 서명을 받도록 함으로써 신속하고 효과적인 주민소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독소조항을 집어넣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전국 73개 단체 연명의 공개의견서를 내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였으나 정부는 끝내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였다.

이후 시민단체들은 소관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 등의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정부 법안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국회에서 정부안의 독소 조항이 수정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입법로비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회의원들은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기는커녕 도리어 지방자치단체장 등 지역 기득권 세력의 편을 들어 정부안보다 더 심한 대안을 만들어 통과시켜 버렸다. 주민감사 청구에 필요한 연명자 수를 200~500명으로 늘리고, 소송 제기가 가능한 기한도 사건발생 후 5년에서 2년으로 축소시켜 버린 것이다.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국회가 행정부보다 더 국민 권익에 반하는 행동을 자행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 돈 쓰겠다면서 얼마 쓸지도 안 밝히는 무성의

법안비용추계제도라는 것이 있다. 국회의원이 입법안을 제출할 때 예산을 필요로 하는 법안인 경우에는 소요될 예산을 미리 추산하여 법안에 첨부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국민 부담의 규모를 예측하여 입법심의 과정에 참조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예산소요가 예상되는 법안, 즉 예산부수법안 중 실제 예산추계서를 붙인 법안의 비율이 13대부터 16대 국회까지 평균 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첨부비율이 높은 편인 16대 국회도 고작 18%다.

예산이 소요된다는 말은 국민 세금을 쓰겠다는 뜻이다. 예산 추계서를 붙이지 않는 것은 그로 인한 국민 부담에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소요예산 추계는 국회법에 반드시 지키도록 명시되어 있는 법적 의무사항이다. 예산부수법안을 제출하면서 소요예산 추계서를 붙이지 않는 것은 위법인 것이다.

납세자 스스로 주권 찾기에 나서야

정부와 정치권은 납세자인 국민의 권익을 쉽게 무시한다. 정부는 세금이니 부담금이니 꼬박꼬박 거둬가지만 국민은 그 쓰임새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통로조차 찾기 힘들다. 국민 입장에서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중은 제 머리를 깎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납세자는 스스로 단결하여 끊임없이 요구하고 비판하며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민소송제는 바로 시민의 예산에 대한 직접 감시권을 보장하는 대표적 제도다. 주민소송제 외에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주민직접참여제도로는 주민투표, 주민감사청구, 조례의 제정 및 개폐 청구, 정보공개청구 등의 제도가 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을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들 제도 도입을 앞당기고,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한 제도로 만들고자 노력해 왔으나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은 2006년 주민소송제 시행을 앞두고, 일반시민들이 주민참여제도를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서 제작과 법률지원단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주민소송제는 지방정부만 대상으로 하는 한계를 갖고 있으므로, 중앙정부까지 소송 대상으로 하는 납세자 소송제 도입운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시민들은 이전보다 쉽게 예산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고, 잘못된 점을 발견했을 때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많은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자기 고장, 자기 관심 분야에 얼마의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표출될 때 비로소 정부와 정치권도 태도를 달리하게 될 것이다.

최인욱 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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