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4월 2015-04-02   1152

[특집] 세월호 참사 1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특집 Remember 0416

세월호 참사 1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강정훈 정신과 전문의

 

참여사회 2015년 4월호(통권 221호)

 

작년 5월부터 안산에서 유족들, 생존자들, 지역주민들과 상담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 내게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극히 일부사람들만 만난데다 피해자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떠오르는 얘기들을 두루뭉술하게 뭉쳐야겠다.

그날 이후로 피해자들은 다른 몸,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다. 진도 체육관에서 수면, 소화, 호흡의 리듬을 잃어버린 많은 엄마들의 몸이 초기 몇 달간 급격히 야위었다가 지금은 많이 불은 상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거리에 필 꽃이나 외투 속 교복을 드러낼 학생들이 두려운 엄마가 있다. 자신을 찾았을 아이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며 숨이 막혀 오는 엄마도 있고, 퇴근길에 한적한 곳을 찾아 오열하는 아빠도 있다. 생계수단인 트럭을 잃고 매일 아침 빚 독촉 전화를 받는 생존자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빚을 갚을지에 대한 계산과 죽고 싶은 충동이 함께 한다. 기울어진 배 안에서도 천진난만하게 떠들던 아이들에 대한 기억들에 압도당해 혼자서는 집 밖을 못 나서는 생존자도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사고가 발생하고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에는 숨겨진 진실이 많다고 믿고 있다. 국가랑 싸워 이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세상과 단절한 채 지내는 엄마가 있고, 진상규명부터 하고 자신을 돌보고 싶다며 면담을 미루는 엄마도 있다.

 

피해자들에게 가장 따뜻하고 시급한 위안은 진실

미국 카트리나 현장을 지휘한 아너레이 사령관은 하루에 세 번씩 기자회견을 열어 둘러대거나 부풀리지 않고 진실만을 공개했다고 한다.1)
칠레 산호세 광산 붕괴 시 광업부 장관이던 라우렌세 골보르네는 수색의 진전이 있던 없던 2시간마다 상황을 설명하며 가족들에게 신뢰를 얻었다고 한다.2)
 
‘전원 구조’라는 커다란 거짓말로 시작한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들이 국가를 절대 믿지 않도록 단련시켰다. 구조되었으니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학교의 설명에도 갈아입힐 옷과 신발을 챙겨 진도를 찾은 엄마는 아이를 결국 찾을 수 없었고, UDT해군 특수전전단잠수부들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는 바다도 가족이 직접 확인해 보고나서야 거짓임을 알았다. 불신과 분노에 휩싸인 가족은 직접 구조작업에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졌지만 국가는 “알아 보겠다”, “기다려 달라”는 말들로 가족의 개입을 미루었다.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고위 공무원의 몸이나 옷가지를 붙들며 가족들은 무슨 얘기든 해달라고 소리쳤다. 구조 책임자를 찾아다닌 한 엄마는 “어떻게 해야 만족하시겠어요?”란 구조자의 빳빳한 질문을 듣고는 민간 잠수부들과 함께 책을 펼쳐 들고 요구사항들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고성을 지르며 유족 행세를 하던 사람들이 이름표를 걸자는 가족들의 제안으로 체육관에서 사라졌다. 우리 아이가 맞나 얼굴과 팔 다리를 쓰다듬으며 시신을 확인하고 안산으로 데려오는 과정도 가족들의 여러 요구로 구체화되었다. 가족들은 구조작업이 길어져도 현장을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고, 바지선에 직접 올라 오늘은 어느 곳을 더 수색해 달라고 요구할지 모니터를 보며 고민해야 했다.

화상을 크게 입은 몸으로 스스로 사지를 헤쳐 나온 생존자는 뒤늦게 자신을 부축하는 해경의 손길을 분노에 차 거부했다. 지친 몸을 이불 속에 잠시 녹이던 생존자들은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부모들과 섞여 있다 불편한 마음에 체육관을 나섰다. 그러나 무거운 책임감에 그 곳을 차마 벗어날 수 없었던 생존자 중 한 명은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희생자들의 규모가 드러날수록 생존자들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어느 생존자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달라는 요구도 못한 채 차비 걱정을 했고, 다른 생존자는 보상이 얼마나 나왔냐는 질문들에 지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다니기도 했다.

73일간 팽목항과 체육관에서 근무하던 경찰이 진도대교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5월 30일엔 아들로, 아버지나 남편으로 지역사회 봉사활동까지 열심이던 안산의 한 50대 가장이 ‘어른이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단체 분향소 인근에서 자살을 택했다. 자신의 감정이나 필요보다 현장상황을 우선 고려하며 지내온 교사, 기자, 시 공무원, 경찰관, 자원 봉사자 등이 면담을 하려고 센터를 방문하였다.

진도 체육관에서부터 안산까지 많은 소문들이 돌고 있고, 이제는 소금기가 빠진 풍문에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예민하다. 우리 아이가 왜 죽었는지 답을 알지 못하는 부모는 스스로 사고 당시의 상황을 그려보길 단념할 수가 없다. ‘그러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란 생각에 생존자들이나 유족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탓한다. 절박하게 자신과 사회를 구할 방법을 찾고 있는 피해자들과 힘을 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참여사회 2015년 4월호(통권 221호)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면담을 나누었던 피해자 대부분은 건강하게 고통을 겪고 있다. 나를 포함해 세월호 피해를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린 잘 살고 있는 걸까. 사고가 나고 몇 주 후부터 피해자들은 배상·보상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어떤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평소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고 있는지를 자연스레 드러낸 것뿐이다. 돈이 아닌 다른 중요한 가치들에 관한 얘기는 이제 말라버린 걸까. 대형 재난의 피해자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는 움직임은 여러 사회에서 흔히 있었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이 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게 겁을 먹고 밀어 내기보다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볼 수 있다.

 

1) 동아일보, 정미경 특파원 인터뷰 기사, 2014.5.2

2)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원성윤 인터뷰 기사, 2014.10.16

 

 

강정훈

정신과 전문의. 지난해 5월부터 안산 온마음센터에서 세월호 유족, 생존자, 지역주민의 상담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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