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9월 2012-09-05   2803

[읽자] 인간에겐 인권을, 동물에겐 동물권을

인간에겐 인권을, 동물에겐 동물권을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추천하는 9월의 책

최근 한국 사회에 동물권 논쟁이 활발하다. 작년, 가수 이효리 씨의 채식 선언과 모피 옷을 둘러싼 논쟁이 관심을 모았고, 올해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방사 논란은 동물권 개념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게다가 서울시에서 동물 보호와 보건 정책을 추진하는 동물복지과를 신설할 계획이라 하니, 1975년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으로부터 시작된 동물권 논의가 이제야 윤리학의 이론적 논쟁을 넘어 현실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만난 셈이다.

  동물권은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도 존재 자체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있다는 뜻인데, 동물과 인간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르냐 하는 질문부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인간과 동물을 대등하게 바라보아야 하느냐까지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물음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길고양이와 유기견, 육식과 채식, 각종 동물실험과 대규모 축산 등 현실의 문제와 마주하면 각각의 입장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쉽지 않은 문제라는 뜻이다.

가축표지_작업.indd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박성표 지음. 개마고원 

  행복하게 길러서 건강하게 먹자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는 채식이나 동물해방을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근본주의와는 결을 달리 한다. 잡식성 동물인 인간이 육식을 멈추는 일은 쉽지 않으니, 맛있고 안전한 축산식품을 먹기 위해서라도 가축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대상은 ‘공장식 축산업’인데, 꽃등심의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고개를 돌리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살만 찌우다 생을 마치는 소와 효율화라는 미명 아래 A4 용지만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닭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량을 최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하는 시스템에서, 가축은 그저 이윤 추구를 위한 상품일 뿐,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

  이런 상황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공장식 축산업 시스템은 손쉬운 관리를 위한 지나친 항생제 투여, 과밀한 집단 사육과 동물성 사료에서 발생하는 각종 전염병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자연히 결론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로 이어져, 전자는 농업과 축산업의 유기적 순환구조를 위해, 후자는 육류 소비를 줄이고 천천히 요리하여 적게 먹는 식습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내가 기르는 동물을 어떻게 먹느냐고 반문하는데, 과연 공장식 축산업이 내가 기르는 동물을 먹는 일보다 나은 상황일까. 어쩌면 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사고해보는 과정에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동물권리선언-표지(세움)

                       『동물 권리 선언』 마크 베코프 지음. 윤성호 옮김. 미래의창

 

동물들의 소리 없는 외침, 동물 권리 선언

이제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넘어 한 걸음 나아가보자. 『동물 권리 선언』은 동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한다면 자신들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현실과 미래에 대해 어떤 말을 들려줄지 상상해보는 내용이다. 총 여섯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동물 권리 선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모든 동물은 지구를 공유하며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
2. 동물은 생각하고 느낀다.
3. 동물은 온정을 느끼며 또한 온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
4. 교감은 배려로, 단절은 무시로 이어진다.
5. 세상은 동물들에게 온정적이지 않다.
6. 온정적인 행동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와 세상에 도움을 준다.

  선언의 내용을 보면 ‘온정’이란 표현이 반복되는 걸 알 수 있는데, 저자는 지구의 환경을 망치는 탄소발자국의 반대 개념인 온정발자국을 제안하면서, 과도한 욕심과 종 우월주의에 가려진 인간 본연의 온정을 나누는 일을 강조한다. 그는 동물들 역시 친절과 온정, 그리고 연민을 표현할 수 있는 인지와 감성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인간처럼 후회를 하는 원숭이와 자아를 인식하는 까치의 사례, 고립된 동료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함께 보살핀 고래 떼 이야기를 통해 이를 증명하는 동시에, 인간과 동물이 일체감을 갖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소한 인간이 온정적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동물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그쳐야 하고,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 이외의) 동물도 온정적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당연히 그들을 더 잘 대해야 하며,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동물을먹는다는것에대하여_입체북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

 

누구를 위한 육식, 누구를 위한 채식인가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논픽션이다. 그는 육식과 채식을 함께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내 아이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이 과정에서 동물들은 어떻게 다뤄지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축산업 종사자, 동물 권리 보호 운동가, 채식주의자인 도축업자 등 여러 입장의 사람을 만나고 관련 자료를 탐독하며 동물을 둘러싼 문제가 왜 나의 문제로 이어지는지 확인한다. 사실 이 책에서 나오는 근거들은 앞서 살펴본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런 과정을 거쳐 채식주의자로 거듭난 한 인간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있다는 게 다른데, 그는 우리가 먹는 고기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에서 나오는 현실에서 보다 인간답고 아버지답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채식밖에 없다는 결단을 내렸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한동안 채식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로 미루어볼 때, 논리적 분석과 합리적 설득 못지않게 구체적인 한 사람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그러한 결단 이전에 문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자기 근거를 확보해야 할 텐데, 오늘 소개해드린 세 권의 책은 이런 맥락에서 꽤나 유효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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