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8월 2000-08-01   518

국민건강 위한다고? 23년간 약물남용을 어떻게 참았니

체 게바라를 좋아했던 의사 친구에게

그 친구와는 대학 다닐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의대를 다니던 그가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 ‘알레르기에 관한 논문을 쓴 의사’라고 주장하면 경제학과를 다니던 저는 ‘쿠바혁명 뒤 쿠바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관료를 지냈으니 경제학자라고 봐야 한다’고 맞서곤 했지요.

세월이 흘러 그는 의사선생님이 됐고, 저는 기자가 됐습니다. 요즘도 그 친구와는 허물없이 지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는 그 친구와 크게 싸웠습니다. 싸움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요즘 『한겨레』가 어디로 가는 거냐. 우리 의사들이 돈에 눈먼 살인마냐. 의사들이 환자들 곁을 떠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한국 보건의료시스템의 구조적이고 본질적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 문제에 대해 흥분하냐. 이게 마치 『조선일보』가 시위를 다룰 때 교통불편 등을 부각시키는 것과 뭐가 다르냐. 이런 피상적이고 왜곡된 보도를 하는 『한겨레』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

이 때까진 꽤 기분 나빴지만 참았지요. 의사 처지에 집단폐업 보도에 대해 서운하고 화가 날 수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제가 보기에도 『한겨레』 보도가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결국 참지 못하고 대판 싸움이 벌어지게 된 것은 다음 대목이었습니다. “우리 의사들은 사회적 약자다. 아무리 언론이 우리를 매도해도 결국 역사는 우리의 투쟁을 정당하게 평가해 줄 것이다.”

이 말을 듣자 그전까지는 ‘그래 그런 면이 있지’하며 참고 있던 제 머리의 뚜껑이 갑자기 확 열리더군요.

“의사가 사회적 약자라고. 아니 사회적 약자가 지난 겨울에 집단동사라도 했나. 역사가 너희 투쟁을 평가해? 복날에 몽둥이 맞아 자빠져 숨넘어가는 개소리하고 있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지만 학생 때도 아니고 30대 중반이 된 처지에 피차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데 ‘아차 심했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그 뒤 서로 한바탕 욕설과 독설이 오간 뒤 결국 처참하게 자리가 끝났습니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는데 왜 서로에게 상처를 줬는지 너무 후회됐습니다. 그래서 미처 못한 이야기를 담아 편지를 썼습니다. 아래는 그 편지입니다.

체 게바라를 좋아했던 친구에게

미안하구나. 우리가 다툰 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왜일까. 못다 한 이야기를 하려고 펜을 들었다. 의약분업과 집단폐업을 바라보는 의사들의 시각과 일반 시민들 생각은 상당한 거리가 있어.

많은 의사들은 이렇게 이야기하더군.

양복 짜집기 비용보다 사람 다리 꿰매는 치료비용이 적다는 것을 예를 들며 병원 간판 내리지 않기 위해 하루에 수백여 명 이상을 치료하고 어쩔 수 없이 고가 장비에 의한 검사나 안 해도 되는 수술을 받게 했다고. 다시 말해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 때문에, 즉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 때문에 환자들은 2시간 기다렸다 3분 진료 받아 의사들에게 불만이고, 의사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진료는 그림의 떡이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버티어 왔다고.

난 이게 바로 집단폐업 때 의사들이 욕을 먹었던 근본 문제라고 생각해.

네가 말한 것처럼 의사들은 한국 보건의료시스템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1977년인가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됐으니 벌써 23년째 누적된 문제인데 그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의사들이 어떻게 대처했니. 과잉진료와 하지 않아도 될 검사로 환자의 호주머니를 털고, 그것도 모자라 제약회사로부터 약값 리베이트를 받고, 환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약을 안겨주며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면서 지내왔잖아.

의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왜곡된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와 부작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잘못된 구조를 고치는 정면돌파 전략 대신 이 같은 우회전략을 택했어.

그런데 의약분업으로 그나마 통하던 각종 편법도 통하지 않게 되자 의사들이 들고 일어선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차라리 이번에 의사들이 집단으로 병ㆍ의원 문을 닫으며 `우린 그 동안 비정상적 진료상황에서 편법으로 겨우 버티었지만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수입이 엄청 줄어드니 이 상태론 정상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면에 내세웠으면 했어. 밥그릇 다툼이란 비판을 받더라도 이게 차라리 시민들에겐 솔직하게 비칠 거야.

그런데 의사들은 ‘의권쟁취’니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는 거창하고 고상한 명분을 내걸잖아.

물론 의사들 중엔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도 많이 있고 이번 집단폐업에 동참한 사람 중에 의료개혁을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이번 의료대란을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고 있거든. 이게 왜 그럴까? 네가 말했듯이 언론과 정부가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국민들을 현혹한 탓일까. 난 결국 의사들의 자업자득이라 봐. 국민건강을 지키는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위해 집단폐업과 교수직 사직까지 불사하는 의사들이 지난 23년 동안 항생제와 약물 남용으로 국민건강이 망가지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었는지 궁금해.

또 내가 화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사들의 문제제기 방식이야. 의사들은 과감하게 전국의 병ㆍ의원 문을 닫는 방법을 동원했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이런 방법으로 정부를 굴복시킬 수는 있겠지만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는 없어. 이렇게 집단폐업을 강행한 의사들이 ‘우리는 국민건강 지키는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하자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국민들은 믿지 않아.

노동자의 파업에 빗대는 사람도 있지만 파업은 불편은 주지만 생명까진 위협하지 않거든. 가령 지하철이 파업하더라도 지하철 못타 죽을 뻔했다는 사람은 생기지 않지.

의사들이 폐업을 철회하고 진료일선에 복귀했지.

그런데 엉뚱하게도 의사들의 승리를 보며 지난해 4월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패배가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난 지난 4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서울지하철 파업지도부들의 농성투쟁을 취재했단다. 너도 알다시피 지하철 파업은 처참하게 깨졌지.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다는 언론의 융단폭격과 정부의 강경진압 방침에 1주일 만에 파업은 끝났고, 노동자들은 대량징계와 구속바람에 내몰렸지. 대책없는 정리해고 중단과 신자유주의정책 철폐라는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내건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은 처참하게 개박살나고 약사의 `임의조제 금지와 진료권 보장 등을 요구한 의사들은 승리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도 앞으로 4살 된 내 아들놈에게 `공부 못해 지하철 노조원 같은 공돌이 되면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사회적으로 짓밟힐 뿐이고, 열심히 공부해 의사 되고 판검사 돼야 한목에 힘주고 사람대접 받고 산다고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이게 우리가 20대 때 그토록 바라던 `사람 사는 세상일까.

마지막으로 10여 년 전 우리가 같이 좋아했던 체 게바라 이야기를 하지.

`의사 게바라가 쿠바혁명이 성공한 뒤 1959년 11월 쿠바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하고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급료를 5,000페소에서 1,200페소로 줄인 것이라고 하더군.

이만 줄인다.

이 글은 인터넷 한겨레에 소개된 바 있다.

권혁철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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