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연대의 출발

어느 단체도 연대운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연대활동으로 인해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피곤하게 되는 경우도 만만찮다. 아마도 이는 연대운동의 대의에 공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꾸려지는 연대활동이 구체적인 의의와 현실성을 정확하게 고려하지 않고 대의에만 매달릴 경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대의를 앞세우고 현실적인 여건을 이에 종속시킬 경우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활동을 통해 활동가 개인이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대활동 속에 자신을 소진하고 있다고 느끼면 연대활동이 본래의 대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반대로 현실적인 조건과 구체성만 앞세우고 연대운동의 대의를 소홀히 한다면, 이 또한 활동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편협한 틀 속으로 자신을 내모는 또 다른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연대운동은 활동의 지향점이자 동시에 활동의 강력한 방식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연대운동에 대해 자세히 검토해 보는 것은 활동가 개인, 개별 단체뿐 아니라 운동 전체를 동시에 조망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연대운동이 활동에서 하나의 지향점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과 현실도 이제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우선, 연대활동에 참가하는 조직이 자기 조직의 틀만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일을 다른 조직과 공동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있다. 자기 조직의 방향과 합일되는 일이지만 좀더 큰 틀에서 그 일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 공공선에 더욱 기여할 때는 어떤 식으로든 연대의 틀에 참여하게 된다. 최근의 예로는 총선시민연대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이 때는 개별 조직이 추구하는 것을 연대운동이 더욱 더 구체화시켜 주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준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연대활동의 방식은 한 단체의 구체적인 활동에 다른 단체들이 동참하여 추진력에 힘을 실어 주는 경우이다. 한 단체가 제안한 사안의 중요성이 사회의 공공선에 부합할 때, 그 단체를 중심으로 공동으로 사업을 조직하고 꾸리는 경우이다. 이를 통해 공동으로 추구하는 대의가 연대활동을 통해 성취되고 각 단체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며, 활동가 사이에는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형태의 연대활동은 우리 사회운동의 저변에 잠재해 있으며 앞으로도 사회운동의 잠재적인 힘으로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신뢰구축이 잠재적 힘을 발산한다

이처럼 사회 공공선의 추구라는 대의에 부합하는 연대활동은 항상 모든 시민단체들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안했던 연대활동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 중요하지만, 하나의 공통 목표를 연대하여 성취하는 것은 반드시 각 단체의 활동에도 도움이 되고 새로운 연대 사업을 꾸리는 데도 밑거름 역할을 해야만 한다. 각 단체는 자신이 추구하는 구체적인 활동들이 있다. 각 단체의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개별 단체로서는 포괄적인 일반 목표를 구체적인 활동으로 추진하기가 어려운 반면, 연대의 틀에서는 각 단체가 추진하는 구체적인 활동을 뛰어넘을 수 있는 좀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런 식의 연대운동은 각 단체의 활동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인 동시에 각 단체의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또 각 단체가 고유의 구체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대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활동을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틀을 만들어 내는 역할도 해야 한다.

하지만 연대운동의 현실에서는 이와는 달리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각 단체 고유의 활동과 연대 활동의 차이점이 모호해질 때 생겨나는 문제이다. 각 단체는 그 단체만이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그 어느 단체보다 잘 꾸려내는 사업이 있게 마련이며,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고유의 활동 경험과 지식은 더 큰 틀의 연대활동의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한 단체가 하나의 활동을 추진하는 것이 곧바로 연대활동을 꾸려내는 일로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자기 단체의 고유한 활동력도 키우지 못하고, 또 각 단체의 활동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연대활동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반면에 개별 단체의 고유활동과 연대활동을 동일시 함으로써 그 연대활동에 참여하는 여러 활동가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활동가들이 자신의 삶과 자기가 몸담고 있는 자기 단체의 고유활동과 이것이 확대된 연대운동 속에서 자신의 활동력과 활동의 의미를 키우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회용으로 소진되는 개체로 인식되는 활동 속에 처하기 때문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해야

다음으로는 더 많은 단체가 함께 해야만 가장 좋은 연대활동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있다. 하나의 연대활동이 쟁점으로 삼고 있는 문제를 자기 단체의 활동과 연관하여 함께 할 수 있는 단체들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되어 있어야만 연대활동의 과정과 그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새로운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연대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가 모호할 때, 그것은 연대활동과 각 단체 고유 활동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되며, 이는 나아가 활동 자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럴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로는 연대활동에서 이루려는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연대 틀을 꾸리는 것 자체가 활동의 목표가 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연대활동을 꾸리는 것의 일차적인 목표는 무엇보다도 각 단체가 개별적으로 추진하기 힘든 중요한 사안을 그것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단체가 함께 만들어서 이루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연대운동의 의미와 중요성이 실제 연대활동에서 실현되지 않고 연대활동을 꾸리는 것 자체가 그것이 이루려는 목표보다 더 중시되는, 본말이 전도된 경우가 생겨나기도 한다. 연대활동만을 하기 위한 단체는 없다. 모두 자기 고유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있다.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경험과 관점이 없이 꾸려지는 연대활동은 실제 내용에서는 개별 단체의 활동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각 단체의 활동 경험과 역량이 축적되어야 올바른 연대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87년 이후 여러 시민단체가 자기 고유의 가치에 기반을 둔 조직을 결성하고 그에 따라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 비로소 사회의 각 분야에서 시민의 힘으로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고 권위주의적인 권력에 대한 대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체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는 수많은 희생과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이 구체성의 활동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지 못한다면 앞으로 있을 어떤 연대활동도 과거보다 발전된 연대운동으로 만들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연대운동과 연관하여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사항은 대의에 집중하는 큰 틀의 연대도 중요하겠지만, 사안별로, 단체별로 제한된 연대활동이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 단체의 활동이 곧바로 큰 틀의 연대로 아우러지는, 보편적 공공선을 목표로 하는 연대운동은 사실상 매우 힘든 과제이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사안별로 제한된 규모의 연대 활동을 활발하게 할 때에야 비로소 더 큰 틀의 연대가 내실있게 진행될 것이다. 각 단체가 고유한 활동의 역량을 쌓아나가는 것이 곧바로 큰 틀의 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활동과 연대활동이 상호교류하며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한된 규모와 사안별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단체별로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연대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차이점들이 무시될 때는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수가 없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고유한 활동 영역을 가진 다양한 활동 단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때에 비로소 차이점들이 연대하여 보편적인 공동의 쟁점을 추진하는 연대운동은 우리가 이뤄내려는 활동의 지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차이점이 없는 연대운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연대가 아니라, 서로를 구속하는 속박이 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