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8월 2000-08-01   673

가출

SF소설

사람의 DNA 염기서열 위치를 해독하는

인간게놈 프로젝트

(Human Genome Project)가 완성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은

인간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혁명적 사건이다.

이 중대한 사건은 인간과 생명 그 자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미래시대,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도래할까?

SF소설로 그려봤다.<편집자 주>

K씨가 딸의 수상쩍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늦은 귀가도 전에 없던 일이었지만, K씨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딸의 얼굴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현관에서부터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아이가 세상고민을 다 짊어진 어두컴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조그맣게 “다녀왔어”라고 말하고 휭 하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상 모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K씨는 그 순간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경험했다. 드디어 고민이 생길 만큼 아이가 성장한 것에서는 기쁨을, 하지만 겨우 열두 살에 벌써 사춘기를 맞은 딸아이의 상담역을 해줘야 한다는 것에서 당혹을 느낀 것이다. 그는 아버지다운 호들갑으로 소파에서 일어나 잠시 안절부절못했다. 남자친구? 아니면 성적일까? 아니면, 혹시 엄마에게만, 여자끼리만 말할 수 있는 그 문제? 세상에, 벌써?

잠시 소파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K씨는 계속 떠들고 있던 벽면 TV를 껐다. 딸에게 접근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그는 방문으로 향했다. 똑똑. 무반응. 다시 한번 노크. “왜요?” “아, 밥은 먹었니?” “먹었어.” 그리고 침묵.

그는 슬그머니 문을 밀었지만, 잠겨 있음을 확인하고 얌전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재도전을 할까 말까 심사숙고하던 K씨는 일단 관망하기로 했다. 내일이면 출장 갔던 아내가 돌아올 것이고, 세 가족이 토요일 점심을 함께 먹는 자리는 은근슬쩍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기 딱 좋은 시간일 테니까.

토요일 아침에 K씨는 딸의 방문을 열어보고 그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텅 빈 방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의 전조였다. 오전에 돌아온 아내와 함께 K씨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불길함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이가 갈 만한 곳엔 모조리 전화를 돌리고, 병원 응급실에 문의하고, 해가 떨어지자마자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계속 흘렀고, 불안과 초조가 터질 듯이 팽팽하게 되어버린 오후 11시에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허겁지겁 버튼을 누른 K씨는 화면에 나타난 여자가 딸의 담임선생임을 알고 반색을 하며 물었다.

“연락이 왔습니까?”

“아뇨. 아직… 그것보다, 저, 죄송하지만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예? 무슨 일로…?”

“아무래도… 꼭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화영이 문젠데…”

문제? 틀림없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K씨는 말꼬리를 흐리는 담임선생에게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집 근처의 카페에 와 있었다. 아내에게 어떤 소식이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필요 없는 신신당부를 한 후 그는 5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카페의 정문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고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담임선생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꾸 앞에 있는 커피 잔을 만지작거렸다. 답답해진 K씨는 별로 덥지도 않은데 이마의 땀을 훔치며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녀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K씨는 엄청난 인내심으로, 다시 한번 다그치는 경우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드디어 담임선생의 말문이 어렵게 열렸다.

“죄송합니다. 화영이 아버님. 이건 모두 제 책임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다짜고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사과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K씨가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화영이가 집에 안 들어오는 게 선생님 책임이라뇨?”

“실수였어요. 원래 건망증이 좀 있는 편이지만 그런 실수는 안 하는데….”

“최 선생님! 알아듣게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거의 외치듯이 말했고, 덕분에 여자는 깜짝 놀랐다.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담임선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요일 방과후였어요. 학급위원 몇 명이 와서 다음 날 쓸 설문지를 달라고 하더군요. 출력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저는 회의가 있어서 자리를 떴는데, 그게 문제였어요.”

선생은 목이 마른지, 물을 들이키고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들이 제 컴퓨터를 만지다가 우연히 신체검사 자료를 본 모양이에요. 암호를 걸어놔야 했는데… 설마 애들이 그걸 볼 줄은….”

K씨는 주먹을 꼭 쥐며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 순간 K씨는 딸을 낳은 후부터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언제나 그들 가족의 생활 밑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어떤 맹수가 힘차게 달려드는 것을 느꼈다.

“설마…?”

K씨는 자신의 생각을 선생이 부정해주기를 원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여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또박또박 말했다.

“규정상 유전자 기록이 포함되거든요. 화영이는 베타 안티트립신 결핍이죠.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만.”

K씨는 현기증을 느끼며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선생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님 전화를 받고 오늘 오후에 걔네들을 불러서 물어봤어요. 아무래도 꺼림칙해서. 처음엔 시치밀 떼다가 준형이란 애가 결국 애길하더군요. 화영이 기록을 봤다고. 그리고…”

여자는 망설였다. 이런 이야기는 괴롭다. 하지만 그녀는 정직해지기로 했다.

“자기들은 그런 애와 한 반이 되기는 싫다고 했어요. 걔가 언제 무슨 병에 걸릴지도 모르고 혹시 전염이 될지도 모른다고… 애들이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아마 부모님들이겠죠. 부모님들은 자기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K씨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여자는 흠칫했다.

“그래서,” K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자식들이 화영이한테 무슨 짓을 했습니까.”

선생이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K씨는 격앙되어 있었다.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왕 내친걸음이었다.

“금요일 아침 아이들끼리 HR을 하는 도중에 그 준형이란 애가 발언을 한 모양이에요. 원래는 제가 모니터를 보고 있어야 했는데 마침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말리질 못했어요. 오늘 학교에 가서 회의 녹화분을 봤는데….”

이어지는 말은 K씨의, 딸의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딸에게 험한 소리를 하지도, 은근하게 따돌림을 시키거나 괴롭히는 짓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효율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딸아이가 반에 계속 남아 있어도 되는지를 투표에 붙였던 것이다, 아이들답지 않은 냉정함으로. 결과는 확실했다. 그들은 딸이 반에서 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 등교하지 않기로 결의를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K씨는 두 번이나 지나던 행인과 부딪쳤고 한 번 달려오는 차에 치일 뻔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른 화가 처음에는 딸의 반 아이들에게, 그 다음에는 선생에게, 다음으로는 학교에게 무차별로 확산되며 목표를 잃고 방황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를 앉혀 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추방을 결의하는 놈들이라니. 아니,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유전자 결함을 무슨 전염병처럼 여기게 한 그 부모들이 문제인 것이다. 무슨 소리. 그게 아니다. 이런 정보는 당연히 학교가, 선생이 보호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 저 빌어먹을 여자가 잘못한 거다.

그는 끊임없이 다리를 놀리고 있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밖으로 분출되던 분노는 잠시 후 그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그는 자신을 욕하고 책망하기 시작했다.

K씨는 아이에게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딸아이가 양수에 잠겨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결혼 후 2년 만의 임신으로 기뻐하는 것도 잠시였다.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태아 유전자 감별을 받은 후, 그는 엄마 뱃속의 딸아이가 베타 안티트립신 결핍이라는 유전자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결과를 통고받았다. 친절하게도 그 결과에는 이 결핍이 유발할 수 있는 병과 발병 확률이 수치로 표시되어 있었다. 자질구레한 몇 가지 외에, 태아가 미래에 신장암에 걸릴 확률이 65% 이상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들 부부는 낙태나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유전자 성형을 놓고 고민했다. 유전자 성형은 돈도 문제였지만 산모에게 위험했고, 그들은 한참의 숙고 끝에 결국 낙태를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병원에 간 날, K씨는 대기실에서 수술실로 향하던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고 미친 듯이 병원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종교적인 문제도 아니었고, 평소 낙태를 반대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뱃속의 아이를 떼어 낼 수 없었다.

그는 12년 전, 아이가 태어날 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결국 내 잘못인 거야. 그는 책망을 계속했다. 딸아이는 몸 안에 일종의 시한폭탄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계속 검사를 해서 그 65%의 확률에 불행하게 걸려들었다면 병을 초기에 알아내고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치료도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고 언제든 병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암이란 20세기부터 지금까지, 감기처럼 언제나 곁에 있는, 사라지지 않는 병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낙태를 하는 원인 중 하나는 유전자 검사에 의한 차별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결함을 지닌 사람들은 크게는 취직에서부터 작게는 의료보험료 액수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차별을 받았다. K씨에게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겪은 그런 종류의 경험이 있었다. 의례적으로 결혼 전에 교환하는 건강진단서에 아내의 유전자 검사 결과 우울증 요인이 있다는 판정이 나온 것이다. K씨의 부모는 거세게 결혼을 반대했고 지금도 아내와 시부모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그렇게, 자식이 처음부터 한참 뒤처진 채 세상에 나오는 것을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은 부모에겐 괴로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K씨는 그 모든 근심거리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하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다행으로 여겼다, 적어도 태어난 딸과 첫 대면했을 때는. 그는 유리벽을 통해 저쪽 편에서 찡그리고 있는 딸의 부은 얼굴을 보며, 처음에는 실실 웃다가, 소리 없이 울었다. 아빠의 눈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딸은, 그러나 그 순간 소리 높여 앙앙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의식은 과거에 있었지만 그의 발은 현재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 앞에서 K씨의 회상은 정지했다. 딸이 집 앞에, 정문의 오른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K씨는 하마터면 주책없이 왈칵 울음을 쏟을 뻔했다. 그가 아버지다운 체신머리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딸아이는 천천히 일어났다.

“아빠.”

K씨는 액체가 가득한 눈으로 열심히 아이의 표정을 읽으려 했지만 어두컴컴한 탓에 잘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잠시 침묵했다.

“화영아…” 그는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딸의 어깨에 손을 뻗으려 했다.

“나 배고파. 우리,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응?”

아버지는 동작을 멈추고 싱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가자.” 그는 딸의 조그만 손을 잡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들은 편의점에서 반 파인트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산 후 가게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플라스틱 숟가락을 무섭게 휘두르며 아이는 아이스크림에 몰두했다. 그 동안 K씨는 대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정리해야 했지만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이는 여태까지 아무것도 몰랐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한 달에 한번 정기검진을 받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차라리 울며불며 모두 밉다고, 죽어도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아이답게 떼를 써주면 좋으련만, 그러면 무거운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련만, 대견하게도 혹은 부담스럽게도 아이는 꿋꿋했다.

“아빠는 안 먹어?”

아이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K씨는 부드럽게 웃고 거절하는 대신 쥐고 있던 숟가락을 통 속에 파묻어 큼지막하게 한 입 분량을 떠냈다. 둘은 경쟁하듯이 아이스크림 통을 휘적거렸고 얼마 안 가 통은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는 만족한 듯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가 곧 상체를 숙여 테이블에 볼을 댔다.

“미안해, 아빠. 나, 가출하려고 했다. 정말 못됐지?”

K씨는 그 목소리에서 아이가 어떤 결심을 했음을,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로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불안은 커지고 두꺼워졌다. 거칠고 무심한, 무섭고 매정하고 사나운 날씨 속으로, 언제 잦아들지 모르는 바람 안으로 천천히 딸아이가 자신의 조그만 보트를 몰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웃기지마. 그는 버럭 자신의 느낌에게 화를 냈다. 애는 이제 겨우 12살이야. 그런 게 아니야. 그래, 애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모르니까 화도 못 내고, 왜 반 아이들이 자신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태연하게….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했다. 12살의 딸은 차분히, 미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은 거야. 아빠도 그런 적 있지?”

“… 응. “

“되게 싫은 애가 있거든. 힘도 없는 게 맨날 나한테 까분다?”

“혼내 주지 그랬어.”

“불쌍하잖아. 여자한테 맞아서 울면.”

K씨는 픽, 웃었지만 그 웃음으로 가슴을 치는 싸한 통증을 어쩌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뭐 했어, 하루종일?”

“그냥 계속 공원에 있었어.”

“바보. 가출인데 겨우 공원이야? 어디 멀리 ….” 그는 자신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린가. 농담으로라도 이런 말은 안 된다. 그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아빠, 엄마가 걱정하는 것도 생각해야지. 전화기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미안해. 미안… 근데 나 가출할거야라고 전화하고 가출하는 애는 이상하잖아… 그건 정말 바보….”

아이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조금 더 훈계를 할까, 아니면 달래 줄까, 생각하던 K씨는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자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아이를 업고 걸으며 제법 무겁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업어 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서서 벌겋게 부은 눈으로 다시 울음을 터트리려는 아내를 달래고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그날 밤 K씨의 아내는 단호하게, 요새는 위험성도 줄었고, 성공확률도 높으니 유전자 성형을 해보자고 말했다. K씨는 동의했고, 월요일 아침에 대출을 신청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피곤했지만 잠이 쉽사리 오지 않는 탓에 K씨는 침대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딸의 방으로 갔다. 아이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아이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안쓰럽다는 듯이 쓰다듬고 아이의 자는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그는 방을 빠져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문이 절반쯤 닫힌 순간, 아이가 낮게 이를 갈았다. 아내가 매일 같이 구박하는 K씨의 잠버릇과 똑같이.

K씨는 킥킥대며 웃었다. 그는 거실에 주저앉아 계속 웃었다.

어쨌든 너는 태어난 것이고, 이를 가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귀여운 소리로.

최민호 하이텔SF소설동우회 ‘드링크미’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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