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8월 2000-08-01   859

인간안보사각지대 ‘군’

주한미군 한강에 독극물

매향리의 폭격 굉음

군부대의 생활폐기물 불법투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의 길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동안 남과 북은 분단 세월 50여 년간 냉전하에 군사적인 긴장상태로 이어져왔다. 이번 두 정상 간의 만남을 통한 남북의 화해 물결 속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군사적인 긴장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다. 유례없는 적대적 긴장과 무장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남북관계에 드디어 훈풍이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하루 아침에 좋아지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남북관계 기류속에서도 우리 사회는 올해 들어 부쩍 주한미군 문제와 군 관련 현안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현상의 한 궤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 안보와 환경 문제다. 최근 녹색연합은 주한 미8군에서 독극물을 은밀하게 한강에 방류한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2월 9일, 미군 영안실(U.S Army mortuary) Build. 5498에서 독극물인 포롬알데히드와 메탄올 성분이 든 시체 방부처리용 용액 20박스가 아무런 정화처리 없이 하수구를 통해 무단 방출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내부 제보자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난 독극물 방류사실은 일파만파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한강의 독극물 방류 사건은 매향리로 인해 가뜩이나 증폭된 반미감정에 불을 지른 것이다. 포롬알데히드는 무색 기체로 물에 잘 녹고 살균방부제로 이용되는데, 그 수용액이 포르말린이다. 1981년에 나온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랫동안 포롬알데히드에 노출되었을 경우 정서적 불안정, 기억력 상실, 정신집중 곤란이 유발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물질이 수중에 존재할 경우 어패류에 대한 독성(어류에 대한 치사농도 : 50~100ppm)도 있으며, 사람에 대해서는 30ppm에서 질병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100ppm이상에서 1분 이상 노출될 시 심각한 영향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다.

이런 독극물을 한강에 버린 사건은 주한미군의 환경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건이다. 자국 내에서 주둔하는 미군들의 환경기준은 매우 까다롭게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들이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한미관계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45년 해방 때 점령군으로 들어왔고 그 이후 한국전쟁 때 작전지휘권이 미국에 넘어갔다. 그 뒤 한미관계는 현상적으로 우방과 동맹으로 표현되었지만 실상은 일방적인 관계로 규정되었다.

매향리 문제를 비롯한 주한미군 문제의 핵심쟁점은 SOFA(한미행정협정)를 중심으로 한 환경문제와 인권문제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상당한 통일비용을 지불한 현안도 바로 안보와 관련된 군사시설과 장비의 처리문제였다. 통일 이전 동독에 주둔했던 소련군 기지와 군사시설로 인해 발생했던 여러 환경오염을 해소하기 위해 서독은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지난 5월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매향리 문제의 핵심도 환경문제다. 물론 매향리 주민들이 50년 동안 겪었던 말 못할 고통도 많지만 사안의 핵심은 환경적인 피해였다. 미공군의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되면서 발생한 환경피해가 주요한 쟁점이었다. A-10을 비롯한 전폭기와 전투기들이 하루에도 300회 이상 폭격훈련을 감행하면서 발생시키는 비행과 폭격 소음은 주민들의 삶 자체를 전쟁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소음과 함께 진동은 정상적인 생활을 바닥부터 흔들어 놓았다. 주민들과 국민들의 저항에 의해 매향리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이후 주한미군과 국방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며 훈련장 이전까지 검토하게 되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매향리 문제의 근본 원인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불평등한 상황이 해결을 보지 못하고 지속된 또 다른 이유는 소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헐렁한 인식이다. 아직도 정부나 국민들은 소음을 직접적인 공해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향리 사격장의 이전을 검토하는 밑바닥에도 소음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없고 일단 매향리 문제만 봉합하고 보자는 인식이 크다. 그래서 매향리 훈련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대책이란 게 서해안의 또 다른 공군훈련장을 대체하여 사용하겠다는 발상이다.

국방부는 매향리 미공군 사격장을 폐쇄하고 서해안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에 있는 공군사격장으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지역주민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주민들은 미공군 사격장의 소황리 이전 방침을 확인하고 국방부가 주민들의 뜻을 무시한 채 이전을 강행할 경우 끝까지 투쟁할 태세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소황리 사격장도 상당한 소음공해를 유발하고 있다. 여기에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매향리의 미공군 사격장까지 이전된다면 지역주민들의 삶은 바닥부터 위협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군의 소황리 사격장은 지난 85년 설치되었으며 90∼94년 70만평 규모로 확장되었다.

매향리를 소황리로 이전하겠다는 국방부의 대책은 소음에 대한 무지로부터 출발한다. 공군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훈련장과 전투비행장 주변지역은 심각한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은 소음규제에 대한 법이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국민들에게 소음이 공해라는 인식은 부족하다. 반면 외국의 경우 소음이 명확한 공해라는 사회적 합의와 인식이 뚜렷하며 관련법규도 잘 정비되어 있다. 우리처럼 공군부대 주변에서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일은 거의 없다. 공군부대 주변의 주민들은 소음으로 인해 난청을 비롯해 심각한 정신장애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비행장과 함께 헬기부대로 인한 피해는 주로 수도권 이북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용산, 의정부, 동두천, 춘천, 양주 등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8년 여름 녹색연합과 주한미군 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가 공동으로 서울 용산의 서부이촌동에서 일주일 동안 인근 용산미군기지의 헬기장을 중심으로 뜨고 내리는 헬기들의 소음을 조사한 결과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지역에서는 치명적인 80데시벨(db)이상의 소음이 측정되었다. 이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수치라 할 수 있다. 특히 헬기가 주로 뜨고 내리는 위치가 초등학교를 그대로 관통하게 되어 있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다. 매향리를 비롯해 전투비행기로 인한 소음 피해는 더 이상 은폐하거나 미루어 둘 일이 아니다. 피해는 국민들이 입는다. 정부도 소음에 대해 더 이상 느슨하게 대처할 일이 아니다.

소음과 함께 심각한 것이 폐기물 문제다. 지난 7월 18일에는 인천의 군부대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폐기물을 불법 투기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에 있는 육군번개부대(2291부대). 불법투기의 현장은 이 부대의 유격훈련장이다. 훈련장의 주변의 숲 곳곳에 무단으로 쓰레기를 묻어 놓았다. 마치 비무장지대에 지뢰를 매설한 것처럼 수없이 많은 곳에 쓰레기를 묻고 흙으로 덮어 놓았다. 거마산은 인근 지역주민들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대가 등산로 주변의 숲속에 쓰레기를 그대로 묻고 있다. 300∼400m 거리만 가면 주택가도 있다. 일반 생활쓰레기를 치우는 곳과 거리도 비슷한데도 숲속에다 그대로 묻고 있다. 무단으로 투기된 폐기물은 토양오염뿐만 아니라 지하수 오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지난 4월 강원도 고성 산불의 경우에도 군부대의 불법적인 폐기물처리과정에서 발생했다. 적법한 절차가 아닌 무단으로 소각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난 5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은평구와 종로구 등에 자리잡은 안산(서대문구 봉원동·해발 295.4m)에서 군부대 2곳의 음식물 쓰레기 매립과 불법 도로 확장 등이 확인되기도 했다. 쓰레기는 바로 이 산에 위치한 국군통신사령부 안산통신소 소속 부대원들이 마구 내다 버린 뒤 눈가림으로 흙을 덮어놓았던 음식물 쓰레기였다.

군대는 대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운용하기 때문에 훈련과 작전을 비롯해 일상적인 활동에서 상당한 폐기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일반의 기준보다 더 엄격한 폐기물관리 기준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은 사회의 기준보다 훨씬 느슨하거나 무방비 상태인 실정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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