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8월 2000-08-01   655

간사들이여, 반란하라!

10년 가까운 경력의 사무처장. 3년 넘은 기획부장. 1년 또는 그 미만의 간사 4명. 부산경실련의 상근자 현황이다. 이는 타 지역 시민단체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부산지역의 경우 3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중견실무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12개 시민단체가 소속된 부산지역시민단체협의회에도 3년 이상 경력자는 10명도 되지 않는다.(사무국·처장 제외)

43개 지부가 있는 전국경실련에도 지난 5월 현재 중견실무자(2∼3년 이상 경력, 30대 초반, 부장급)는 15∼2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 이는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실무간사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1∼2년 사이에 빈번하게 교체되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이런 실무간사의 빈번한 교체는 허리가 부실한 양극화현상을 낳게 된다. 10년 가까운 경력의 국처장과 1∼2년 경력의 간사의 부조화를 필연적으로 낳게 되고, 사무국·처장의 독선적(?)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 한 예로 간사들 간에 의견통일이 이뤄진 사항이라 해도 국처장의 반론으로 뒤집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그 동안 경험으로 갈무리된 국처장의 ‘내공’과 초보적(?)인 간사들의 내공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이 시민단체 내부의 민주성과 합리적 의사결정을 저해하고 있다. 일선에 있는 간사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1∼2년의 짧은 수명으로 단명해 국처장의 내부 비중은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단체 하면 누구’라는 식으로 시민단체가 한 개인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절대화되고 있는 국처장의 비중을 낮추고, 합리적 의사결정구조로 재편하기 위해서라도 간사들이 오래도록 활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게 시급하다. 최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신세대들이 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리면서 내부적으로 이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부산지역 내 시민단체 간사 중심으로 구성된 ‘실무간사협의회’가 발족되었다. 이는 국처장 중심의 운영에서 진일보해 모든 상근자들이 책임을 지고 민주적으로 운영해 나가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다. 이제 간사들 각자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타 단체의 간사들과 함께 당면 문제를 하나씩 주체적으로 풀어 나가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간사들의 빈번한 교체는 단순히 불안정한 수입 때문만은 아니다. 이게 중도 포기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 소모적 운동에 대한 회의 등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이다. 간사들의 활동비 현실화를 중장기적인 과제로 접어둔다 하더라도, 이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시민단체 관계자 모두의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단체별로 간사들 간의 긴밀한 협의구조가 필요하다. 간사들 간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해진 의결사항을 처국장과 대등한 관계로 결정해 나가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즉, 간사들끼리 뭉쳐야 한다.

최근 효율적인 시민운동을 지향하면서 ‘역할분담’ ‘팀제 도입’ 등으로 오히려 간사들 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놓이고 있다. 납세자운동팀은 납세부분에 대해서만, 아파트주거팀은 아파트주거 현안문제에 대해서만 고민을 하다보니, 서로 간의 통일된 주제가 상실되고, 그에 따라 ‘개별화’ ‘파편화’되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의사소통의 핵심은 ‘정보의 공유’이다. 사무처장이 사무국에서 비중이 높은 것은 축적된 경험과 정보의 독점때문임을 들 수 있다. 많은 연대회의와 비공식적 접촉 등으로 다수 정보를 가짐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정보독점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간사들도 우선 각 단체 내 간사들 간의 정보공유에 힘을 쏟아야 한다. 아울러 타 단체간 간사들과의 협의체 결성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현안 이슈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가 이렇게 급성장한 것은 뒤에서 묵묵히 일을 해 온 간사들 덕분이다. 따라서 최근 도덕성 시비로 시민단체에 난데없이 닥친 위기(?)를 풀어나갈 사람은 바로 간사들이다. 간사들이 힘차게 발을 내디딜 때 시민단체는 다시 한번 환골탈태하는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간사들의 어려움을 다독거려 주고, 같이 고민하는 맏형격인 중견실무자들이 풍족하게 될 그날, 그 시민단체 사무국을 꿈꾸며, 다시 한번 힘차게 뛰어 보자.

조재범 부산경실련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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