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11월 2003-11-01   1107

장관님 팔은 밖으로 굽는다?

최종찬, 진대제 장관 등현안을 통해본 공직자의 이해충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자신이나 자신의 지인에게 유리하게 처리하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일컫는 속담이다.

지난 7월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은 그의 장인인 임광수 임광토건 회장에게서 매달 수백만 원씩 받아 각종 경조사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임광토건은 건교부 산하기관인 인천공항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 사업자인 ‘클럽 폴라리스’ 연합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이며, 또 마찬가지로 건교부 산하기관인 교통안전관리공단이 추진하고 있는 시화매립지 민자유치사업에도 입찰하여 그 시행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 장관과 건교부 산하기관이 주도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임광토건이 과연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최종찬 장관의 부인 임재영 씨는 10억 원 상당의 임광토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건교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난 9월 정보통신부는 IT 신 성장 동력 9대 산업(이하 신성장동력산업)을 발표하고 2007년까지 2조50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성장동력산업에는 삼성전자가 주력 품목 혹은 차세대 주력 품목으로 상정하고 있는 분야가 5개(지능형로봇, 디지털 TV, WCDMA 단말기 등)나 포함되어 있다. 정통부는 신성장동력산업 추진을 주도하는 총괄 P.M., 즉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에 삼성전자 출신의 송정희 씨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현 정통부 장관은 삼성전자 주식 9194주와 스톡옵션 7만 주(행사가격 27만2700원)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 진대제 씨다.

진대제 장관과 최종찬 장관은 정책의 결정·집행 과정에서 삼성전자나 임광토건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없다. 한국의 ‘장관님들’ 팔은 밖으로 굽는가 보라며, 유쾌하지 못한 속담만을 떠올릴 뿐이다. 공직에서 수행하는 업무가 자신의 이해와 관계될 경우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4촌 이내의 친족이 직무 관련자에 해당하는 경우도 이해충돌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팔을 밖으로 굽힐 수 없다면 팔을 굽힐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즉 이해충돌 상황을 스스로 해소하는 것이 장관 직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다.

이해충돌에 대한안이한 상황인식

공직자가 이해충돌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는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해충돌 상황에서 이루어진 정책 결정과 집행은 공정성을 의심받고, 정책 집행 과정에서 반발을 사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해충돌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이해충돌 여지가 있는 공직후보자를 아예 임명하지 않는 것이다. 공직 임명 후에 이해충돌 여부가 드러난 경우에는 당사자의 공직을 박탈해서라도 이해충돌 가능성을 해소해야 한다. 공직을 사퇴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해당 공직자가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백지위임신탁을 통해 재산 처분에 공직자가 개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이해충돌을 일으키는 개인 소유 주식 등을 다른 재산으로 전환해 이해관계를 해소하는 것도 방법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고위공직자들의 이해충돌에 대한 이해와 대처는 안이하다 못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참여연대가 진대제 장관에게 삼성전자 주식과 스톡옵션의 매각을 요구하자, 삼성전자는 정통부와 업무연관성이 적고, 이해충돌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기 때문에 매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와 정통부가 업무연관성이 적다면 도대체 어떤 기업이 정보통신부와 업무연관성이 많다는 것일까?

이해충돌 여부를 극구 부인하는 건 최종찬 장관도 마찬가지다. 최 장관은 임광토건 주식은 상속받은 것이며, 현재 거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매도할 의사 또한 없다고 밝히고 있다. 장인인 임광수 임광토건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최 장관은 사위가 검은돈으로부터 자유롭도록 장인이 ‘어려운’ 사위를 도와준 것뿐이며, 개인적인 경조사비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20억 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사람이 사적인 경조사비 지출에 장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걸 자랑이라고 밝힌 최 장관이 과연 이해충돌이란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참여연대의 이해충돌 해소 촉구활동

지난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임명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등록 이후, 참여연대가 재산공개 내역을 모니터 해본 결과 진대제 정통부장관, 최종찬 건교부장관 등이 이해충돌이 우려되는 주식을 보유한 것을 확인하고 주식 매각을 요청하였다.

참여연대는 그 후 진대제 장관과 대통령, 행자부 장관에게 릴레이 편지를 보내며 이해충돌을 해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정통부 앞에서 벌인 35회의 1인 시위와 두 차례의 집회를 통해 진대제 장과의 주식 매각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진장관은 매각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향후 삼성전자와 정통부의 구체적인 업무연관성을 밝히기 위한 조사활동을 벌이는 등 지속적으로 이해충돌의 해소를 요구할 계획이다. 최종찬 장관의 경우에도 최 장관이 장인에게 금품을 받았다는 보도를 접한 참여연대는 부패방지위원회에 공무원행동강령 위반여부에 대해 유권해석을 의뢰하였다. 부패방지위원회는 10월 2일 건설교통부 장관이 장인인 임광수 임광토건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것은 원칙적으로 공무원행동강령에 위반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참여연대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문책을 요구하고 최종찬 장관과 부패방지위원회에 후속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이해충돌 문제는 그 직책을 사퇴하거나, 이해충돌이 일어나는 재산을 처분하지 않는 이상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마다 불거지게 되어 있다. 참여연대는 이해충돌 문제를 제도를 통해 개선하기 위해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 하였고, 앞으로도 고위공직자들의 이해충돌 문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 할 계획이다.

사전예방 차원의 새로운 의제 ‘이해충돌 감시’

일각에서는 뇌물수수와 불법적인 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감시와 처벌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이해충돌 문제 제기는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뇌물 등에 대한 감시가 부패행위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사후적인 조치라면, 고위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 제기는 부패를 사전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고위공직자가 이해충돌에 대해 항상 염두에 두고 공직을 수행한다면 부패의 발생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충돌에 대한 감시’는 정책 결정과 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패를 예방하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21세기 부패 문제의 새로운 의제다.

이 재 근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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