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3월 2005-03-01   1500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평택, ‘제2의 부안’이 될 것인가?

평택대책위, 촛불시위 100일기념 문화제(2004년 12월)

평택대책위가 매주 월요일 진행하는 평택역 촛불행사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약칭 평택범대위)의 공식 출범으로 이 지역 미군기지 반대 운동이 봄을 맞고 있다.

지난 2월 22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평택범대위가 결성된 데 이어 3월 5일 평택에서 대규모 국민대회가 열린다. 이 지역 시민단체들의 연대기구인 미군기지확장반대평택대책위와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 주민들이 구성한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대책위가 2년 넘게 싸워온 결과물이다.

평택에는 이미 대규모 미군기지가 두 개나 있다. 사격장과 CPX 훈련장, 탄약고, 통신소 따위도 딸려 있다. 군속까지 포함해 미군이 1만 명 정도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평택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미군이 일본군기지를 접수한 때부터다. 1952년에는 미군기지를 확장하면서, 이전보다 거의 두 배나 넓은 미군기지를 평택의 북쪽 끝 송탄에 새로 만들기도 했다. 그 뒤로도 한미 두 나라 정부는 미군기지를 15차례나 확장했고, 그 결과 평택 땅의 거의 5%인 459만 평이 미군기지로 넘어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쥐꼬리만한 보상이 있었을 뿐, 주민들은 미군기지 담장 밑 남의 땅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도 제대로 된 보상 요구는커녕 항의 한 번 해 보지 못했다. 미군 비행장 활주로 끝에서, 하루에도 200번 씩 뜨고 내리는 비행기 소음에 노출된 채, 하루 5000 톤 씩 무단 방류하는 오폐수 냄새를 맡으며, 미군 범죄 피해를 당해도 억울하단 소리 한 번 못한 채 살아왔다.

16년 째 계속되는 평택의 미군기지 반대투쟁

그러던 평택에서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 불이 붙은 것은 것은 1990년. 16년 째 계속되고 있는 이 투쟁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용산미군기지평택이전결사반대시민모임과 미군기지수용고덕서탄주민대책위가 힘으로 모아 ‘용산 기지 평택이전 유보’라는 정부 발표를 끌어내기까지의 3년 동안이다. 중앙 정부와 평택군청, 평택경찰서의 일부 공무원들이 온갖 협박과 방해 공작을 일삼았지만,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두 번째는 국내외 시민운동 단체들이 연대하기 시작한 최근 10년 간의 시기이다. 평택시민모임의 승리에 힘을 얻은 전국 미군기지 지역 시민운동단체들이 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전국공동대책위(현재의 미군기지반환운동연대)라는 연대기구를 꾸린 게 계기가 됐다. 이 기구는 그 뒤로 소파개정국민행동, 매향리범대위, 여중생범대위,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등으로 맥을 이어갔다.

세 번째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다. 2002년 평택대책위는 강원 원주, 경기 하남 등지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겨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 저지투쟁을 시작했다. 그 뒤 미국의 해외 미군 재배치 계획과 맞물리면서, 두 나라 정부가 용산미군기지와 동두천, 의정부 미2사단까지 모두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계획을 확대하자, 수용 예정지 주민들이 팽성대책위를 꾸리며 조직적인 반대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나라 정부는 2007년, 늦어도 2008년 말까지 평택에 349만 평의 미군기지를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평택 땅의 약 10%가 미군기지가 된다. 하지만 주민들과 시민운동 단체의 연대 투쟁이 2년 넘게 진행되면서 정부는 지금까지 이 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평택시내는 물론 미대사관과 국방부를 오가며 싸우던 주민들은 지난해 9월 국방부가 편법으로 진행하려던 공청회를 무산시킨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주민 9명이 평택경찰서에 연행되자 나머지 주민들이 평택경찰서로 몰려가 이들을 석방하라며 몇 시간동안 시위를 벌였다. 밤이 되었는데도 주민들은 흩어지지 않고 양초를 잔뜩 사 와서 이른바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우리 땅 지키기 촛불 행사’를 시작했다. 이 촛불시위는 다음날부터 팽성으로 자리를 옮겨 170일 가까이 매일 저녁 7시에 지속되고 있다. 성탄절에도, 설날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또 평택대책위는 안중읍(매주 금요일 저녁 7시)과 평택역 광장(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생존권과 평화 지키기 위해 나선 평택 주민들

평택 사람들이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며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싸움을 벌이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주민들의 생존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일본군기지로, 미군기지로, 15차례나 집이나 땅을 빼앗겼던 주민들. 보상 한 푼 못 받거나 쥐꼬리만한 보상을 받고 쫓겨나 남의 땅에 천막 치고 살다가 거기서도 쫓겨났던 주민들에게 미군기지 확장은 다름 아닌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지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 전략을 방어에서 선제공격으로 바꾼 지 오래 됐다. 미국은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는 미군을 사정거리 밖인 평택으로 옮긴 뒤 북한을 선제 공격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0년 쯤으로 예정된 대만의 완전 독립 선언을 계기로 벌어질 중국과 대만의 무력 충돌에 주한미군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미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에도 청나라, 러시아, 일본 군대의 집중 포화와 군홧발에 쑥대밭이 됐던 평택이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미북전쟁과 미중전쟁에서 전쟁터가 돼 버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은 주한미군이 현재 위치에 있을 때보다 이른바 재배치를 끝낸 뒤에 훨씬 큰 것이다. 따라서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서 100년 만에 외국군 기지가 사라진다’고 좋아만 할 일도 아니며, 혹시라도 평택 주민들의 반대를 님비 현상으로 깎아내려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국가 안보 때문에’ ‘빨갱이 소리가 무서워서’ 항의 한 번 못하던 평택 주민들이 더 이상 내 고장이 외국군에게 짓밟히게 내버려두지는 않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똘똘 뭉쳐 이제는 ‘데모 선수’가 다 됐다. 지난 60년 동안 평택이 치른 희생에 대해 감사나 사과 한 마디 없이 주민들을 내팽개쳐 놓았던 정부는 이제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평택시 청사 안에 사무실을 내고, 토지 강제 수용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정부가 국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미군에게 무기한, 무상 임대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이 아니라 미국만을 걱정하고 있다. 관료들은 이간질과 협박과 회유와 여론 조작을 통해 평택이 ‘제2의 부안’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땅은 우리 목숨, 단 한 평도 못 내준다’며 이에 맞서는 주민들의 안간힘이 평택을 차츰 ‘제2의 부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평택범대위 결성과 1차 범국민대회는 그 첫 가늠자가 될 것이다.

김용한 미군기지확장반대평택대책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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