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3월 2015-03-02   916

[역사] 설렘의 시대

 

설렘의 시대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메이지 시대를 되새기는 오늘의 일본 

『언덕 위의 구름』이란 소설이 있다. 시바 료타로가 메이지유신 100주년을 맞은 1968년에 산케이신문에 쓰기 시작하여 1972년까지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시바 료타로는 1980년 김대중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운동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언덕 위의 구름』은 10년의 제작 준비 끝에 2009년, 2010년,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총 13부작의 NHK스페셜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러일전쟁에서 발틱 함대를 격파한 일본 해군 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와 그의 형이자 일본 기병대를 이끌고 러시아 코사크 기병대를 제압한 아키야마 요시후루, 시인이자 소설가인 마사오카 시키 등 메이지 시대를 이끈 세 인물의 삶을 그렸다. 긴 시간의 저성장으로 침체한 일본에서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불 때, 일본인들은 그렇게 맑게 갠 날의 찬란한 빛의 세계로 기억되는 메이지 시대(1868~1912)를 되새기고 있었다. 그 역사의 가운데에는 일본이 제국주의 러시아를 이긴 러일전쟁(1905)이 자리하고 있다.

 

‘언덕위의 구름’이 그리는 메이지 시대

드라마는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오늘날 일본인이 메이지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참으로 작은 나라가 개화를 맞이하려 한다. 작다고 하면 메이지 초기 일본만큼 작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산업은 농업밖에 없고 인재를 보자면 300년 동안 독서계급이던 옛 사무라이밖에 없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은 처음으로 근대 국가를 갖게 되었다. 누구나 국민이 되었다.

국민이 된 일본인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체험자로서 그 신선함에 설랬다. 이 측은하기만 한 설렘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단계의 역사는 이해할 수 없다. 사회에서 어떤 계층, 어떤 집안의 자식이라도 일정한 자격을 따기 위하여 필요한 기억력과 끈기만 있다면 박사도, 관리도, 군인도, 교사도 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명랑함은 이런 낙천주의에서 왔다. 

 

드라마를 끝맺는 내레이션도 간단치는 않다. 다음은 그 중 일부다. 

 

이 정도로 낙천적인 시대는 없다. 물론 견해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다. 서민은 중과세로 허덕이고 국권은 무겁고 민권은 가볍고 아시오 구리 광산의 공해 사건과 여공女工의 비참한 삶이 있었고 소작쟁의가 있었다. 이러한 피해 의식으로 보면 이 정도로 어두운 시대는 없을 것이다.  

 

메이지 시대가 늘 찬란하기만 한 건 아니었고 삶의 명암이 공존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서민들이 그때를 설렘이 있던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하는 걸 함부로 폄하하지 말고 되새겨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듯하다.

 

산업역군 시대의 설렘을 떠올리며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내레이션을 곱씹다보면 산업화 세대, 오늘의 6070세대를 떠올리게 된다. 민주화세대와 심한 불화를 겪으면서까지 그들이 소중하게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6070세대가 산업역군으로 살던 시절은 전태일이 분신으로 항거할 만큼 노동 조건이 열악했다. 그래도 그들은 한 달에 단 이틀만 쉬어도 오늘보다 내일이 낫다는 기대와 내 한 몸 부서져라 고생하면 형제와 자식이 열심히 공부하여 내 꿈까지 다 이루어낼 거라는 희망, 그런 설렘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청년 시절 그들이 꾸던 꿈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꿈을 꾸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 꿈속을 헤매고 있다.  

6070세대가 지금도 설렘의 시대에 매달리며 박근혜 정부 탄생의 주역이 된 건 꿈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모두 함께 그 꿈을 누리지 못하는 건 고단한 현실 때문이다. 일본인이 힘들고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메이지 시대의 추억으로 달래듯이, 6070세대도 가난하고 팍팍한 오늘을 설렘의 시대를 추억하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세대, 오늘날 4050세대도 역시 고달픈 청춘이었지만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부심과 설렘으로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 설렘은 민주화의 가치를 절대시하는 정서로 머리와 마음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민주화세대와 산업화세대는 왜 상대가 도그마적dogmatic,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의 가치에 매달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둘 모두 과거를 추억하는 정서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볼 때, 시대가 추구한 가치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지만, 당대인의 정서도 눈여겨 살펴야 한다.   

문득 2030세대에게는 세상에 대한 설렘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들에게 오늘이 설렘의 시대가 아니라면 그건 4050세대, 6070세대의 과오다. 자신들이 성취한 민주화와 산업화로 맺은  과거의 결실을 누리기만 할 뿐 한 걸음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비판받아 마땅하다. 부끄럽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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