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30   289

김재명의 평화이야기 12

쇠고기 파문 계기로 돌아본 똘레도와 이명박

글·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kimsphoto@hanmail.net

2008년 한국을 분열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은 7년 전 페루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지난 2001년 페루의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10년 독재가 무너질 때의 현지취재 얘기다.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페루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마음 졸이다가 페루 야당연합의 대통령후보 알레한드로 똘레도를 만났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제학박사 출신인 똘레도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난날 가난했던 한국이 1960년대와 70년대에 크게 경제력을 키울 수 있었던 데는 보호무역도 한몫했다고 풀이했다. 관세장벽이 통하던 시대에 성장 드라이브를 걸었던 한국은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지만, 페루는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였다.

똘레도는 ‘국가 운세’에 대해 말했지만, 한 국가의 정치지도자로서 스스로 운세를 개척해나갈 의지는 약했다. 페루 대통령에 뽑힌 뒤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등 재임기간(2001~2006년) 내내 페루의 경제빗장을 열어젖혔다.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지지율은 급속히 떨어졌다. 페루 최초의 인디오 출신 정치인이긴 했지만, 똘레도는 전통적으로 중남미를 ‘미국의 뒤뜰’로 여기는 미국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친미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한국도 미국의 뒤뜰인가

페루와는 둥근 지구 정반대편에 자리 잡은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검역주권을 포기한 채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기로 한 부끄러운 사건은 이 땅의 선량한 많은 이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날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도록 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국제정치학의 잣대로 재보면 어떤 비판적 결론이 나올까. 대답은 너무 뻔하다. 한국은 1990년대 초 옛소련이 무너진 뒤 유일 초강국으로 떠오른 21세기 패권국가 미국에 휘둘리는 ‘뒤뜰 국가’이고, 그런 나라의 권력자는 페루의 똘레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줏대 없는 친미 정치인이란 안타까운 비판이 따라붙는다.

미국은 21세기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권력(자본,  금융)과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권력을 지닌 강대국이다. 신자유주의 깃발을 휘두르며 몰아세우는 미국의 세찬 개방 압력에 많은 나라들이 반감을 품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의 텃밭이었던 남미에 좌파정권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미국의 미주공동시장(FTAA)에 맞서 남미공동시장(MERCOSUR)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그런 맥락에서다. 남미 국가들의 그런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한국은 쇠고기 문제에서 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도 없이 너무나 쉽게 무릎을 꿇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나는 일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 하나. 오만한 경제대국 미국의 힘을 이루는 바탕은 강한 군사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운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부으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그렇게 구축한 ‘미국 요새’(American fortress)를 본거지 삼아 전세계를 힘으로 지배하려는 ‘21세기의 로마제국’이 바로 미국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국제분쟁과 평화, 군사적 분야의 조사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싱크 탱크다. SIPRI는 해마다 6월에 『군비·군축·국제안보 연감』을 펴낸다. 이 연감에는 지구촌의 분쟁 현황, 전세계 국방비 지출과 무기수출 현황을 비롯, 여러 군사관련 정보자료들을 담고 있다 (http://yearbook2008.sipri.org 참조).

2008년도 SIPRI 연감에 따르면, 미국의 2007년도 국방비 지출총액은 5,479억 달러. 전세계 국방비의 절반 가까운 어마어마한 비율(45%)을 미국 혼자 지출한다. 우리 돈으로 500조 원이 넘는 규모다. 미국 다음으로 ‘군비지출 빅 10’에 드는 나라들은 2위 영국(597억 달러), 3위 중국(583억 달러), 4위 프랑스(536억 달러), 5위 일본(436억 달러), 그 뒤로는 독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 인도 그리고 한국(11위)이다. 국방비 지출규모로 ‘축구 드림팀’을 짠다고 치면, 한국도 베스트 11에 끼는 셈이다.

미국산 무기들이 혹시 쇠고기처럼…

미국은 국방비 지출 규모 1위지만, 세계 제1의 무기수출국이기도 하다. SIPRI 연감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전세계 무기시장의 31%를 미국이 지배하고 있다(2위는 러시아 25%, 3위 독일 10%, 프랑스 9%, 영국 4%). 이런 우울한 통계는 미국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세계 국가들을 전쟁의 유혹에 빠지도록 만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품게 된다.

한국은 미국 무기산업체들에겐 중요한 고객이다. 2003년~2007년 5년 동안 미국의 무기수출을 금액 비율별로 따지면, 한국 12%, 이스라엘 12%, 아랍에미리트연방 9%, 그리스 8% 순이다. 중동의 강고한 친미국가인 이스라엘과 더불어 한국은 미 무기업계의 VIP 고객명단에 붙박이로 올라 있다.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떠오른 궁금증이 있다. 한국이 들여오는 미국산 무기들이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것처럼, 터무니없이 미국의 장삿속 이해를 관철시키는 그런 불리한 거래조건에 따른 것들은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물론 설마 그럴 리야 없다고 믿고 싶지만, 미친 쇠고기 파동은 엉뚱하게 그런 상상력을 자극한다. 굳이 쇠고기 파동이 아니더라도 지난날 미국이 한국을 봉으로 여기는 일이 잦았던 탓이기도 하다.

끝으로 아득히 꿈같은 얘기 하나. 언젠가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사라지고, 미국산 무기를 비롯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각종 무기들을 녹여 농기구인 보습과 쟁기를 만드는 날이 온다면,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주권을 되찾고 광우병 걱정을 덜게 되는 날이 온다면, 바로 그런 날 평화를 사랑하는 이 땅의 사람들은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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