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30   1409

특집_유가 폭등이 미치는 영향: 마약 같은 석유

마약 같은 석유

안준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 부장 ahnjk@kfem.or.kr

지난 1월 2일 서부 텍사스 원유(WTI)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그리고는 계속 상승하더니, 최근 131달러에서 주춤하고 있다.

왜 이렇게 석유가격이 올라가는 걸까?

중국,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급격한 석유소비로 인한 수급의 불안정이 이유이지만 이것 못지않게 많이 듣는 말은 투기자본과 달러화 약세이다. 이 말은 투기가 서서히 잡히고 달러가 제자리를 찾으면 석유가격은 다시 안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석유가격은 2002년부터 계속 올라가고 있다. 2002년 초 미국 서부텍사스유의 가격은 배럴당 20달러 선이었다. 2006년 초에는 배럴당 가격은 62달러로 4년 동안 3배나 올랐다. 최근에만 석유가격이 올랐던 것이 아니었다. 2년을 넘게 가격상승이 이어지고 있고, 이것은 단지 투기자본과 달러화를 근본원인으로 찾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하긴 지금껏 어떤 석유전문가도 제대로 된 이유로 석유가격 상승을 말하지 못해왔다.

유가가 상승할 때마다 이라크 전쟁, 이란 등의 중동 불안정, 나이지리아 파업, 석유정제시설 부족 등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6개월 늦어도 2년 안에 배럴당 200달러가 닥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미 석유생산은 최고 정점에 이르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세계의 석유소비를 채우기 위해서는 석유를 더욱 많이 발견해야 하는데, 이미 1980년 초부터 소비되는 양이 발견량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2005년 45억 배럴의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소비량은 약 300억 배럴에 달했다. 새로 발견되는 석유의 양이 소비량의 15% 정도밖에 안 되는 이런 속도로는 상당히 빠르게 일어나는 석유고갈을 막을 길이 없다. 가격상승의 원인은 단순한 이유가 아닌 근본적인 이유가 있던 것이다.

석유문명의 위기

지난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다. 석유의 발견과 활용은 인류의 생활에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풍요를 얻기 위한 석유 쟁탈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함께 일으켰다. 석유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모든 생활방식을 석유 없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대규모 식량 생산을 위한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와 같은 농업기계가 석유를 연료로 자리를 잡아갔다. 심지어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사무실과 주거지가 시멘트와 더불어 각종 석유로부터 얻은 화학제품으로 뒤덮여 있다. 목재는 점점 줄어들고 석유화학제품들이 자리를 차지해갔다. 우리가 입는 각종 기능성 옷들마저 석유로부터 얻는다.

산업에서는 석유를 정제하여 연료와 나프타를 만들었다. 석유는 산업공정에서는 절대적인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또한 석유로부터 얻은 나프타는 플라스틱에서 비료, 약품에 이르기까지 신비한 마술처럼 무엇이든 만들어냈다.

실제로 석유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들어가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가정과 산업의 에너지원으로 석유화학공업의 기초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중요한 석유가 점점 고갈의 위험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석유의 고갈을 점점 늦출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에너지디자인』의 저자 바츨라프 스밀 박사는 인류 기술 중 가장 발달한 기술이 바로 석유채굴기술인데, 이러한 기술발달로 더 많은 양의 석유를 채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석유정점은 지금이 아니라 2080년 정도 되어야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캐나다는 오일샌드를 캐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오일샌드는 말 그대로 모래와 기름이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모래에서 원유를 추출하기 위한 비용이 원유를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비쌌다. 그러나 최근 고유가가 오일샌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오일샌드에서 원유를 추출하기 위한 에너지사용은 다시 캐나다의 온실가스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발리에서 있었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캐나다는 EU가 제안한 2020년까지 90년 대비 25~40%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앞으로도 고유가로 인해 오일샌드 투자가 늘어야 하고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더 강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증가하는 세계 에너지소비를 줄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일샌드를 채굴할지라도 다가올 석유고갈의 위기를 막기는 어렵다는 것이 석유생산정점(Peak Oil)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국이 전체 석유의 25%를 소비하고 있다. 이중 2/3가 자동차, 수송 등 교통에 쓰여지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 운행을 줄이지 않고, 중국과 인도가 산업생산을 줄이지 않는 한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기란 요원하다.

석유고갈에 대처해야

유가 200달러가 현실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유럽에서는 석유고갈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과 실천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미 작년 에너지장관회의에서 2011년에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매년 10%씩 화석에너지 소비를 줄이자고 제안했다. 영국의 켄 리빙스턴 런던시장은 런던시내에 들어오는 자동차에 대한 혼잡통행료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동차운행 억제정책을 쓰고 있다. 현재 런던에서는 혼잡통행료로 5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리빙스턴 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 시행한 바 있는 유류세 인하에도 반대하고 있다. 오히려 통행료를 올려서 마련한 재원을 대중교통 확대와 재생가능에너지 재정으로 쓰자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다. 새뮤얼 보드만 에너지 장관은 “국민 모두가 더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나 다른 전자제품들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끄고 에너지절약형 CFL(고효율 전구)를 쓰고 카풀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라면서 국민에게 에너지절약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시민들도 고유가로 인해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한다. 픽업차량이나 SUV의 인기는 시들어가고 하이브리드나 소형차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만약 유가 200달러 시대가 오면 GM가 같은 자동차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자동차회사의 생산체제를 소형차, 연비 좋은 차,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 전기자동차 생산의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난 3월 녹색연합 보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유 취약성지수가 높다고 한다. 인도에너지자원연구소(The Energy and Resources Institute)가 26개 석유 순수입국의 석유취약성 지수를 분석해 지수로 나타낸 결과, 필리핀 1위, 한국 2위, 인도 3위, 중국 4위이다. 석유취약성 지수가 높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고유가와 석유정점의 위기에 다른 나라보다 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사회경제적 위험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97%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한국은 에너지소비에 있어서도 세계적이다. 에너지소비 세계 10위, 석유소비 6위, 전기소비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만 봐도 석유 없는 한국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석유가격 상승은 고스란히 경제·사회·정치 전 분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지훈 박사는 한국판 <뉴스위크>지를 통해 ‘연평균 유가가 200달러에 이르면 경제성장률은 예상치보다 5% 주저앉고, 물가는 3.2%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만약 200달러가 실현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의 실현은 고사하고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가상승률도 7% 가까이 상승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아직까지는 정부에서 전기, 가스, 교통 등의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번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봤듯이 고유가로 인해 화물차 운송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공공요금의 인상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미 한전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두 배 이상 뛴 유연탄 가격 상승으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 정부가 전력요금을 동결함으로써 피해는 고스란히 한전에 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국 한전은 파산하게 될 것이고, 파산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세금을 통해 긴급수혈해야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전력요금의 인상이 조만간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버스에서도 함께 나타난다. 특히 경유 가격이 급상승하여 휘발유가격을 능가하는 현 시점에서는 버스요금을 인상하지 않을 경우, 정부에서 버스회사의 적자를 고스란히 메워줄 수밖에 없다. 버스회사는 고유가로 인해 가급적 운행을 줄이려 할 것이고, 자가용에서 버스로 갈아탔던 이용자에게는 고통스런 출퇴근이 될 것이다.

최근 서울시의 경우 통행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6월 10일 서울경찰청 종합교통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총 통행량은 지난달에 18.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 일산 등 서울 외곽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서울시 경계 통과차량도 700여만 대 가량 줄었다.

통행량이 줄어든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이긴 하지만 경유가격 상승으로 인해 화물차운행이 대폭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다. 물론 자가용에서 대중교통으로 바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가용 통행량이 줄어든 만큼 편리한 대중교통을 확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유가라고 할지라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던 자가용 운전자를 다시 자가용을 타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1998년 IMF 당시에도 초기에 자가용이 급격히 줄다가 불편한 대중교통 때문에 다시 자가용이 늘어나기도 했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은 금리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산층, 서민들에게는 제2의 IMF와 같은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항공유 가격 상승으로 인한 해외여행비의 증가는 관광산업을 축소시킬 것이며, 배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어민들에게 유류비 인상은 어업활동에 크게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시민들은 밀, 옥수수 등의 농산물 가격 상승과 식료품 가격의 인상, 교통·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의 인상으로 더욱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고유가로 인한 에너지소비절감은 기후변화완화와 대기환경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럴당 100달러가 시작된 올해부터 전력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작년에 비해 5.6%가 증가했고, 특히 1~2월의 경우 전년에 비해 약 10% 가까이 증가했다. 겨울철 난방이 유류에서 심야전력으로 급격히 이동했다는 증거다. 결국 이러한 전력소비의 증가는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더 증설하게 만든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늘어난다면 결국 기후변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기 대처 방법을 고민하라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에너지절약’만이 지금의 위기를 구해낼 수가 있다.

고유가로 인해 자전거 판매는 최고 호황을 맞이했다. 삼천리자전거 주식은 최근 몇 년 동안 급등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요즈음 가장 화젯거리는 ‘에코 드라이브’이다. 에코 드라이브는 급출발, 급제동, 급가속을 안 하고 시속 60~80km 적정속도를 유지하면서 운전하여 에너지를 아끼는 방식이다. 어떤 운전자는 에코 드라이브를 통해 자동차 표준연비보다 1.5배의 연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아끼기 위한 자동차 운전자들의 노력들이 인터넷을 통해 홍수처럼 번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라 포스트’라는 우체국에서는 배달차량 500대를 전기 자동차로 바꾸어 연료비를 절약하고 있다. 이 회사는 5년 안에 전기 자동차를 1만 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심지어 직원의 출퇴근 이동거리를 줄이기 위해 주거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직원을 배치하기도 했다. 사노피라는 제약회사는 약품 운송수단을 항공에서 선박으로 바꾸기도 했다. 해외 화물의 경우 80%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고유가가 결국 기업을 친환경적인 구조로 만들고 있다.

미래기술도 급성장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차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등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보급될 전망이다. 특히 전기를 충전해서 갈 수 있는 휘발유·전기 겸용 차량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은 2010년에 양산에 돌입할 전망이라고 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은 수소차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대중화에 성공할 수도 있다.

고유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역시 재생가능에너지이다. 국내에서도 태양광의 경우 이미 100MW를 넘어섰다. 불과 3~4년 만에 이룬 결과이다. 주식시장을 보면 현대중공업, 에스에너지, 유니슨처럼 태양광, 풍력을 만드는 회사들이 최대의 수혜주로 등장하고 있다.

풍력발전단가는 가스발전단가보다 이미 더 저렴해졌다. 태양광의 경우도 소위 그리드패리티(Grid parity: 재생에너지가격과 일반발전가격이 같아지는 순간)가 2015년 이전에 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고유가가 재생에너지개발과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석유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차피 닥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향후 200달러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올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몇 년 전에 스펜서 존슨이 썼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인 적이 있었다. 두 마리 생쥐와 두 명의 꼬마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들은 미로 속을 뛰어다니며 치즈를 찾아다닌다. 주인공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미로를 통과해 비로소 치즈를 얻는다.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치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두 마리의 생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로를 향해 또 다른 치즈를 찾아나서지만 두 명의 꼬마인간은 치즈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불평만 해댄다. 누군가가 새로운 치즈를 갖고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꼬마인간.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에너지절약, 에너지효율향상, 재생가능에너지라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

석유는 우리에게 마약과도 같은 존재이다. 석유로부터 얻은 많은 편리함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약에서 벗어나는 길이 마약을 끊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이제 유가의 급등은 우리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어려운 위기상황이 지구환경을 살리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는 우리 모두의 노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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