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8월 2012-08-06   1960

[경제] 경제민주화, 재벌, 그리고 협동조합

경제민주화, 재벌, 그리고 협동조합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총선 이후 잦아드나 했던 ‘경제민주화’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새누리당에는 재벌개혁을 실천할 의원이 없다”며 비판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이 박근혜 의원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 재영입됐고, 공천조차 받지 못했던 유종일 교수는 야당의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식에서  “자연산 경제민주화와 성형 경제민주화를 구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야흐로 ‘복지 경쟁’에 이어 ‘경제민주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한계가 많다고 하더라도 선거라는 정치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준 선물임이 틀림없다. 전형적 시장만능정책인 ‘줄푸세’를 기조로 삼았던 박근혜 씨가 어떻게든 끼어드는 것은 이 두 의제가 시대의 요구요, 국민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방증한다. 
그러나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시장만능론이 뼛속까지 스며든 집단이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소명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또 한 번 새로운 술을 헌 부대에 담는 일이요,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 어리석음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 박근혜 의원과 새누리당이 ‘새 부대’로 비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대가 ‘성형’임을 증명하고 우리가 ‘새 부대’임을 믿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내걸고 나서자 문재인 의원은 “기존 순환출자도 규제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재벌개혁’의 의제로 첫 번째 칼날이 쨍그랑 부딪힌 것이다. 분명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지만 그 내용을 설명하기가 꽤 어렵고 문제점을 증명하긴 더 힘들고, 출자총액제한제 외에는 마땅한 수단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참여사회』의 독자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든다면 박근혜 의원은 문제 흐리기에 성공한 것이다. 순환출자가 총수의 지배를 극대화한다는 것까지는 쉽게 설명할 수 있어도 그것이 해당 기업과 전체 재벌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나라 전체에 해롭다는 걸 깨끗하게 증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마치 한미 FTA가 그랬듯이…….

제목 없음

          런던증권거래소 점령 시위에 내걸린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현수막.
          역내 경제 의사 결정, 필수 요건 보장, 최저·최대 임금 협동을 주장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재벌이 순환출자로 연결되면 개별적 효율성은 혹 높아질 수 있어도, 자칫하면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97년 외환위기가 바로 그 역사적 사례다. 결국 그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했다. 특히 삼성생명이나 현대해상화재와 같은 보험회사에 우리가 낸 돈이 그런 위험을 만든다는 건 더 속 터지는 일이다. 결국 이 문제의 약한 고리는 ‘금산분리’로 판명 날 것이다. 어느 쪽이 이 전략적 고지를 선점하느냐, 또 누가 더 실현 가능성이 높은 구체적인 정책(예컨대 은행법 등 관련 규제의 강화나 금융계열분리명령제의 도입)을 내놓느냐가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재벌은 순환출자로 경제를 지배할 뿐 아니라, 정치는 물론 사법부와 언론까지 지배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복잡한 이론이 필요 없어 국민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재벌의 불법에 대해 ‘불관용의 원칙’을 적용하고 제도적으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형량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론이라는 공공재에 대한 정부 지원 역시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제목 없음
경제적 효율성은 대개 따지기 어렵지만 인권침해 사례는 알려지면 즉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재벌 계열의 반도체, LCD 공장에서 발병한 각종 암이 그렇다. 특정한 공정과 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지만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용한 화학약품도 공개하지 않는다거나 환자의 가족을 돈으로 회유해서 사실 자체를 은폐하려 한 것은 즉각 분노를 일으킨다. 같은 계열의 카드 자르기 운동과 같은 소비자 운동을 일으켜 효과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쉬쉬하는 가운데 이렇게 커질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작년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된 이후,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시대의 전조이다. 협동조합은 태생부터 자기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고 따라서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한다. 역사적 위기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협동조합이 증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2010년 지자체 선거를 기점으로 보편복지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온 것과 함께 시민들이 이미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편복지, 재벌개혁, 그리고 협동조합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의 봇물은 경제민주화라는 강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 가장 폭넓게 정의하면 경제민주주의란 경제 분야에도 시민이 참여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재정과 공정거래정책에 관한 시민의 참여가 복지와 재벌개혁이라면 협동조합이란 기업민주주의가 이미 실현된 형태이다. 이런 역사적 흐름이 현실에서 구체적인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큰 정치가가 이뤄야 할 사명일 것이다. 

 

캡션
Occupy the London Stock Exchange, St. Paul’s Cathedral, London
런던증권거래소 점령 시위에 내걸린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현수막. 
역내 경제 의사 결정, 필수 요건 보장, 
최저ㆍ최대 임금, 협동을 주장한다. 
ⓒ duncan www.flickr.com/duncan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