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8월 2012-08-06   1141

[특집] 외교가 없다: 위기의 한국 외교

위기의 한국 외교

김준형 한동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 중에 거센 비판 여론으로 인해 양국 서명을 불과 한 시간 남짓 남겨놓고 연기 보류. 정부는 절차상의 문제로 협정 추진을 연기한다고 할 뿐, 향후 협정 재추진 가능성 및 관련 계획은 밝히지 않음. 참여연대의 2차례의 관련 정보공개 청구 대해 정부는 대부분의 자료를 비공개 처분했을 뿐 아니라 관련 문서 목록, 심지어 연구용역 보고서마저도 비공개로 일관.

……한국 외교, 무엇이 문제인 걸까

 

한국 외교의 위기라고 진단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는 파탄 상태이고, 러시아와 중국과는 수교 20여 년 이래 최악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과 친미 일변도 정책 4년 반 만에 가져온 참담한 결과다. 친미 일변도였다면 미국으로부터 확보한 이익으로 다른 손실을 상쇄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외견상 전임 정부에서 삐걱거리던 한미관계와 비교하면 순항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오히려 정부의 저자세 외교로 말미암아 FTA 재협상, 쇠고기 협상, 대량의 무기구매 등 그야말로 ‘대미 퍼주기 외교’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역대 최상의 한미관계라는 말은 워싱턴에서만 실감나게 공명한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G20과 핵안보정상회담의 개최로 글로벌 거버넌스에서의 노출 빈도는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이벤트성일 뿐이다. 더욱이 이는 내실보다는 미국의 힘에 편승한 빛 좋은 개살구로 한국의 영향력이나 국격을 독자적인 외교력으로 향상시킨 결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원인은 어디에?

그렇다면 한국 외교가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뼛속 깊이 친미·친일 성향을 가진 탓이 크다. 국내정치 맥락으로 보면 이러한 성향이 집권을 가능하게 했고, 또 정권 유지를 위한 핵심 지지 세력들을 결집시켰다. 김대중 및 노무현 정부의 집권 기간을 빼면 해방 이후 줄곧 대한민국의 권력을 독점해왔던 보수 세력의 권력 기반이 바로 대북 강경노선과 친미정책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10년 간의 거의 모든 정책을 집권하자마자 180도 뒤집었고, 그 중에서도 햇볕정책과 균형외교는 폐기 1순위였다. 원래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Balancer론’은 탈냉전을 맞아 냉전시대를 대표했던 한미동맹 절대주의를 지양하고 중국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일정 정도 균형을 유지하려는 외교노선이었다. 이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군사주의와 일방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중국과 대치 국면을 조성하고, 한국의 선택을 압박하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타개하려는 조치였으나, 한국과 미국 내 보수 세력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이 균형을 맞춘다는 자체가 주제와 능력을 무시한 과대망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관계를 악화시킨 반미주의라는 집중포화를 받았었다.  
   
이런 맥락에서 탈냉전이 초래한 필연적인 한미동맹의 약화를 생존 위기로 직결시키는 사람들과, 이들의 지지가 필요했던 이명박 정부는 ‘친미반북’을 핵심 기치로 내세웠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한반도의 평화가 절실한 국가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역내국 중에 대북 강경책에 가장 심하게 집착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을 실용정부로 규정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실용은 없었으며, 철저하게 이념적이었다.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재현하면서 전임 정부 10년 동안 진전을 이루었던 거의 모든 남북관계를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6자회담 무용론을 앞세우고,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항복 또는 체제 붕괴를 압박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연평도 포격 등을 감행함으로써 대북 강경책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미국을 위한 미국의 한미동맹

친미 편향 외교가 임기 말에 그 위력을 배가하면서 국익에는 치명적 결과를 낳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굳건해졌다고 자찬하는 한미동맹이 실제로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었고,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종속되기에 이른 것이다. 임기 초부터 추진했던 ‘한미 전략동맹’은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한반도를 벗어난 미국의 전략에 동원될 가능성을 열었다. 한미동맹은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동맹이 되었으며, 특히 미국의 대중 봉쇄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이다. 미사일 공동운영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계획은 미국의 MD체제로의 편입을 위한 정지 작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중 봉쇄의 글로벌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 최근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체제를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원했으나, 껄끄러운 한일관계와 진보 정권의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미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빌미삼아 일본이 한미 군사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던 데다, 지난 6월 14일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 공동선언을 발표하여 중국을 겨냥한 삼각동맹의 구축을 본격화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명박 정부 임기 안에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을 통과시키기를 원했으며, 국내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정부는 밀실 통과를 시도했던 것이다. 

우리의 살 길은 균형외교와 다자외교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국익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는 실패한 외교다. 한미동맹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대북 위협 증가 때문이라는 억지 논리를 앞세워,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신냉전으로 가는 도박에 뛰어들고 있다. 지정학적 저주라고 불릴 만큼 세계의 초강대국들이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한-미-일 과 북-중-러의 신냉전의 대결구조가 재편된다면 우리는 엄청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이 구조적 측면이 있고, 또한 두 강대국의 의도가 일차적 변수지만, 우리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동북아에서 냉전적 대결 구조가 부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살 길은 균형외교와 다자외교에 있다. 참여정부의 동북아균형자론은 국내 합의 과정이 미비했고, 미국의 오해를 해소시키지 못하는 등 방법적인 측면에서 과오가 있었지만,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공존이 국익을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상황 인식 자체는 정확했다. 또한 6자회담을 비롯해서 다자협력체제를 정착시킴으로써 위협과 대결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군사동맹 질서를 약화시켜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 친미노선과 북한 위협 부풀리기로 일본 군사대국화의 빗장까지 우리가 앞장서 열어주려는 것은 그야말로 역주행 외교가 아닐 수 없다.

협정 체결 불과 몇 시간 전에 중단한 것은 외교적 결례지만, 그래도 국민의 힘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정부는 절차 문제만 인정하고 협정 체결을 재시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보류가 아니라 즉시 폐기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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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동대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로 한미관계와 동북아 국제정치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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