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7월 2000-07-01   659

중앙정치는 NO, 지방정치는 OK

시민운동가의 정치참여

‘정치참여 금지’.

이는 자타가 인정하는 시민단체의 제1의 덕목이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임원 또는 상근자들이 정당의 당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규제하고 있을정도다. 곧잘 무너지기도 하지만 시민운동 스스로 정치권과의 높은 장벽을 설치한 것이다. ‘정치=부패’라는 등식이 통용되는 우리 풍토에서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시민운동가에게 정치참여는 당사자 뿐만아니라 시민운동 전체에 대한 이미지 훼손으로 확대될 공산이 크다. 기존 정치권과 언론은 곧잘 이를 잣대로 시민운동을 재단하거나 폄하하곤 한다. 하지만 교수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기업인도 정치인이 될 수 있는 데 유독 시민운동가만은 안된다는 이중논리 속에 ‘정치지체 현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일부 시민단체, 지방선거서 ‘후보전술’ 구사할 듯

우선 각 시민단체들의 정치참여 전망을 들어보자.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5일 정책위원회를 재구성했다. 정치인들과의 ‘에코 브리지’를 형성해 환경 개혁 법안을 관철시키고, 한편으로는 생활정치인 지방정치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정책위를 강화한 것이다. 이날 이들은 2002년 지자체 선거에서 적극적인 ‘후보전술’을 구사한다는 데에 어느정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YMCA연맹도 마찬가지다. 서울 YMCA 신종원 부장은 “지역사회의 비전을 갖고 운동하면서 그 성과에 따라 지방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시민운동가들은 지방자치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할 상당한 경험을 갖고 있고, 현재도 YMCA 출신 인사 20여명이 각 지방에서 바람직한 지방정치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YMCA는 지방선거에서의 적극적인 후보 전술을 위해 ‘후보자 양성을 위한 학교’를 개최, 올 하반기까지 전국적인 후보군을 구성할 예정이며, 후보 지원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녹색연합 역시 그간 지역정치에 대해 많은 공을 들여왔다. 몇 년전부터 전국의 각 지자체의 환경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작업을 벌여왔고, 지역 특성에 맞는 바람직한 녹색정치의 상을 그려왔다. 지방정치 진출의 기본 토대를 차분히 준비해 온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아직도 중앙정치 진출에 대해선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할 역량이 아직은 미흡하고, 정치부패가 만연한 상황에서 ‘젊은 피 수혈’ 형식의 개별적인 진출은 시민운동과 사회개혁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리더십 공백만 생기고 시민운동의 순수성만 훼손당할 것이라는 우려다.

시기상조론, 순수성 훼손 우려도

이 때문에 그간 30% 여성할당제를 요구하며 정치진출에 적극성을 보였던 한국여성운동연합은 올해 초 총회때 궤도수정을 했다. 정관에 현직에 있는 인사의 정치 진출 금지조항을 신설하고, 지방정치의 직접 참여에 대해서도 일단 유보한 것이다. 이미경·한명숙 전 공동대표와 김희선 전 부대표를 중앙정치에 진출시키고, 96년 2기 지자제 선거에서 17명의 후보를 배출해 14명을 당선시키기도 했던 여성연합의 입장에서 볼 때 큰 폭의 방향 선회다.

“여러차례 현실 정치권에 간 인사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여성연합과의 조직적 관계라는 게 현실 정치권과의 이해 관계 속에 묻혀버리기 일쑤였죠. 오히려 리더십에 공백만 생기고, 시민단체로서 중립성을 지키는 데 다소 애로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결정한 것입니다. 의정 감시에 주력하는 게 여성운동의 발전에 더 보탬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여성연합 이경숙 부장의 말이다. 그렇다면 시민운동가의 정치충원은 요원한 것인가. 우선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자.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 역사를 되돌아보려면 91년 첫 지방선거 때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당시 시민단체들의 선거 참여운동은 두축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경실련을 주축으로 한 공선협 활동과 YMCA를 중심으로 한 ‘후보전술’. 후자는 ‘참여자치시민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재정 변호사, 김성수, 김덕승씨 등 서울에서만도 15명의 후보를 냈으며 전국적으로는 32명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지방정치는 생활정치이고 이는 시민운동의 지향과 다르지 않다는 게 당시 출마의 변. 시민단체의 주요 리더십이 시민운동에 헌신하는 자세로 출마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시민후보’들은 교육, 환경, 소비자 등 각 부문 시민운동의 개혁 과제를 담은 공동 선거팜플렛을 선거 홍보자료로 활용했다. 하지만 전원 탈락. 시민운동이 크게 부각되지 못한 상황에서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91년 첫 지방선거 때 시민운동가 대거 시도

시민운동의 정치 참여 역사는 96년 4·12 총선으로 이어졌다. 91년처럼 조직적 결의에 따라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서경석 경실련 전사무총장을 비롯, 시민운동 인사들이 기존 정치인들과 함께 정개련을 출범시키고 대거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으나 당시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였던 장을병 교수와 여성단체연합 이미경 공동대표만이 국회에 발을 들여놨다. 이 와중에 시민운동 내부에서는 시민운동가의 정계진출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으나, 대체로 시기상조론으로 모아졌다.

정치권에서의 ‘시민운동 스카웃’은 김영삼 정부 들어서 두드러졌다. 특히 김태동(청와대 전 정책위원장), 박세일(청와대 전 사회복지수석), 이각범(전 정책기획수석), 정성철(전 정무1차관) 경실련 인맥이 대거 진출했고,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간 정당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한 시민운동 출신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다소 인색하다. 개인적으로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더라도 시민운동의 개혁성을 정부 또는 정치권에서 관철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시민단체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사실 현재까지의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 경로를 놓고 볼 때 이를 문제시하는 일반 시각은 일면 타당하기도 하다. 현재 진출한 인사들의 면면을 놓고 볼 때 개인적 진출 그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정치권에 진출한 뒤 나름대로 개혁의 텃밭을 일궜다기 보다는 일부를 제외하곤 기존 정치인들과 똑같은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보수정치권에 흡수통합된 셈이다. 정치개혁을 위해선 개혁적 인사의 수혈이 필요하지만 시민운동 차원에서 봤을 땐 개혁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 게 딜레마이다.

따라서 과도기적이긴 하지만 중앙과 지방 정치참여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스카웃’을 통한 개별적 중앙정치 진출은 자제하고, 생활정치와 일맥 상통하는 지방정치에는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 지난 지방선거에서 시민운동 출신 400여명이 인사들이 대거 출마해 60% 이상의 당선률을 보이기도 했다.

시민운동가의 정치참여. 기존 정치권에서의 손짓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역시 장원 총장 사건에서처럼 ‘가혹한 심판대’에 설 가능성이 있다. 시민운동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속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를 보다 활성화해 이에 대비해야하지 않을까.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