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7월 2000-07-01   465

시민운동가는 건전지가 아니다

재충전에 목마른 단체 활동가들

혹자는 시민단체 사무실 풍경이 나날이 업무량이 많아지고, 빠른 속도로 일이 진행되고, 분업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상근자들도 스트레스와 격무로 휴식을 호소하지만 별다른 해소책없이 개인적으로 견디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기도 한다. 현재 시민단체에서는 주요한 인적 자원인 활동가들을 위한 재교육ㆍ재충전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으며, 활동가 개인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한국의 시민단체는 할 일이 많다. 사회 각층에 만연해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감시기능, 여론화, 대안제시, 그것을 넘어 대안적인 문화형성까지 주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늘 시달린다. 물론 누군가가 강제로 이 짐을 시민단체에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이런 시민사회의 막중한 과제들은 시민단체의 상근자들에게 그대로 직결된다. 그래서 시민들의 눈에 시민단체 상근자들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로 비쳐지고, 실무자들은 ‘할 일은 많지만 몸과 마음이 일치가 안되어, 혹은 스트레스와 격무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고충’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시민운동은 시민단체에 근무하는 활동가들만의 임무가 아닌 것은 명백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시민단체 위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먼저 시민단체에서는 활동가들을 위한 재충전·재교육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업무지원교육은 미비한 상태

현재 각 시민단체에서는 딱히 재교육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중 국제적인 연결망과 전국적인 조직력이 있는 YMCA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간사학교라는 전문 지도력양성과정인 한달간의 합숙과정을 2년간 거치고 난 다음 논문을 쓰는 과정이 있다. 간사학교 외에도 AOS(Association of Solidarity) 교육이 일년에 2번씩 있다. 또한 간사분과위원회가 있어 수시로 분과별 교육 및 워크숍을 진행한다. 국내 교육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교환간사제도가 있어 YMCA 각 지역지부에서는 자매관계가 있는 국가의 지부와 협의하여 인적교류가 가능하다. 또한 지역 지부 형편에 따라 1년에 한두 명 정도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와 홍콩에 있는 간사학교에서 한달 여간 교육을 받고 돌아온다.

YMCA를 제외한 다른 시민단체들은 업무 능률 향상이나 전문성에 대한 교육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실무교육이라고 이뤄지는 것은 영어와 컴퓨터 교육 정도인데, 외부전문기관과 연계하여 위탁교육하는 단체가 있다. 참여연대 또한 최근까지 외국어 학원과의 연계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현재는 외국인 강사가 정기적으로 사무실을 방문해 간사들과 자연스러운 환담을 나누며 영어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참여연대는 스터디그룹을 형성해 개인별로 영어공부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 업무교육의 일환으로 경실련에서는 ‘시민단체 전략적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12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활동가들은 실제로 업무의 효율성을 배가시키는 실무교육 외에 시민사회 전반에 관련된 총체적인 학습을 원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욕구들에 대해선 대부분 개인적으로 대학원을 진학하는 방법으로 해소하기도 한다.

“시민단체는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죠. 시간적인 배려도 어느 정도 있구요.” 홍일표(참여연대 조세개혁팀) 간사의 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업을 받기 위해 일주일에 이틀, 6시간을 단체에서 배려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런 시간적인 배려외에 시스템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경제적인 부담이 해소되었으면 하죠. 저의 경우에는 학교에 장학금 신청을 하려면 대상자에서 제외돼요. 이유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에 분류되거든요. 웃긴 사실은 어떨 때는 무직자 취급을 받다가 이럴 때 직장인으로 분류된다구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학교측에서도 학점당등록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시민단체 내에서도 직접적인 재교육프로그램을 관리하지 않더라도 활동가에게 업무외 학습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결국은 장기적인 투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 시민운동의 동력은 활동가들의 자발적인 헌신성에 의해 뒷받침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가 언제까지 유효한 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경실련의 한 활동가는 “우리는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건전지가 아니”라며 조직의 대의와 필요에 의해 활동가 개인의 희생이 담보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휴가를 자기성찰적 계기로

최근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감에 따라 경희대와 성공회대에 NGO대학원이 개설되었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이거나 전직 교사 혹은 어떤 식으로든 시민운동과 관련이 된 사람들이다. “사회체계에 대해 기능적으로나 구조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또 NGO들의 국제적인 흐름, 국제적인 동향도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구요.” 현재 성공회대 NGO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임태훈(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 씨의 말이다.

이런 경우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민단체 생활과 병행하는 경우이지만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사유 등에 의해 장기휴가제도를 활용한다든지, 안식년을 이용해 그동안의 격무에 대한 재충전의 기회로 이용하는 활동가들도 있다. 각 단체별로 안식년에 대한 내규는 조금씩 다르다. 경실련은 7년, 녹색연합은 6년, 참여연대는 7년, 환경연합은 10년 이상 근속자들이 1년의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올해로 6년째 환경연합 국제연대부에 근무하는 김춘이 부장은 “안식년을 쓴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공부예요. 그간의 운동을 정리하고 앞으로 전망을 내다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며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환경연합의 활동가가 유학을 위해 휴가제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미국에 두명, 영국에 한 명이 있다. 모두가 환경관련 분야 학업을 전공하고 있다. “전 환경운동이 환경뿐만 아니라 전쟁, 인권, 평화에 대한 이론 및 실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이라면 국제환경협약 등이 제3세계나 제 1세계에 각각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지 비교분석해보고 싶어요. 그것도 NGO의 시각으로.” 김춘이 팀장은 활동가들의 고학력, 엘리트의식을 염려하여 얼마 전까지는 유학가지 않으려고도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는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로 활동가가 어떤 방법을 택하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더욱 풍부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환경연합과 참여연대는 활동가 해외유학지원이나 재교육프로그램을 위한 얼마의 돈을 적립하고 있다. 환경연합은 현재 3,000만원, 참여연대 1억원이 마련된 상태. 환경연합은 이 장학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운영안을 마련중이며, 참여연대는 지원 대상자를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홍콩대학 법과대학 인권관련 석사과정에 지원한 이수효 씨는 “나에게 운동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며 자기 성찰적인 일련의 행위였다”고 회고했다. 이수효 씨는 참여연대에 6년간 근무했으며 99년 12월 이후부터 휴직상태이다. 지원한 홍콩대학 1년 단기 석사과정을 이수하게 된다면 학비는 아시아재단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이수효 씨 1명을 추천해놓은 상태이고, 현재는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시민단체의 활동은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형태로 이루어져야죠. 기본적으로 활동가는 개인적인 열정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보다 평등·평화·민주주의라는 가치들이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나 자신 속에 존재하는 그 가치들은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바라보고 싶어요.”

그는 현재 자신이 지원한 “홍콩대학 석사과정 또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휴직기간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그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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