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6월 2008-05-19   1635

특집_ 곡물값 폭등의 원인과 대책: 곡물위기와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

곡물위기와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

손재범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사무총장 mastersjb@gmail.com

지구촌이 곡물가격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밀, 옥수수, 콩에 이어 최근에는 쌀값이 폭등하여 국내외 언론은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국제 곡물값이 이렇게 상승하고 있는 데는 중국, 인도 등 신흥대국들의 곡물 수요 증가와 육류 소비 증가로 인한 사료용 곡물 수요 증가, 생산단가와 유통비용 상승, 투기자본의 유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오래 갈 것이라는 데에 있다. 곡물 수요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식용·사료용 수요뿐만 아니라 1990년대 중반 이후 친환경 바이오 연료용 곡물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여 곡물의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지르게 된 것이다. 곡물의 생산은 그 특성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급변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량을 제때 조절하기 힘들어 가격 상승을 계속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등이 수출관세를 신설하는 등 자국 수출물량 제어에 들어갔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식량폭동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식량의 무기화’, ‘식량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은 자급률 100% 넘는데 우리는 25%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떨까?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5.3%로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6위로 나타났다. 자급률은 한 나라가 곡물 소비량 중 얼마만큼을 자국 생산으로 충당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식량안보상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에는 자급률 95.5%에 이르는 쌀이 포함된 것이어서 쌀을 제외한 곡물 자급률은 5%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전체가 연간 100kg의 곡물을 필요로 한다면,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곡물이 5kg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소수 농업인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FTA(자유무역협정) 를 추진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진정한 선진국 G7 중 일본을 제외한 여섯 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100%가 넘는다. 호주 280%, 프랑스 329%, 캐나다 113.7%, 독일 147.8%, 스웨덴 139.9%, 미국 125%의 자급률을 자랑한다. 식량을 자급하지 않고서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과 침략의 역사 속에서 세계 각국이 식량 확보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곡물가격 파동의 주요 작목들을 수입에 의존한다. 밀은 99.8%, 콩은 91.2%, 옥수수는 99.2% 수입한다. 해마다 1,400만 톤이 넘는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5위의 곡물수입국이다. 앞으로 WTO(세계무역기구) 협약과 FTA 추진, DDA협상 등으로 쌀도 관세를 통해 수입개방이 이루어지게 된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식량안보가 곡물 수출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게 되는 것이다.

안정된 식량공급기지 노릇하느라 경쟁력 키우지 못해

우리나라가 이렇게 곡물자급률이 낮은 이유는 침략과 전쟁이 반복되었던 뼈아픈 역사에서 비롯된다. 일제강점기의 산미증식계획, 6·25 전후 삼백산업을 비롯해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대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 농업은 다양한 변화를 요구받아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쌀을 생산하여 일본인의 배를 채웠다. 미군정 하에서는 미국 내 잉여 농산물 처리를 위해 밀 생산 농가가 붕괴하였다. 군사정권에서는 보릿고개를 이겨내기 위한 정부정책에 따라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전 국민을 먹여 살려야 했다.

20세기 100년간 우리 농업, 농촌의 역사는 농업인 스스로 선택하여 걸어온 길이 아니었다. 일제강점, 미군정, 군사정부 등의 환경 변화 속에서 정부의 요구에 따라 우리 농업은 안정된 식량공급기지, 우수한 노동력 제공기지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으나 자생력은 갖추지 못했다. 전쟁과 침략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농업정책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UR(우루과이 라운드), WTO, FTA 등에 맞서 경쟁력을 키우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다.

경제개발계획 이후 대내외적 환경의 변화는 국민들로 하여금 농업에 대한 관심을 소홀케 하였다. 도시화로 많은 농업인이 농촌을 떠났다. 1995년 485만 명이었던 농업인구는 2007년 327만 명으로 줄었다. 65세 이상의 농업인구가 1995년보다 22% 많아진 57만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 등으로 농업시장 개방이 속도를 내면서 농업 종사자의 자살률이 지난 5년 동안 크게 높아졌다. 2006년에는 농업인 1,145명이 자살을 하였다. 하루에 3명 꼴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전체 자살자 중 6.2%를 차지했던 농업인이 2006년에는 8.8%로 늘었다. 

우리가 배고픔을 모르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얼마나 됐고, 누구의 희생에 의한 것이었는가? 밀려들어오는 외국 농산물을 언제까지 싸게 사먹을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생필품은 대체할 수 있지만, 식량은 그럴 수 없다. 대체재가 없다는 것은 가격이 폭등해도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비싼 가격에도 기름을 사올 수밖에 없다. 하물며, 먹지 않고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가? 세계 주요국들이 자국의 식량보호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량위기에 대처하는 일본의 자세

가까운 일본은 곡물자급률과 농업환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식량안보를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은 우리와 판이하다. 일본은 대규모 종합상사들이 글로벌 곡물유통시장에 50년 이상 공을 들여왔고, 식량위기에 대비하여 해외 농지도 상당 규모 확보해 놓았다. 식량 수출입도 소규모 점조직으로 해외시장에 대응하는 우리와는 가격협상력 등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식량 위기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매뉴얼에서도 일본은 크게 앞서 있다. 일본은 식량 비상상황 발생 시 사태의 심각도에 따라 △사태 추이에 따라 식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단계 1 △ 최저한도 열량공급은 가능하나 특정품목의 수급이 부족한 단계 2 △최저한도 열량공급이 곤란할 수 있 단계 3 등 단계별 대응 기준을 마련해두고 있다. 쌀뿐 아니라 자급률이 낮은 소맥 대두 옥수수 사료 등에 대해서도 비상사태에 대비해 일정 기간분의 소비량을 정부가 비축해 두는 농산물비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식량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 제고에도 적극적이다. 식량자급률 향상을 위한 전략홍보추진사업에 일본 정부는 올해 새롭게 20억 엔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대대적인 식량안보 개선 프로젝트에 돌입한 상태이며, 농지보존과 농지이용에 대한 규제강도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농가에 대한 소득보전정책 역시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다. 우리나라는 쌀 등 일부 품목에 제한적으로 소득보전을 하고 있으나 일본은 집락경영을 하는 농가에 한해 정부가 지원하는 품목과 상관없이 농가 소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리는 특정 품목에 한해서 소득보조가 있기 때문에 그 작목에 쏠림현상을 야기해 시장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 반면 집락 단위의 보조금 지원은 작목별로 영농 대규모화를 추진하기 쉬운 이점이 있어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품목별 조직화를 용이하게 이룰 수 있다. 또한 일본은 소비자단체, 지자체와 농업인단체의 연대를 통해 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운동을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학교급식과 단체급식에 지역에서 생산한 신선 농산물을 활용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업 포기하라는 거꾸로 농업정책

먹을거리를 생산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을 유지하는 농업은 국가의 기초·기간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 정책은 산업 차원이 아니라 농촌의 유지, 발전 정책이 주가 되어야 한다.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은 식량자급률 유지 및 자국의 농업보호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경쟁력을 갖출 수 없는 농업은 포기하자고 한다. 외국 농산물이 값싸고 질 좋다며 빨리 FTA를 추진하자고 한다. 공장과 주택을 지을 수 있게 농지규제를 풀자고 한다.

세계는 식량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거꾸로만 가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농업에 대한 이해가 낮아 세계시장을 향해 도전하는 공세적인 농업을 지향한다. 기업인 출신으로 경제논리를 앞세워 값이 싸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단다. 대통령은 경제 발전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쇠고기 협상을 통해 30개월 미만의 소와 뼈를 포함한 부위까지 수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으며, 이 조치는 4월 말부터 적용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5월부터는 국제 곡물가 상승을 이유로 업체들이 GMO(유전자변형식품) 옥수수, 콩 등을 수입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대부분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구분할 방법이 없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식품으로 사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해성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물 실험 등에서 심장이나 신장에 영향을 미치고, 사산율이 훨씬 높게 나타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확률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안전성은 무시한 채 경쟁력 낮은 농업은 포기하고, 주요 산업을 키우기 위해 식량은 수입해서 먹는 것이 낫다는 비교우위론이 팽배해 있다. 농업도 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라고 한다. 안전한 농산물을 국민에게 공급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농산물을 일정수준 이상 소비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적정 자급률 유지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그나마 쌀 자급률 유지 덕분에 우리나라는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있다고는 하나 이제 FTA와 DDA에 의해 쌀 시장도 개방하여야 한다.

얼마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밀, 콩, 옥수수 등의 국제 곡물가격이 2배 오르면 우리나라의 밀가루 가격이 60%, 식용유는 25%, 전분 및 당분은 36% 오르는 것으로 자체 조사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의 곡물 가격 폭등은 올해 초 우리나라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곡물 가격의 상승 현상은 세계가 공업화 되어가는 만큼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식량안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농업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전환이다.

세계화는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와 형태를 봐가면서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한 국가의 식량안보와 지속적 경제성장의 기초가 되는 농업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엄청난 예산이 농업과 농촌에 쓰인 것이 사실이지만, 농업 보호에 대한 당위성과 공감대를 전 국민이 형성해가야 한다. 농업과 농촌의 보호와 시장 지향적 농정을 구분하여 농업예산을 적절히 배분하되 더 이상 농업을 시장에 맡기는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지역생산과 지역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농정 패러다임을 마련하고, 농민의 농업이 아닌 국민의 농업으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농민의 농업이 아닌 국민의 농업으로

농가인구가 점차 양·질적으로 크게 감소하고 젊은 층의 이농으로 영농승계자가 급속히 줄고 있다. 이는 농업의 비전 문제뿐만 아니라 농촌 복지수준의 열악함 때문이기도 하다. 농업정책이 산업정책이 아닌 농촌정책이 되어야 이유이다. 도시 수준의 복지환경을 수립하고, 직불금, 인센티브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농산물 유통제도의 혁신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구조는 농업인들은 생산만 할 뿐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저장, 가공, 포장, 도·소매까지 수많은 유통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정작 농업인들은 생산비도 건지기 힘든데,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으로 농산물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형적인 유통구조의 혁신과 함께 직거래 등을 통한 대안적인 생산과 소비체계를 확립함으로써 농업인과 도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 땅에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이번의 곡물 가격 폭등은 우리나라에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잘 활용하면 농업을 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성이 새삼 입증된 국내 쌀시장을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또 곡물 자급률을 될 수 있는 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식량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농업을 다른 산업처럼 수익성과 경제성만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농업을 살리는 것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늘어나는 무역적자를 줄이고, 식량안보를 튼튼히 하며, 지역의 균형발전을 동시에 이뤄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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