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7월 2012-07-06   1898

[여는 글] 새 시대에는 경제민주화를

새 시대에는 경제민주화를
김균 참여연대 공동대표

“시대가 바뀌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이병천 선생이 어디에선가 “시대가 바뀌었다”라는 말을 했는데, 요즘 경제민주화가 다시 대세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시대의 공기가 확연히 바뀌었음을 절감한다. 올해가 총선과 대선이 겹친 정치의 해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대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인지,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첫 번째 경제사회 정강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단 고마운 일이다.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다르지 않다.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노총, YMCA, 참여연대 등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다소 긴 이름의 연대기구를 발족하여 본격적인 경제민주화 운동의 시동을 걸고 있다. 경제민주화 시대가 기지개를 켜는 듯도 싶다.

  내 기억이 옳다면 87년 민주항쟁 이후 몇 년간 경제민주화 논의가 제법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를테면 민주화의 완성은 경제민주화에 달려있다는 민주주의 심화론이 있었고, 집권 초기 DJ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론 논의의 한 축도 경제민주화론이었다. 그 뒤 1997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가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면서 이 말은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과 동의어처럼 쓰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주주자본주의가 곧 경제민주화라는 잘못된 등식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러던 이 말이 요즘 들어 다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학술 차원에서 경제민주주의 또는 경제민주화 개념을 추상적으로 정의내리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경제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원의 소유, 배분 및 이용에 있어 민주주의 원칙을 적용하자는 간단한 주장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은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과정에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나의 존재와 자유가 소중한 만큼 다른 이의 존재와 자유도 동등하게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이러한 정치적 민주주의 원리를 경제 영역에도 적용하자는 주장이 경제민주주의이다.


  물론 시장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시장 관점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일원일표주의이다. 교과서 속의 주주자본주의가 그 예이다. 또 소비자 주권도 일종의 소비자 민주주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교과서적으로 작동하는 공정시장일지라도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피할 수 없다. 시장은 경쟁이고,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절차이므로 시장은 그 구성 원리상 불평등을 산출하는 메커니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정된 자원의 배분과 생산물 분배의 결과는 갈수록 불평등해질 수밖에 없고 경제권력의 집중과 외연 확대도 필연적이다. 반면 경쟁 탈락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소비할 자유(돈)도, 일원일표주의의 경제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한 줌의 권력(돈)도 없다.


  경제민주화는 돈의 등가성에 따른 일원일표주의 시장에 일인일표주의 민주주의 원리를 적용해보자는 입장이다. 그럴 때 (시장)경제에서 일인일표라는 인간의 동등성은 어떻게 작동될까. 원리로만 보자면, 우선 공동체 차원의 경제적 의사결정과정에 개개인은 동등한 입장에서 공동 참여하여 민주적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경제적 삶의 공간에서 적절한 수준의 개인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물질적 바탕, 즉 좁은 의미의 생존권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현실 속에서 경제민주화가 어떻게 구체화되어야 하는가를 미리 알기는 대단히 어렵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경제민주화의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다. 논자마다, 정파마다 모두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가능한 경제민주주의의 모습은 사민주의에서부터 케인스주의 복지국가, 반독점적 사회적 시장경제, 협동조합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그 중 무엇을 선택하고 구체화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물론 공감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이십여 년의 경험은 재벌개혁이 핵심이고 그래서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었고 모두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 실체화는 여전히 미지다. 청사진도 미완이다. 많이 토론하고 싸우고 그러면서 현실을 만들어가야 하는 힘든 과정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더디게나마 쉼 없이 다니다 보면 길이 되듯이, 때로는 즉물적으로, 때로는 숙고하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이상을 현실로 이뤄내리라 생각한다. 나는 경제민주화의 그릇 속에는 아직 아무 것도 없고 오래된 꿈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 꿈의 힘이 결국에는 더 나은 미래를 빚어 낼 것이라 믿는다. 내 보기에 그 꿈은 더불어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보편성이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황경식을 인용한다. 그는 롤스 『정의론』의 핵심인 ‘공정성으로서의 정의’ 개념의 맨 밑바닥에는 우연적 인간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보편적 사랑이 놓여 있다는 것을 수십 년에 걸친 롤스 읽기와 쓰기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그래서 말하길, ‘친구에게 술을 가득 따르는 유일한 방법은 술잔이 넘치도록 따르는 것이다. 그것처럼 정의의 완성은 넘치는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경제민주화의 완성 역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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