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6월 2000-06-01   937

6월 민주항쟁 13주년을 맞으며

시민과 민중의 차이를 넘어

올해는 6월 민주항쟁 13주년이 되는 해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은 4·19, 5·18 광주 민주항쟁과 더불어 해방 후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반독재 민주항쟁의 하나이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은 그 역사적 의의에 비해 그동안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듯하다. 10주년 기념행사 때와는 달리, 지난해 12주년 행사는 세인의 무관심 속에 ‘각계 610인 시국선언’, ‘시민달리기 대회’, ‘음악제’ 등 일회성 행사를 중심으로 치러졌다. 아직도 6월 10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이 실현되지 못한 채, 올해 13주년 기념행사도 지난해보다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고, 더욱이 6월 12일로 예정되어 있는 남북 정상회담에 묻혀버려 기념식이나 제대로 열릴까 우려된다. 내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6월 민주항쟁 기념사업이 초라해지는 것이 아니라, 6월 민주항쟁이 민족 민주운동에서 지니는 의의와 그 정신이 점차 망각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은 적어도 전국의 34개 시, 4개 군에서 400∼5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한 전국적 대중투쟁이었고, “통장에서 대통령까지 내 손으로”라는 구호에서 상징되듯, 6월 민주항쟁은 군사정권에게 빼앗긴 정치적 주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전개과정을 보면, 민주주의의 최소요건이라 할 수 있는 국민주권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이는 지난 4·13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가 유권자 혁명 또는 유권자 독립선언을 내세우며 유권자 권리찾기 운동을 전개한 것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총선시민연대는 총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낙선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번 총선을 통해 그동안 방관자로 머물러 왔던 유권자들이 화려하게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했으며 빼앗긴 주권을 회복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6월 민주항쟁이 민중의 정치적 주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었다면 도대체 우리는 지난 13년간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6월 민주항쟁은 군부독재 세력으로부터 이른바 6·29 선언의 항복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게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내 손으로 뽑았듯이 우리는 죽 쑤어 개 주듯 직선을 통해 노태우 군사정권을 합법적으로 승인하였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 직선제가 아니라 민중이 정치의 주역이 되는가, 다시 말해 민중을 위한 정치가 실현되는가 하는 점이다. 불행히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중은 정치의 주역에서 관객으로 전락하였다. 이는 김영삼의 문민정부에서도 그리고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영삼정부는 90%가 넘는 놀라운 국민적 지지 속에서 출범했지만, 자기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국민에게는 ‘IMF 경제위기’라는 엄청난 고통만을 안겨주고 끝났다. 50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라는 뜨거운 관심 속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도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만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DJP 연합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사람이 출범초기 김대중 씨의 상대적 개혁성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월간 『참여사회』에 따르면 집권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시민운동가의 77%는 김대중정부가 앞으로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 조사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김대중정부에 대한 기대나 지지도는 더욱 하락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는 등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에는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민중은 정치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국민들의 광범한 정치불신과 냉소주의에 편승한 보수우익 정치인들은 지역정치에 안주하였고 그 결과 이른바 정치지체가 심화되어 왔다. 이러한 정치지체 속에서는 우리 앞에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지역주의의 타파와 지역간 불균형의 해소, 재벌체제의 해체와 민주적 재편, 언론의 민주적 개혁, 반공 이데올로기의 극복과 민족통일의 달성,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근절,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정부의 수립, 교육 민주화 등 이 숱한 개혁 과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여야를 막론하고 보수 정치권에 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개혁은 여전히 민중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민중은 일시적으로 정치적 에너지를 폭발시키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개혁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을 우리 역사는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와 관련, 6월 민주항쟁의 주역들은 이번 4·13 총선에서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바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 시도,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민주노동당의 총선 참여가 그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학생운동가 출신의 386세대를 비롯 상당수 개혁적 인사가 정치권 진입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보스 1인 지배정치 체제의 벽을 깨고, ‘젊은 피’의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재야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보수정치에 동화되고 길들여지는 데는 국회진입 후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어느 야당 당직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들 젊은 정치인들을 기성 보수정객과 동일시하거나 또 그들의 가능성을 미리 과소 평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정치가 지금처럼 보수우익만의 잔치판이 되는 한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곱씹어 보아야 한다.

총선시민연대로 대표되는 시민운동은 이번 총선에서 낙선율 68.6%(수도권 95.5%)라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부패한 보수정치권에 대한 광범한 불신에 불을 질러 ‘바꿔’에 성공했다. 낙천·낙선운동은 국민의 잠자는 정치의식을 일깨우고 정치의 주도권을 보수정치권으로부터 시민사회로 이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비록 지역주의의 두터운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정치·사회로의 발전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크다. 최근 『참여사회』의 조사에 의하면, 언론(30.4%), 행정부(22.5%), 국회(19.6%), 재계(11.7%) 다음으로 시민단체(9.7%)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나타났다. 많은 이들이 21세기를 ‘시민의 시대’라고 하지만 시민운동은 이제 ‘시민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여 방향정립을 하여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표류하고 고통받는 시민의 절대다수가 다름 아닌 민중이라는 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주노총의 지원 속에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라는 열망을 안고 등장한 민주노동당은 원내진출 좌절이라는 뼈아픈 실패를 다시 경험하였다. 민주노동당이 ‘최소의석 1석 확보’마저 이루지 못한 것은 지역주의의 광풍, 1인 2표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의 무산 등 불공정한 선거관계법, 보수언론의 편향적 보도 등 외부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념, 조직의 협소함 등 민주노동당 자체가 지닌 문제점 또한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민주노동당은 21개 선거구에서 평균 13.1%의 득표율을 얻은 것을 가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였다고 위안을 삼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국회의원 한두 명의 당선에 안주하는 군소정당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권을 다투는 전국적 정당으로 성장하기 위해 새로 출발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6월 민주항쟁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자주·민주·통일의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 이제 민중의 정치 세력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상생적 발전 그리고 양자의 연대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4·13 총선을 기화로 노정된 민중운동 진영과 시민운동 진영간의 일정한 갈등관계는 부정적이라기보다 발전적 관계형성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 필요성은 되풀이되어 왔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을 지나치게 구별하는 편향, 양자를 지나치게 경쟁의 관계로 보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었다.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각각 독자적 운동영역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시민과 민중이 따로일 수 없다는 생각이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민중이 빠진 시민운동은 머지않아 현실의 벽에 부딪칠 가능성이 크고, 시민이 빠진 민중운동은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은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의 확보를 위해 신자유주의를 투쟁의 고리로 하여 구체적 연대사업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한 힘이 모일 때 비로소 의미있고 힘있는 시민운동의 발전, 진보정당의 건설이 가능할 것이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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