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6월 2000-06-01   615

노숙자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은 포기하셨습니까?

대통령님, 우리 사회의 복지 지평을 새롭게 만들 것으로 기대되었던 기초생활 보장제도가 현재 노숙자 및 노숙상태 직전에 놓여 있는 사람들(거리 생활자, 쪽방 생활자, 여인숙 기숙자 등)과 비닐하우스촌 거주자들과 같은, 이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형편에 처해 있어서 가장 이 제도를 필요로 하는 국민들을 배제하고 주민등록표에만 의존하여 시행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과 입법 예고된 시행령(안)에 따르면 급여는 ‘가구’를 단위로 하여 행해지며, 시행령(안) 제4조 1항에 규정된 가구 개념은 주민등록법상에 따라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내용을 근거로 합니다. 이러한 정주권 개념에 의하여 등재된 주민등록지에 거주하지 않는 노숙자, 쪽방 거주자, 비닐하우스촌 거주자, 이혼절차가 진행중인 별거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자, 무허가 주택 거주자, 주거시설이 아닌 교회 등 임시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하여 주민등록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자들은 현행 생활보호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보호권 밖에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경기회복의 수혜를 입지 못하고 있는 계층은 노숙자들을 비롯한 최하위 빈곤계층입니다. 바로 기초생활 보장제도는 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계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 탄생한 제도로 생계급여뿐 아니라 주거, 교육, 의료, 자활급여 등을 기본으로 합니다. 특히 자활사업이 주요축인 기초생활 보장제도 안으로 노숙자들을 비롯하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편입된다면 이들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하여 여러 대책들의 중복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주권 개념에 의해 이 제도로부터 배제된 5,500여 명(보건복지부 추산, 2000년)의 노숙자들은 임시시설에 불과한 쉼터에서 공공근로에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할 뿐 다른 희망이 없습니다.

집단 비닐하우스촌을 예로 들면, 서울시에 구룡마을, 개미마을, 장지마을, 통일촌, 화훼마을 등 5개 마을이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전문가와 함께 조사한 바로는 5개 비닐하우스촌의 2,500여 가구 중에 기존의 생활보호법의 혜택을 반드시 받아야 했던 가구수가 125가구 정도입니다. 이들은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도 기존 제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급여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이와 같이, 정주권 개념을 기초로 한 주민등록표에 집착하여 대상자를 선정함으로써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사회보장의 기본원칙인 ‘열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는 것에 위배됩니다. 이들에 대한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너무나 시급합니다.

따라서 ‘가구’의 정의를 주민등록표 기재여부와 상관없이 실제로 소득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하여 사회복지 전문요원이 실제 상황을 고려해서 수급자 선정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민간 영역에서 자활 관련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하루빨리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지원을 받는 자활 관련기관이 되어 자활사업에 대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임시시설인 노숙자 쉼터도 자활관련기관으로 지정됨으로써 노숙자들에 대한 자활 지원계획이 수립되고 자활급여가 지급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듯,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수급권자들을 새로운 제도 안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여 주십시오.

대통령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주민등록표상의 국민만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닙니다. 주민등록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할 만큼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마시고 기초생활 보장제도를 통해 이들이 자활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용단을 내려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류정순 박사 드림(개혁통신 57호에서 퍼온 글)

류정순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