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1월 2005-01-01   867

분단의 아픔, 관심과 사랑으로 치유해 나갔으면…

비무장지대 기행후기

바쁘게 살아가며 분단의 아픔을 잊고 사는 우리들. 나 또한 분주한 대학 생활 속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은 주변으로 흘려보내곤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6·25 전쟁기념일이 무휴로 바뀌어 한 주 속에 묻어가게 된 이후로는 더욱 ‘통일’에 대해 무뎌졌다. ‘통일은 한민족의 과제’라는 명제는 그저 머릿속에만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일 뿐 통일을 향한 노력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이를 확인한 이번 비무장지대(이하 DMZ)기행과 파주지역 답사는 놀랍고 기쁜 경험이었다.

먼 마음의 거리, 생각보다 가까운 비무장지대

지난 11월 20일, 참여연대 회원들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의 회원들은 공동으로 파주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기행은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에서 DMZ기행 가이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연대 회원들도 함께하게 된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있는 덕분에 평소에 유적지 답사를 자주 다니지만 DMZ기행은 처음이라, 평소 통일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와 참여했다. DMZ에 대한 지식이라곤 ‘그 동안 전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태학적으로 보존상태가 뛰어나다’는 매스컴의 보도를 들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DMZ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꽤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을 출발해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오두산 전망대이다. 날씨가 좋은 날엔 북녘 땅이 잘 보인다고 하는데 이날은 아침안개가 채 개지 않아 어슴푸레하게만 보인다. 강 하나만 건너면 황해도 개풍군, 북녘 땅이다. 서울에서 40여분 거리라는데, 물리적인 거리가 우리 마음속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단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심취한 듯이 북녘 땅을 바라보던 일행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지 궁금하다. 갈 수 없는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지만 임진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었다. 기행 내내 이어진 최양현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대외협력팀장의 열정적인 강의는 그동안 몰랐던 많은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준다. 서해교전으로 잘 알려진 북방한계선(NLL)은 한국 및 주한 미 해군의 작전명령서에만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어 북측의 NLL월선이 남쪽의 영해침범행위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남북의 영해가 명확히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실제는 한강하류에서 황해에 접하는 이 수역이 남북의 쌍방관리, 자유통행 지역인 것이다. 언론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당시 국민들을 긴장된 사회 분위기로 몰고 갔던 많은 언론보도를 떠올리니 어이가 없다. 또 천연생태의 보전지대로만 알았던 DMZ가 실제는 상습적인 산불로 인해 수목의 나이가 채 10년도 안 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임진각을 지나 통일촌으로 가는 과정은 절차가 엄격하고 경비도 삼엄했다. 신분증을 제출해 일일이 확인을 마친 뒤에야 들어설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대성동 마을은 이주의 자유를 제한받는 대신 정부로부터 면세혜택 등 여러 혜택을 받고 있다지만 역시 분단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대성동 마을을 나와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계속해서 보이는 지뢰표시에 대해 최양 팀장은 “현재도 비무장 지대는 물론이고 민통선 지역에 많은 지뢰가 매장되어 있다”며 50년대 후반부터 부분적으로 민통선 내 경작이 허락되어 마을이 형성되고 경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뢰사고를 당했다고 설명한다. 또 목숨을 걸고 토지개간을 마치니까 땅 주인이 나타나 소작인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뢰피해자들은 ‘폭발물 사고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군부대와의 약속 때문에 배상신청도 하지 못했다고 하니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처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국민을 죽음의 땅으로 내몬 정부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북한이 남침한 흔적인 제 3갱도를 관람한 후 도라산 전망대로 가는 버스안에서 최양 팀장의 설명을 들으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진실의 범위와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이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이란 커다란 노란 글씨가 인상적인 도라산 전망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망원경을 통해 500원짜리 동전의 효력이 다할 때까지 잠시나마 북한의 땅을 볼 수 있었다. 개성 공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들과 시가지의 고층 건물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민가들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였다. 모두들 망원경으로 북녘 땅을 바라보며 가보고 싶은 마음들을 억누르는 것 같다. 우리 마음도 안타까운데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군용 얼룩무늬로 잔뜩 칠해진 도라산 전망대 건물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한 장 박고 도라산역으로 출발했다. 도라산역은 현재 남한 철도의 종착역으로 경의선이 개통되면 서울에서 이곳을 거쳐 평양, 신의주까지 닿게 된다. 내부는 개찰구를 지키고 있는 군인 아저씨들을 제외하고는 서울의 기차역을 보는 듯하다. 개찰구 위에 ‘평양 방면 타는 곳’이란 표지판을 보는 것만으로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경의선이 개통되면 러시아, 중국, 몽고를 거쳐 유럽까지도 횡단이 가능해지겠지. 언젠가 이 역에도 사람들로 붐비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기행도 서서히 마지막 여정을 향해가며 다음 목적지인 미군 캠프 하우즈는 버스의 창문을 통해 보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땅의 62%, 전체 파주 면적의 14%가 미군에게 공여되었다는 사실은 또 한번 충격이다. 파주땅 1/10이 미국 땅이란 이야기이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미군이 철수하는 날 분단의 아픔을 품고 있는 파주도 그 아픔을 훨훨 날려버리기를 기원해 본다.

통일에 대한 공감과 희망을 나누며

갈매기와 벗하며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냈다는 반구정에서 기행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든 기행일정을 마치고 처음으로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한 소감을 말하며 통일을 향해 가는 길에 이러한 기행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파주 용미리에 있는 석불입상에 들러 저녁노을에 비친 거대하고 웅장한 석불입상의 모습을 보면서 파주 기행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파주기행을 통해 ‘통일’이라는 익숙하지만 나에겐 수동적이었던 명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듯하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이라는 과제는 멀어 보이지만 우리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치유되고 해결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얻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회원들도 통일에 대한 관심과 희망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값진 기행을 마련해주신 참여연대와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연정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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