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1월 2005-01-01   901

선(先)북핵 해결 논리에 갇혀버린 노무현 정부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와 한미관계 전환기에 등장한 노무현 정부가 출범 2년을 맞이하고 있다. 2002년 12월 대선에서 ‘대미자주’와 ‘햇볕정책 계승발전’이라는 공약을 내걸고 들어선 노무현 정부가 결코 만만치 않은 대내외적 안보환경 속에서 보여준 대미외교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나라 밖으로는, 대량살상무기(WMD)와 테러리즘 확산을 미국의 최대 위협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대외정책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라크에 대한 침략이 단행되었다. 미국의 세계군사전략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논의도 본격화되었다. 나라 안으로 눈을 돌리면,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한미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드높아지고 있었다.

미국의 선의에 기댄 연계전략

이렇듯 복잡하고 어려운 외교 안보 환경에서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나머지 다른 대미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북핵 해결에 대해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는 연계전략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의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불안한 교착 상태에 머물러 있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이전 비용을 부당하게도 한국민이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의 대가로 한국민은 테러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 2년 동안 노무현 정부는 한미 공조 틀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 아래 나름대로 분주한 외교행보를 보여 왔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 의지가 결여된 부시 행정부에게 유연한 입장 전환을 기대했던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최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기존의 대북정책 고수 의사를 밝힌 부시 행정부가 2기 외교안보팀을 대북 강경파로 구성하고 있어 향후 북핵 문제 해결의 전망 또한 밝지 않다. 더군다나 정부는 선 북핵 문제 해결 원칙을 고집하고 있어 남북관계 개선을 등한히 하고 있다. 애초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화해협력정책을 병행하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는 북핵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통해 대북 지렛대를 확보하고 북한이 협상에 나오도록 설득해야 할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북핵 문제와 연계시키는가 하면 대북협상채널을 확보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 협상 자세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관적인’ 희망에 기대어 ‘묻지마’ 파병을 강행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이해와 전략을 달리하는 미국에게 한국군 파병이 ‘악의 축’인 북한에 대한 압박과 고립화 정책을 변경시킬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파병은 미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다. 파병외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미동맹만을 정책결정의 판단기준으로 삼았고, 파병을 강행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조작과 왜곡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정세 판단과 자국민 보호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고, 거짓으로 드러난 미국의 침략 명분과 이라크에서의 인권 침해, 민간인 학살에 눈감아 버리는 반윤리적인 외교를 보여주었다.

큰 구상 없이 사안 별 대책에 급급

노무현 정부가 북핵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두면서 한미동맹 강화는 정부 안보정책의 중심이 되었다.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의도한 정부는 일련의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였다. 2004년 하반기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협상과 재배치 협상을 마무리하고 불평등성과 위헌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 협정을 발효시켰다.

그러나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동맹 재조정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미국은 기존의 대북 억지라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새로운 세계군사전략과 편제에 맞게 조정하면서 주한미군의 작전 범위를 확대하려 들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규모 군사전력을 증강시키는 한편 신속기동군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기지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내 전력 증강과 전진기지 배치는 지역 분쟁에 한반도가 의도치 않게 개입될 수 있으며 한국군의 역할 확대를 의미하는 한미동맹의 지역동맹으로의 전환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이미 미국은 2001년 9월 해외주둔 미군을 지상군 중심의 붙박이식 편제에서 신속기동 및 원정군 형태로 재편한다는 구상(QDR)과 2003년 11월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을 발표하였으며, 이를 위해 해외미군의 기지를 통폐합, 이전하고 주둔국의 부담을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듯 미국이 명확하게 지역안보동맹을 추진하는데 반해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재조정에 대한 구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사안 별로 대책을 마련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더욱이 북핵 해결을 최대과제로 두면서도 북한을 더 자극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배치와 전력 증강에 합의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것이며 한반도 위기를 더 키울 뿐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틀 위에서 대미외교 수행해야

이렇듯 북핵 해결을 위한 연계전략은 의도한 성과를 거두지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정책적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부시 행정부에게 새로운 대북정책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유연한 자세를 지속적으로 촉구하되 대북협상채널을 시급히 마련하고 과감한 에너지 지원 등을 통해 북한이 협상에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또 북핵 해결에 유리할 것이라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대미협상에 나서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미국은 외부 위협에 대해 군사적 개입도 불사하겠다는 공격적 대외정책을 동맹국들이 지지하고 더 나아가 동참하도록 하는 새로운 동맹관계를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동맹관계를 맺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한반도 위기를 가중시킬 뿐이다. 오히려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큰 밑그림을 갖고 대미협상 현안에 임해야 하며,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의 안보협력논의를 넓혀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권과 평화의 원칙에 따른 ‘윤리적 외교’를 천명해야 한다. 그것이 패권국가가 주도하는 국제무대에서 정부가 원칙을 갖고 대처하면서 강대국의 부당한 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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