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5월 2000-05-01   755

진보정당의 빛과 그림자

가능성 확인한 절반의 성공 자족할 때 아니다

이번 4·13총선에서도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 세력은 또 다시 원내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몇 가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출마후보 득표율로만 보더라도 지난 1956년 진보당(30.0%)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리수(13.4%)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울산과 창원에서는 거의 당선권에 근접하면서, 애초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의 인식지평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름대로 상향식의 민주적인 공천과정과 조직적이고 질서있는, 그리고 깨끗한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적어도 기존 정당정치세력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데도 일정 정도 성공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정치주체로 부각하면서 ‘대거’ 원내진출에 성공한 ‘386세대’ 정치인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민중적 ‘독자성’의 견지와 그에 따른 ‘참신성’이었다. 적어도 이들은 그들과는 달리 한국정치에 있어서의 가장 핵심적 문제인 민중적 ‘대표성’을 조직적 단위를 통해 담지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또 민주노동당을 비롯, 청년진보당을 포함하여 이번 진보정당 세력의 경우는 지난 시기와는 달리 ‘선거정당’의 면모가 아닌, 즉 원내진입에 실패하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 골간을 유지하면서 바로 ‘재창당’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즉 민중들의 구체적 삶과 요구에 밀착하기 위한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지속해내겠다는 점에서 원내진입에는 실패하였지만, 적어도 ‘실체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형성 가능성을 일단은 보여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우 치명적인 한계를 보여내기도 하였다. 우선 창당 과정에서 끊임 없이 제기된 것처럼 진보운동 진영 내 여러 정파세력들이 함께 하지 못하였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이것이 전체 민중들의 구체적 삶에서의 요구와 동떨어진 이념성과 정파적 이해관계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점이 대안적 정치세력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매우 심각한 내재적 한계의 측면이라고 할 것이다. 게다가 현장조직의 상당부위에 근거해 있는 조직의 불참은 선거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노동조합원에게도 다수표를 얻지 못하였다는 것, 즉 자신의 대중적이고 조직적 기반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데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로부터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전체 대의, 혹은 대세가 형성되었을 때, 그것을 역전시킬 수 없다는 자기 한계, 그리고 대세 밖에서 수행할 수 있는 별다른 실천 프로그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응한 적절한 판단과 실천을 참여의 방향으로 끌어내지 못한 정치적 역량의 미비이다. 또 당 건설의 주도세력 역시 이를 포용, 그들에게 참여의 폭을 열어주는 정치적 결단의 지점이 발견되지 않은 채, 그저 ‘대세몰이’만을 통해 불참세력의 참여를 강제하려 했다는 데서 리더십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울산북구 지역의 후보경선 과정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그 형식적 절차에는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바탕하여 그간의 노동운동의 투쟁과정에서 역시 절차적으로 문제없는 지역과 현장에서의 투표를 거친 합의에 의한 대표자 선출의 관례가 자기 정파 후보내기라는 이해관계에 의해 번복되면서 파괴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것이 울산북구 지역에서의 석패의 ‘직접적’ 요인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라고 할 때, 많은 기대를 건 사람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무자비한 인신공격 등은 ‘동지애’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야 할, 그리고 실제로 서로를 ‘동지’라고 호명하는 이들의 운동적 ‘자질’에까지 문제제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세심하게 찬찬히 들여다 보아야 할 지점이 존재한다. 즉 대기업 노조(원)와 중소기업 노조(원)간의 갈등이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울산의 경우처럼 특정 대기업 중심의 운동판에서 그것은 더욱 ‘피부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애초 이러한 점을 예측, 감안한 지역 당 조직 편성 등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 그리고 지역 내부로도 보다 많은 수혜를 받은 대기업 노조의 입장에서 먼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보다 섬세하고 큰 운동의 문화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끝으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전히 보다 많은 민중들을 전취해내기 위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정치세력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보다 구체화하고 일상적 정치활동을 전개하였을 때에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러한 실천과정에서의 ‘정치적 학습효과’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 보다 깊숙이 밀착해 들어가는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특히나 IMF 위기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과 영세 노동자 등의 생존권 박탈이라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한 채, 단지 조직된 대규모의 노동세력에만 의존하려는 ‘편의주의적’ 면모를 보여줬다. 사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는 민노당의 ‘이념적’ 편향 역시 이러한 편의주의적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조직표 역시 비조직층에 대한 설득력과 지지를 확보해 나가는 가운데, 더욱 공고화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4?3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실험은 형식적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이미지 메이킹’에는 성과적 측면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보여주는 정치’가 우선하는 현실 제도정치권 진입을 위해 매우 유효한 자원으로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민중들을 대표하고자 하는 일상적 정치활동에 의해 획득된 것이라기보다는 선거판에서의 ‘수의 놀음’, 그리고 총선 직후 방송사들에 의해 드라마틱하게 연출된 ‘가상적 대중성’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의 형성에 있어 한계를 갖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이러 저러한 정치지형의 편성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이후에는 앞서 제기되어진 자기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중적이며, 민주적인 진보정당으로, 그리고 혹은 정치세력으로 형성되기 위한 자기실천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야 한다. 즉 정치는 단지 자기 계급이나 세력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정치는 ‘전체’에 대한 관점에서 상호간의 이익을 ‘조정’해내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신좌파적 상상력’의 흡수를 통해 노동조합, 이에 근거한 정치세력 자체가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간에) 전체 사회의 ‘공익적’ 이해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이에 대한 자기 실천을 통해 일반 민중들에게 대안적 가치와 규범, 그리고 전체성을 제시하는 정치·문화적 단위로서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 사회운동의 대표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시민운동, 특히 진보적 시민운동과의 연대도 실천, 실현되고, 보다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개혁을 위한 연대세력을 형성시켜내는 가운데, 민중의 정치부대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윤철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원 · 사회운동과 진보정치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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