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2월 2006-12-01   567

고립무원 팔레스타인 이해하기

지난 11월 시민운동공부모임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분쟁’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는 미리 준비한 자료들을 제시하며 강의 내용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서 기록을 근거로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그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강경한 저항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 분쟁은 민족, 영토, 종교, 분리 독립, 식민유산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구체화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오스만터키 이후의 중동지역의 분할을 위하여 프랑스와 비밀협정을 맺었고,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서로 모순되는 외교적 약속을 하였다. 반터키 봉기를 조건으로 아랍민족과는 독립국가 수립을 약속한 맥마흔-후세인 서한을 만들고, 유대인에게는 아랍 민족주의 운동을 차단하기 위해 유대민족 영토의 건설을 약속한 벨푸어 선언을 작성해주는 이중적 정책을 펼쳤다. 이는 팔레스타인 분쟁이 아랍인 대 유대인이란 두 민족간의 대립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열강들의 지배적 논리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시오니즘 운동에 의해 많은 유대인들이 러시아와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옴으로서 원주민이었던 아랍인과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고 이것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지역에서 영국세력이 크게 후퇴한 가운데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두 강대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시켜 국제문제화시켰다. 유엔은 아랍 측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의 동의 아래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였다.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분할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두 민족간의 생존권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뿐만 아니라 주변 아랍민족과 유대민족 간의 끊임없는 대립을 야기했다. 물론 이러한 갈등의 근저에는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분쟁은 현대사 전체에 관계되는 문제인 것이다.

19세기 말 원주민의 종교분포(88%가 이슬람교도), 1945년 현재 팔레스타인의 토지소유 현황(아랍인 소유 87.5%, 시오니스트 소유 6.6%), 1946년 현재 인구분포(무슬림 58%, 유대인 32%)등 여러 지표들은 네 차례의 중동전쟁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영토의 확장과 원주민 추방으로 바뀌어간다.

강의 가운데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이 자주 나왔는데, 2002년 6월부터 서안의 경계를 따라 세워지고 있는 8m 높이의 분리장벽도 그 하나다. 홍 교수가 보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 사람들인데, 그 이유는 유대인들과의 대립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주적인 자치정부가 주변 아랍국의 권위주의 정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미국의 중동정책이 왜 이스라엘에 편중되었느냐는 청중의 질문에 팔레스타인의 전략적 위치와 미국의 대 중동 무기 수출을 고려해 보라는 답변으로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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