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1681

[살림] 도시여자의 산골표류기(정착편)

도시여자의 산골표류기(정착편)

 

도시여자

그건 그래. 공기는 참 좋아. 춘천에서도 북쪽, 화천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걸터앉은 마을이 있어. 내가 그쪽으로 이사했다고 하면 제일 먼저들 말하거든. 와- 거기 공기 참 좋겠네. 하지만 공기에 밥 비벼 먹는 것도 아니고, 공기를 내다 팔아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사나흘 지나면 자연이고 뭐고 도시의 매연과 밤거리의 네온사인이 그리워. 난 원래 뼛속까지 도시녀거든. 뭐 살던 곳을 한번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특히 30대 중반을 넘어 마흔으로 달려가는 나이에 할 수 있는 고민이잖아.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떠나는 것 자체에 설렘이 어려 있고. 왜 그래. 다들 한 번씩 여행 해보지 않았어? 이방인이 누리는 매력이랄까. 그 곳의 삶의 문제에 복잡하게 관여하지 않고, 좋은 것들을 적당히 누리며 쉬고, (사실 집 떠나면 고생이지만) 마음으로는 충전했다 생각하며 다시 돌아오는 것. 단지 난 긴 시간을 선택했던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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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밥 비벼 먹고, 호수에 떨어지는 해를 보며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하지만 시작은 짜증 그 자체였어

버스가 마을에 여섯대 밖에 다니지 않는데, 같이 사는 남자는 내게 버스와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라고 하더군. 숨이 턱 막혔지. 그 말을 듣자마자 중고차를 샀어. 그렇게는 못 살아.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산골로 간다고 생활 방식이 얼마나 변하겠어. 물론 나도 노력이란 걸 해봤지. 콩을 불리고 갈아 끓여서 손두부를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다시는 해먹지 않겠다고 새해 각오를 다졌지. 오히려 그동안 잘 먹지도 않던 피자며 스파게티 등의 음식을 어쩌다 만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눈물까지 흘리면서. 여긴 강원도고 요즘 봄이잖아. 다들 봄나물을 뜯어서 먹나봐. 근데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야. 쑥 빼고는 하나도 모르겠어. 냉이도 헷갈려. 뭔지도 모르고 캐 먹다가 응급실 실려 가면 어떡해? 또 남자는 농사를 지어. 주변 사람들은 끼니 때 나를 보면 신랑 밥은 어떻게 하고 돌아다니냐 하지. 끼니가 아닌 때면 찬물과 새참은 줬느냐고 묻는 거야. 그걸 내가 왜 갖다 줘야 하지? 자기 일이잖아.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지. 기본 아니겠어? 남자라는 이유로 일상을 여자한테 기댄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지. 남자한테 물과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라 했어. 더 가관인 것은 안 해본 농사를 짓느라 몸이 힘든가봐. 밤마다 끙끙 앓아. 그 소리를 들으면 화가 백배로 치솟아. 일하는 속도도 못 맞춰?

 

열 받으면

화병이 도지기 전에 도시 바람을 좀 맡아볼까 하고 가끔씩 서울에 가. 참 이상하지? 꼭 지하철에서 길을 잃는 거야. 그럼, 산골에 사는 두려움이 증폭돼. 뭔가 준비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니야? 놀다가 바보 되면 어쩌지? 뭔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 때 아닌가. 노후는 어떡하지? 결정적으로 산골유학이라는 것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아이들을 싫어했던 나로서는 정말 파격적이야. 7년 전인가. 마을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이 만들어졌는데,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선생님들도 좋아 도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노는 산골유학이 시작된 거야. 하필 왜 내가 도착한 시점에 만들고 있었는지. 하루라도 바람 잘 날 없더라니까. 이리 일 많고 시끄러운 마을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 안 왔을거야. 아… 숨차. 욕을 밤새해도 성이 차지 않는데 지면이 짧은 게 아쉽네.

 

산골 유학 온 도시 아이, 개구리를 잡았다!

산골 유학 온 도시 아이, 개구리를 잡았다!

 

애초에 정했던 2년이라는 시간의 끝은

멀리서 보이는 구조대처럼 나한테 조금씩 다가왔어. 농사가 지을수록 재밌다는 남자는 버려 버릴꺼야. 농사짓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겠지. 가지라 해. 둘이 무농약 농산물로 맛있게 음식 해먹고 백년해로 하라 해. 자, 이제 배에 올라타면 돼.

 

막 승선을 하려는 순간

남자가 키우고 지은 쌀로 갓 지은 밥 한 그릇 먹고 떠나려했지. 내가 여기서는 카스아줌마라고 불리거든. 아줌마라는 호칭이 웃기고 낯설기도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어. 산골유학으로 만난 아이들과 더 놀고 싶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 듣고 싶고. 목공샘이 마을에 혼자 집을 지어. 그 집이 참 신기해. 나무와 흙 그리고 다시마 등을 섞어 만들어. 완성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어. 마을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데, 아이들 책 읽는 모습을 봐. 나도 읽지.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책을 온몸 절절히 읽을 수 있다는 것. 정말 짜릿해. TV나 영상매체를 안 보는 데 억울함이 안 생긴다니까. 앞으로 읽고 싶은 책 리스트 짜 놓은 것만 해도 100권이 넘어. 그리고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 아이들과 내가 맺은 관계라는 이름의 실타래가 내 온몸 구석구석 휘감아 잡아끌고 있었어. 에효… 결국 더 깊은 호수마을로 들어가 아예 땅을 사버렸어. 1,300평, 들어는 봤나? 그리고 여기 공기 좋다 했잖아. 오늘도 맑은 봄바람에 밥 비벼 먹었는데 정말 달아. 남자가 지은 쌀, 참 맛있거든. 그건 인정. 아까 얘기했지? 호수에 떨어지는 해를 보며 강원도 감자전과 김치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 그건 정말… 아…….

 

 

도시여자 님은 춘천의 별빛산골교육센터에 산골유학 온 도시 아이들을 돌보며 지냅니다. <살림> 코너는 4명의 필자가 각자의 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도시여자 님의 살림 이야기는 9월에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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