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1623

[읽자]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간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간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5월의 책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ㅡ 루소, 『사회계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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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1일 총선이 끝나자 결과를 두고 말이 많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자.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식 정당명부제나 여성 공천 비율 등 제도의 측면에서 여러 주장과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결과에 따른 정치 지형의 변화와 예측은 물론 시급하게 다뤄야 할 내용이지만, 4년 후에 다시 치러질, 그리고 당장 올해 12월에도 마주할 선거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는 이보다 역사적이라 하겠다.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는 선거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가 어떻게 생겨나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대의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고대 아테네 민주정에서 현대 의회정치로 변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자에서는 추첨을, 후자에서는 선거를 제도의 핵심으로 삼는데, 대의민주주의를 창안한 사람들은 대의정부가 이전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보다 우수한 체제라고 생각했다. 선출된 대표는 선출하는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탁월한 시민이어야 한다는 당대의 생각은, 참정권이 훨씬 폭넓게 보장되는 지금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제도라는 선거에서 불평등하고 귀족주의적인 현상이 드러나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이 두 가지 속성의 균형점인데, 추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하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도발적 물음은,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를 고민하기에 적절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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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았듯 추첨은 인류가 고안한 최초의 민주적 제도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을 추첨으로 뽑자고 제안한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비웃지 않을까. 『추첨민주주의』는 ‘선거=민주주의’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대의민주주의의 ‘엘리트주의’를 넘어설 방법으로 ‘추첨’을 진지하게 제안한다.

 
  역자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우선 참여의 위기다. 큰 관심을 모은 이번 총선 투표율은 60%를 넘지 못했다. 두 번째는 대표의 위기다. 18대 국회 299명 가운데 여성은 41명, 유권자의 40%를 차지하는 19~39세 의원은 7명에 지나지 않고 노동자 출신은 3명, 농민 출신은 1명에 불과하다. 세 번째는 책임의 위기다. 유권자의 이익보다 특정 이익집단과 당리당략에 치중한 정책 결정이 많다. 이에 반해 추첨민주주의는 국민을 민주주의의 청중으로 방치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성, 연령, 직업 등 기술적 대표성을 제고하여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차별 없이 포함하는 민주적 대표성에 기여할 수 있고, 정당, 지역구, 이익집단의 영향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을 위한 공공선에 다가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참여의 기회가 늘어나고 누구나 대표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덕분에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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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추첨민주주의의 현실 적용을 위해서는 더욱 치밀한 제도의 고민이 필요하다. 그럼 이쯤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가로막는 제도의 한계를 넘어 우리가 정치를 논하고 행하는 까닭을 다시 돌아보자. 정치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행위이고, 이때의 기준은 당연히 ‘사람이 사람답게’, 즉 존엄이라 하겠다. 존엄은 현재의 정치 수준을 반영하는 동시에 미래의 정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다. 『민주주의에 反하다』는 한국 근현대의 직접행동 100년사를 돌아보며 시민의 존엄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민중이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생각과 방법으로 저항했는지를 되짚는다. 추첨민주주의가 소외된 사람에게 다시 시민의 지위를 찾아주려는 시도라면, 직접행동은 자기 삶에서 소외된 사람이 다시 주인으로 서는 모습이다. 3·1 만세시위와 암태도 소작쟁의부터 4·19 혁명과 6월 항쟁을 거쳐 홍대 청소 용역 노동자 파업과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까지, 선거보다 결정적인, 죽은 민주주의가 생명을 얻은 장면들이 펼쳐진다. 비록 투표 결과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 장면들이야말로 우리의 정치 역량이자 가능성이라 하겠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지역 일꾼으로 변신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 역시 선거 때만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 변신하여 사회와 관계 맺지 않았나. 직접행동은 세상을 향한 몸부림인 동시에 내가 내 삶의 주인인지, 내가 믿는 바를 실천하며 존엄하게 살고 있는지 묻는 일이다. 더불어 나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리를 마련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이제 둥글게 모여 앉아 우리의 자리를 확보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시간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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