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2330

[특집] 사찰은 다 나빠: 민간인 사찰, 민주주의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

민간인 사찰, 민주주의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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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권력의 정보욕

민간인 사찰이라… 역사의 유물이 된 줄 알았던 민간인 사찰의 악령이 다시 한국사회를 떠돌고 있다. 사실 국가의 민간인 사찰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고,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누구든지 ‘정보’를 수집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교사와 학생, 민간 기업과 소비자, 심지어 애인 관계에서도 정보를 가진 자가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상 통치를 하는 입장에서 그 욕망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국가권력이 정보에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 해악의 정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국민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활용하는 것만큼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진전은 바로 이 권력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해 왔다. 근대국가의 최대 성과는 국가가 함부로 국민을 감시하고 처벌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이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는지를 보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해 볼 수 있을 정도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정보원, 기무사, 경찰의 정보활동이 통제되기 시작한 시기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보기관 개혁, 쉬운 일이 아냐

김영삼 정부는 안기부의 업무 범위를 축소하고 국회 정보위원회를 설치하여 국정원에 대한 의회 통제를 강화하는 등 최초의 문민정부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노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안기부가 여전히 광범위한 정치 사찰을 하고 있다는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제도개혁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흡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정보기관의 개혁에 나름의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국정원이 광범위한 도청을 했다는 시비에 휩싸였고, 결국 당시 국정원장 두 명이 도청 문제로 처벌 받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운동 당시 사찰로 고통 받은 당사자였지만,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정보기관의 문제를 말끔히 정리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참여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국정원의 국외정보처 전환 등 포괄적인 정보기관 개혁 방안을 제시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정보기관이 정치 도구화 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를 폐지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실제로 참여정부에서 정보기관의 권한 남용에 대한 시비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추진했었던 국정원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청와대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국정원이 야당 지도자를 사찰했다는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권력과 정보기관의 유착관계를 조금씩 털어내는 방향으로 진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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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스르는 민간인 사찰 사건

이번 민간인 사찰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이렇다 할 정보기관에 대한 개혁조차 없었던 정권에서, 민간인 사찰이라는 구태를 답습했다는 것은 그동안의 성과를 무력화하는 것에 다름없다. 게다가 이번 민간인 사찰은 이전의 전형적인 사찰 사건들에 비해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양상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국정원, 기무사, 경찰 등 기존의 정보기관이 아닌 아무런 권한이 없는 제3의 기관이 불법 사찰에 관여했다는 사실이다. 경찰, 국정원, 기무사 등은 법에 그 활동 범위가 명시되어 있고, 국회와 시민사회에서도 항상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다. 그런데 제3의 기관에서 사찰을 한다면, 이러한 법적, 정치적, 시민사회적 통제가 무력해진다. 어떤 국가기관이 민간인 사찰에 관여할지조차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과거의 민간인 사찰 사건들이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억지로 둘러댈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음에 반해, 이번 민간인 사찰 대상자들의 상당수는 그런 억지조차 부릴 수 없는 순수한 민간인, 즉 정부에 비판적인 연예인이나 언론계, 노동계 종사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량한 시민’이 나서야 한다


그래도 소득이 있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민간인 사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비록 선거 국면이긴 했지만 여야는 한목소리로 민간인 사찰과의 역사적 단절을 외쳤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불법사찰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불법사찰을 방지하는 법이 왜 필요한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 문제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여당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감시 국가의 문제를 다룬 수작,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는 ‘선량한 시민’이라는 대사가 수시로 나온다. 정치권력의 사찰과 감시의 궁극적 피해자는 ‘선량한 시민’들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결국 민간인 사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사찰과 감시의 궁극적 피해자인 ‘선량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권이 잠시 민간인 사찰 문제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제도개혁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결국 시민들이 고삐를 죄는 수밖에 없다. 다시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권력이 정보를 사유화하는 일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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