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4월 2000-04-01   885

불평등한 세리와 선한 납세자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이에서는 ‘주식 이야기’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거래소’니 ‘코스닥’이니, ‘여의도 증권가’, ‘펀드 매니저’, ‘주식시황’ 등등. 이런 말들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일 정도이다. ‘주식투자를 해서 떼돈을 벌었다’는 말도 많이 듣고, 그 반대로 ‘주식으로 왕창 잃었다’는 얘기도 이곳 저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과세의 제1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식해서 떼돈 번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매달 받는 월급에서, 꼬깃꼬깃 모아 마련한 예금통장에서, 꼬박꼬박 떼어져 나가는 세금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면, 1,000만 원 투자해서 10억 원을 번 사람은 9억 9,000만 원의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고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현재 상장주식을 팔아 남긴 차익에 대해선 소득세가 부과되고 있지 않다. 다만, ‘증권거래세’라고 해서 일종의 ‘수수료’성격의 세금만이 부과되고 있을 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용가리가 불을 뿜고 웃을 일

이에 대해 정부는 ‘주식시장 안정화·활성화’를 이유로 대고 있고, 일반 투자자들은 ‘주식 해서 돈 잃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주저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완전히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소액투자자나 법인기업에 대해서는 적절한 장치를 두고 연차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충격을 충분히 완화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삼성그룹의 3세 이재용 씨는 삼성 SDS 등의 비상장주식을 이용하여 수천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최대 재벌을 ‘자연스레(?)’ 승계받게 되지만, 이에 대해서도 단지 몇푼의 세금만 물고 그만이라니 기가 차고 황당하기 그지없다. 최근 재판부와 검찰은 이재용 씨와 삼성에 손을 들어 주었다. 쉽게 말해서 “별 문제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세금’을 내고 싶겠는가? 수천억 원의 이익을 내고도 1~2억 세금을 내는데, 누구는 쥐꼬리만한 월급받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으니…. 더 큰 문제는 이제 삼성을 시작으로 다른 재벌기업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부를 세습하면서 ‘절세(?)’할 것이다. 결국 그만큼의 세금 부족분은 우리가 메꿔야 할 따름이다.

결국 두 눈 훤히 뜨고, 두 손 뒤로 한 채, 우리는 그들의 ‘절세’, 아니 ‘탈세’를 구경만 하고 있는 셈이다. “야, 대단하군!”하고 놀라는 사이 우리들 주머니의 쌈짓돈은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형평과세’를 수차례 공언하고 있지만, 막상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그게 아니다. 작년에 어느 코미디언 신지식인의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용가리가 불을 뿜고 웃을 일이 지금 한국에선 그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벌의 변칙 증여·상속이나 주식시장에 대한 비과세 정책과 같이 커다란 문제만이 우리의 세금현실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세금 거두는 일을 ‘누워서 떡먹기’로 생각하는 과세당국의 자세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정부도 ‘납세자 중심의 세제·세정’이라는 구호를 많이 사용한다. 국세청에 ‘납세자보호담당관’도 만들고, 각종 감면혜택을 통해 세금부담을 줄여주겠다고도 약속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부당하고 불합리한 세금들이 버젓이 거둬들여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가용 자동차 면허세’이다. 지방세수 부족을 이유로, 정부가 오히려 편법적 과세를 계속하고 있는 것. 자동차를 살 때 ‘등록세’를 내고 있고, 매년 두 번씩 자동차세를 내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내는 ‘자가용 자동차 면허세’는 무슨 세금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논리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문제투성이다. 그렇다면, 탈세하는 사람이 ‘세금 다 내고 나면 뭐 먹고 사느냐? 누가 법대로만 사느냐?’고 항변하는 것을 국세청은 이제 묵인해야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세법은 ‘법’으로 ‘밥’먹고 사는 변호사도 어렵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몇 번씩 읽고 또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납세자들에게 ‘법을 따라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이 어디 있는가?

똑같은 과세대상을 두고 각각의 법에서 다르게 설명하거나, 소위 ‘뺑뺑이 돌리기식’이라고 하여 A조항을 읽으면 B로 가라고 하고, B에 갔더니 다시 C를 읽어보라고 하는 법조항이 수두룩하다(마치, 정부부처에서 민원인을 어지럽게 만드는 행태와 꼭 같다). 이미 감면해준 세금에 다시 세금을 물리고, 세금에 세금을 덧붙이는 등 ‘누더기식’ 세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누워서 떡 먹기는 이제 그만

비단 ‘법’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소득세는 ‘신고제도’이다. 신고를 정확히 했다는 전제로 과세되는 것이다. 그런데 ‘표준소득률’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매출액 대비 얼마를 소득으로 본다’는 기준을 국세청이 매년 공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정도만 신고하지 그것보다 많이 신고해서 세금 많이 내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마치 작년에 일부 폐지된 과세특례제도처럼 정부 스스로가 자신의 과세원칙을 부정하는 행동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납세자가 자신이 내는 세금에 대해 정확히 알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 역시 그렇지 않다. 한 해 80조 원에 이르는 세금을 거둬들이면서 국세청의 홍보예산은 6억 원에 불과하다. 과자 하나 팔려고 해도, 수억 원씩 광고비용을 쓰는데…. “결국 정부가 내라고 하면 낼 수밖에 없으니 뭘 걱정하냐?”는 안이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는 정부가 공개하는 조세관련 정보의 미비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국세통계연보」를 통해 공개하는 정보가 부실할 뿐만 아니라, 어렵사리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개를 요구해도, “없다”, “못주겠다”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참여연대가 각종 조세감면의 규모와 실태를 재정경제부 등에 요구했으나, 공개받은 자료라고는 99년에 만들어진 국회제출용 보고서 달랑 한권 뿐이었다. 그러면서 그 이전의 자료는 없다는 얘기를 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논리이다. 정부가 각종 비과세·조세감면정책을 펴면서 어디에 얼마나 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니….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가지고 있으면서 내주지 않는 것도 큰 문제지만 말이다.

결국 이제까지 정부의 입장은 ‘세금 걷기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것이었다. 엄청나고 교묘하게 탈세를 일삼는 자들에 대해선 아예 ‘포기’하고, 월급이나 예금통장처럼 ‘원천징수’가 가능한 곳에서는 철저히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불평등, 자영업자와 월급생활자들의 불공평, 세제·세정의 불투명성, 이 모두가 ‘나쁜 납세자’의 ‘부족한 납세의식’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부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사회복지예산 증액을 둘러싸고 ‘재정부족’을 문제삼는 이들이 많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사회복지예산을 줄이거나 억제함으로써가 아니라 세금을 ‘당연히 내야 하는데 내고 있지 않은 이들에 대한 과세’를 통해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납세자가 자신이 내는 세금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그들의 권리의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우리의 조세제도가 보다 형평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의 조세개혁운동이 단순한 ‘제도개선운동’이 아니라, ‘납세자운동’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홍일표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조세개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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