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4월 2012-04-02   1880

김재명의 평화이야기-21세기 화약고 중동, 평화의 꿈은 언제 이뤄질까

21세기 화약고 중동,
평화의 꿈은 언제 이뤄질까

 

글과 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20세기 1백 년 동안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최소 1억, 최대 1억8천만 명에 이른다. 전쟁 연구자에 따라 무려 8천만 명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전쟁이라는 혼란스럽고 살벌한 상황에서 정확한 집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만약 전쟁이 없었더라면, 1억이든 1억8천만이든 전쟁으로 죽은 많은 사람들도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삶을 이어갔을 것이라는 점이다. 20세기 세계의 화약고가 발칸반도였다면, 21세기 세계의 화약고는 중동과 서남아시아다. 21세기 들어 중동의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서남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12만명이 넘는 이라크민간인들이 죽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한 이라크 유가족(바그다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12만 명이 넘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죽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한 이라크 유가족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

팔레스타인에서는 2000년 9월 말부터 이스라엘의 군사통치 억압에 맞서 인티파다(저항, 봉기를 뜻하는 아랍어)가 7년간 이어졌고,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에 걸쳐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Gaza 침공이 벌어졌다. 그 뒤로도 지금껏 간헐적인 유혈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의 사망자는 8천 명을 넘는다. 희생자 비율은 팔레스타인 쪽이 훨씬 높아, 이스라엘 1명에 팔레스타인 7명 꼴이다. 이스라엘군에 남편, 아빠 또는 형을 잃은 팔레스타인 유가족들은 “언젠가 나도 유대인에 맞서 싸우다 순교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2001년 9.11 테러 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들어가면서 벌인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숱한 이라크 민초들의 생목숨을 앗아갔다. ‘이라크의 민주화’라는 그럴듯한 거짓 명분을 내세웠지만, 미국은 두 가지 목표(이라크 석유와 이스라엘 안보 챙기기)를 이루기 위해 ‘전쟁에 관한 국제법’마저 어겼다. 국제법은 내 나라가 침략 당했거나, 유엔 안보리가 어떤 침략국을 공동제재한다고 결의할 경우 전쟁할 권리를 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전쟁은 크나큰 희생을 강요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 왓슨 국제관계연구소의 보고서 <전쟁의 비용>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최소 22만5천 명. 그 가운데 민간인 사망자가 17만2천 명으로 절대다수이며,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가 12만5천 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무장 군인 사망자는 5~8만 명. 이 가운데 미군 사망자는 6천 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3%에 못 미친다. 앞서 유대인 대 아랍인의 희생자 비율을 따져보았지만,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도 불평등한 죽음의 셈법이 이뤄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도 컸다. <전쟁의 비용> 보고서는 난민이 780만 명 생겨났다고 했다. 2007년 시리아로 취재를 갔을 때다. 전쟁으로 엉망이 된 이라크를 떠나온 한 난민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가재도구라도 챙기려고 온 여인들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가재도구라도 챙기려고 온 가자 지구 여인들. 이스라엘은 21세기의 식민지로 팔레스타인을 군사 통치하고 있다.



미국의 평화, 이스라엘의 평화만 소중한가.

 
미국에겐 ‘미국의 평화’가 소중하고, 이스라엘에겐 ‘유대인의 평화?가 소중하다. 그러나 생각해볼 점이 있다. 우리가 흔히 ‘팍스 로마나’라고 알고 있는 ‘로마의 평화’는 고대 로마제국의 지배 귀족들과 로마 시민들만의 평화였다. 그들에게 점령 당한 카르타고와 한니발 장군의 후예들에게 ‘로마의 평화’는 곧 굴욕스런 노예의 평화나 다름없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묶어두고 걸핏하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물샘을 터뜨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자 전쟁범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땅을 돌려주고 이스라엘이 바라는 평화를 확보한다는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원칙’을 외면하는 지금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대인만 살고보자’는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차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유일 초강국으로서의 패권과 중동 석유 이권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평화’를 누리고, 아울러 최대 우방국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켜낼 목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전쟁범죄나 다름없다. 미국의 불법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유족들은 “이것이 미국의 평화를 위한 것이냐. 미국의 평화만 소중하고 이라크의 평화는 아무것도 아니냐”고 울부짖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제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는 이란을 향해 전쟁의 회오리를 일으킬 기세다. 이스라엘은 적어도 200개 이상의 핵무기를 갖고 중동의 군비경쟁을 부추겨왔는데도 아무 말이 없던 미국이 아직 만들지도 않은 이란에 대해선 매우 적대적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요구한 벙커 버스터(지하 6미터 콘크리트 방벽을 뚫고 들어가 터지는 무시무시한 폭탄)를 “내년에 쓰는 조건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올해 연말 미 대선이 끝나자마자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는 뉴스를 듣게 될 것인가. 중동이 21세기 화약고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평화의 땅으로 자리매김할 날은 언제쯤일까.

 

 

*지난 5년 동안 장기 연재해온 ‘김재명의 평화이야기’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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