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3월 2000-03-01   1336

민심기행 부산 · 대구 · 광주 · 대전 · 서울

낙선운동은 지금 지역할거주의와 격돌중

부산

땡땡땡—

지난 12일 오전 9시10분. 비릿내가 물씬 풍기는 부산 자갈치시장 수협 공판장.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잔뜩 몸을 움추린 채 여기저기서 서성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든다. 선착장에 정박한 오징어잡이 배에서 콘베이어 벨트에 실려 막 올라온 오징어 궤짝 70여개가 경매 시작 2분도 안돼 낙찰되고 그 자리는 파장된다. 삼삼오오 모여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그 중 한 일행에게 말을 붙였다.

“그거 아주 잘하는 일이죠. 전부다 도둑놈들 아닌가요. 그래야 국회의원들 정신차리는 것 아닙니까. 대찬성입니다…음모론요? 그런게 어딨어요. 기득권 세력의 음모가 바로 음모론입니다.”

손을 주머니 속에 꾹 찔러넣고 경매장에서 나오던 수산물 중매인의 운전기사 최인호씨(51세)의 말이다. 바닷바람에 검게 그을린 얼굴. 주위에서 그의 말을 듣고 “옳은 일이제” “잘하는 겁니다”라고 거든다. 언론에서만 듣던 부산 정서, 낙천운동과 관련해 시민단체의 정부 유착설을 제기했던 한나라당의 텃밭 부산의 ‘공식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이춘덕씨(55세). 자갈치시장 수협 일용직 노동자로 10년동안 잔뼈가 굵은 그는 갈쿠리처럼 생긴 도구로 수협 공판장 구석에 널려있는 생선 궤짝을 찍어 한곳으로 모으다가 기자의 질문에 “그거 해야지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낙천자 명단에 든 사람이 나오면 당연히 안찍어야죠. 잘하겠다는 사람 항상 찍어줘도 매양 정치권이 그모양이라 투표장에 가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라도 이번엔 투표할겁니다. 자 수고하이소.” 그가 건넨 손의 까칠한 굳은 살이 살갑다.

낙천운동 OK, 낙선운동은 갸우뚱

이상한 일이다. 부산지역에서만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총 12명(전의원 2명 포함). 이들중 8명이 한나라당 의원이다. 지역정서를 감안할 때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 지역 민심을 좀더 살피기 위해 동부 수정동에 위치한 ‘2000년 총선 부산 시민연대’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시민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는 YMCA, YWCA, 참여자치시민연대, 경실련, 여성단체연합,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42개.

“낙천운동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공중전입니다. 서울 중심의 운동은 전국적 이슈화에는 승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낙선운동은 유권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진지전적 성격이 짙어요. 네거티브 캠페인인 낙선운동이 지역 정서가 강한 부산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우선 낙선인사에 대한 대체인사가 없습니다.”

박재율 부산 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지역주의를 극복할 뾰죽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갈치시장의 민심을 어떻게 읽어야할까. 택시를 탔다. 정부근씨(55세). 그는 부산 바닥에서 22년간 택시운전을 하면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지역정서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요즘 들어 10명 중 너댓명은 정치권에 대한 얘기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운동에 찬성해요. 우리가 동참해서 한번 바꿔보자고 말이죠. 하지만 나이든 어른들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도 삼성 문제를 현정권의 정치보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낙천운동이 정부와 짜고치는 고스톱이란 말이 나오는 순간 동격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사실 언론에서 그렇게 떠드는 데 정부와 시민단체간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그는 또 “정형근 의원에 대한 구속수사 움직임 등은 곧바로 그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는 것으로 귀결된다”며 “시민단체들의 비슷한 논조도 잘못 이해돼 되레 당선운동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곧바로 대구로 가기 위해 부산역 대합실에 도착했다. 대합실의 큰 TV 모니터에서는 톱 뉴스로 정형근 의원의 사진이 실리고 검찰이 구속수사를 강행키로했다는 속보가 자막을 타고 흘렀다.

대구

2시간 30분을 달려 대구에 도착한 뒤 제일 먼저 간 곳은 지하철 중앙로역. 북적거리며 오가는 시민들 사이에서 ‘2000년 총선 대구 시민연대’가 부스를 설치해놓고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 개정에 대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양 옆에는 검은 사자의 복장 차림으로 쇠사슬에 묶인 채 마스크를 쓴 단체 인사들이 ‘근조 정치개혁’이라는 영정을 들고 있다. 대구시민연대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새대구 경북 시민회의, 대구 참여연대, 대구 여성의 전화, 대구경북 민교협 등 50개 단체가 모여 지난 1월 20일 발족했다.

“부정부패 저지른 사람들이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돈을 마구 살포해서 나이든 사람들을 포섭해 당선돼놓고 본전 생각에 국민을 위한 정치는 뒷전이겠죠. 바꿔야 합니다. 무슨 텃밭이네 뭐네 이제 소용 없어요. 당을 떠나서 낙선운동 리스트에 든 사람은 무조건 뽑지 않을겁니다.”

“시민단체는 DJ앞잡이?”

서둘러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오다가 선거법 재개정에 찬성한다는 서명을 남기고 발길을 재촉하는 김수현씨(33세).

마침 대구 시민연대 상근자들은 이날 지하철을 타고 선거법 재개정에 대한 홍보전을 펼치고 있었다. 중앙로역에서 그들을 뒤쫓았다.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앞에 이처럼 망칙한 모습으로 선 것은 정치권이 낙천낙선운동을 불법으로 만들어놓고 유권자의 참여정치를 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섭니다.…2천년 총선은 더 이상 지역감정의 볼모에 사로잡혀 부도덕한 정치가 지속되는 데 이용돼서는 안됩니다.”

대구 참여연대 권혁장 정책부장(32세)과 퍼포먼스 차림의 단체 상근자들은 지하철 칸을 옮겨가면서 선거법 재개정의 정당성과 낙선운동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권 부장의 말이 끝나자 어떤 칸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지기도 했다.

중앙로에서 일을 마친 뒤 달서구 송현동 집으로 향한다는 박승온씨(58세)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인들 바꾸자는 데에는 어느 누구보다 공감한다”며 “박수를 쳐줍시다”를 연신 외쳐댔다.

“낙천운동에 대한 지지도는 다른 어느 곳 못지않게 높습니다. 얼마전 영남일보에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80%가 넘었어요. 최근 한 지역언론이 설문조사한 결과 ‘낙선 리스트에 포함된 인사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는 답변도 70%에 가까웠습니다. 3월 말경에 독자적으로 조사해 이 지역의 낙선자 리스트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권 부장은 지하철 역에서 목을 혹사시킨 탓인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같은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총선연대는 중구 동인 4가에 별도 사무실을 차리고 각 단체에서 파견나온 상근자 10여명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곳에서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낙천 명단에 포함된 인사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과는 상황이 다소 다른 것이다.

대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은 서문시장. 이곳에 가기로 작정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이경득씨(47세)는 택시운전 경력으로보면 8개월된 초년생.

“정치 얘기가 나오면 대부분 입에 거품 물고 비판해요. 손님 중 99퍼센트가 낙천운동을 찬성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국회의원을 뽑았습니까. 유권자들이 정신차려야합니다.”

2월 12일 오후 5시경. 서문시장은 발디딜틈 없이 붐빈다. 옷가게, 생선가게, 그릇도매상점, 가정에서 사용하는 잡동사니 가게, 옷 수선점, 포장마차 등 흡사 서울 남대문시장에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이곳에서 5년동안 모자가게를 해왔다는 김종수씨(59세)는 “장사를 하다보니까 권력 앞에서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었다”며 낙선운동의 카타르시스를 평가했다. 그는 또 “주권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법을 어겨가면서까지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낙선운동에 지지의사를 밝혔다.

모자가게에서 나와 곧바로 시장 한켠의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순간 당혹스런 일이 벌어졌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 DJ 앞잡이로 나섰냐. 낙선운동은 (정부로부터) 돈 먹고 벌이는 운동 아냐. 젊은 이는 얼마나 받았어. 신문에 돈받았다고 났는 데 그게 사실 아냐. 이렇게 다니면 얼마나 줘?”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앞에 놓인 소주 1병과 순대 한접시. 그는 얼큰히 취한 얼굴을 들이대며 다짜고짜 따지고 들었다. “00씨 동생이 선거에 나간다고 했다가 취소했잖어. 국민은 로보트가 아닙니다. 그걸 모를줄 알고.” 옆에서 잔을 돌리던 60대 중반의 두 노인도 “우리도 비슷한 생각”이라며 거들었다.

“아니 뭐가 어쨌길래 그럽니까. 나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좋지않은 사람 정치에서 몰아내는 게 무엇이 나뻐요. 돈 받은 것 보지도 못했으면서 그런 말하지 마세요.” 포장마차 옆에서 리어커에 스타킹·양말을 파는 정기선씨(62세. 여)가 끼어들어 취객에게 되레 면박을 준다. 여기에 포장마차 주인도 “괜히 시비”라며 가세하고, 결국은 취객을 내몰기에 이르렀다.

광주

낙선운동 지지도 91%

다음 행선지는 광주. 서울발 광주행 고속버스에서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기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김동덕씨(56세). 전남 영암 도포에서 벼농사를 한다고 했다. 이곳은 김옥두 의원의 지역구. 낙선운동과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다. 고향 친구들의 계모임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되돌아가는 그는 “그거 잘합디다. 정치인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한심스럽지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소환하면 응하지도 않고(정형근 의원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매일 정쟁만 일삼고, 상호 비방만하고 난리죠. 그런 걸 갈아엎어야죠. 우리는 그런 일이 없지만 다른 지역구에 그런 사람(낙천인사)이 나오면 당연히 떨어뜨려야하는 것 아닙니까. 법요? 그게 무슨 법을 어기는 겁니까. 아니 법을 어겨서라도 시민단체들이 그거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대찬성입니다. 음모론 그런 것도 안믿어요. 정치권이 지역감정 조장하려고 하는 거지요.”

광주에서 내려 처음 만난 택시운전기사 박길순씨(62세)도 “호남지역에선 국회의원감도 못되는 것들이 몇 년씩 해먹었다”며 “한마디로 ×도 아닌 것들이 무슨 정치를 했냐”고 격분했다. 그는 또 일부에서 제기되는 낙선인사 선정기준의 공정성 시비에 대해서도 “국회의원들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라며 “언론계, 법계, 학계 전문가들이 나서서 선정한 건데 잘못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영남지역과는 낙선운동에 있어서 찬성의 강도가 훨씬 높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실제 광주지역의 낙선운동의 지지도는 90% 이상이다. ‘광주전남정치개혁시민연대’가 최근 광주전남지역의 유권자 6백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1.5%가 낙천낙선운동을 찬성했다. 그 이유는 ‘부패척결’(41.1%), ‘정치개혁’(23.4%), ‘시민의 권리’(22.8%) 등이었다. 공천 부적격자 공천시 지지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78.1%가 ‘반대’하겠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에 따라 광주전남정치개혁시민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의 규모도 86개로 서울을 제외한 전국 광역 대도시중 가장 많다. 이들은 또 지난 2일 별도의 공천 반대 인사 리스트를 작성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 명단에 포함된 인사는 새천년민주당 이영일, 임복진, 배종무, 한영애 의원.

광주전남정치개혁시민연대 실무간사인 박강배씨(36세)는 “과거에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설문조사 결과 70∼80%에 이르렀지만 지금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며 “다시한번 DJ라는 구태의연한 표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곳 낙선운동 후원 창구에는 개설한 지 얼마되지 않아 1천여만 원이 걷혔고, 본격적인 서명운동에 돌입하기도 전에 3천여명의 시민이 낙선운동 지지 서명을 했다. 낙선운동의 열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같은 낙선운동에 대한 지지가 이 지역 현실정치권의 지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는 미지수다. 박 간사는 “그간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민주당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게 역력하다”면서도 “새천년 민주당이 시민단체들이 선정한 퇴출 인사를 공천할 경우 타당 후보에 표를 던질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산지역처럼 지역 정당을 대체할 대안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낙선운동이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대전

“충청도엔 음모론이 없다”

소위 음모론의 진앙지 충청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음모론을 펼쳐 지역주의 부활을 시도했던 자민련의 텃밭 충청도엔 언론 보도와는 달리 냉정한 분위기다.

“음모론 때문에 자민련 녹색바람 분다는 데 손님 중 그런데 동의하는 사람 딱 한사람 봤어요. 언론이 불쾌합니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죽으면 땅이 오염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데 무슨 음모론입니까.” 택시운전자 최명권씨(43세)의 말이다.

“음모론요? 그런 얘기는 잘 못들어봤는데요. 국회의원에 당선됐어도 똑바로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등돌린다는 것을 알아야됩니다.”(택시운전자 최유민 씨), “음모론 얘기는 거의 없습니다. JP가 낙천 리스트에 오른 것을 문제삼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지요.”(택시운전기사 김월수 씨). 대전의 택시운전자들은 한결 같이 ‘음모론’을 일축했다.

중앙의 언론이 보도했던 것과는 판이한 정서다. 그렇다면 언론이 ‘음모’를 꾸몄단 말인가. 대전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고형훈씨(60세). 그는 중앙시장 초입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다.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그에게 거듭 질문을 던졌다.

“시민단체 하는 모양이 너무하고, 정치인들 하는 모양도 너무합니다. 모두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시민운동이 큰 벼슬하는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게 아닙니까.” 그는 시민운동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는 “자민련은 상당히 신망을 잃었다”며 “몇 년을 당했는 데 이제는 무조건 찍는 일은 그만둬야겠다”고 말했다.

중앙시장에서 10년동안 그릇장사를 해온 조영춘씨는 이와는 좀 다른 견해를 가졌다. “지난번에도 막판 바람에 따라 찍었는데 요번도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지역출신 국회의원이 한명이라도 더 나와야 지역이 좋아지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낙선운동도 좋지만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결국 지역주의를 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앙시장의 민심이 낙선운동에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곳에서 7년동안 신사복 상점을 운영해 온 김응복씨(37). 그는 “친구들을 만나면 ‘아예 이번 기회에 사그리 없애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며 “음모론이고 뭐고 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적반하장격으로 하는 얘기이고 이번 기회에 법을 어겨서라도 국민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권론을 펼쳤다.

그렇다면 직접 낙천대상자 명단에 들어간 국회의원의 지역구 정서는 어떨까. 이인구의원(자민련)의 지역구인 대덕구청쪽으로 향했다.

구청 민원실에서 만난 한용예씨(44. 여). “이인구 의원도 그 명단에 들었어요? 몰랐어요. 하지만 국회의원들 하는 게 뭐가 있나요. 그 사람들만 나오면 TV 채널을 돌려버려요. 이 의원이 너무 오래한 것 아닌가요. 세대교체 돼야 합니다.” 확신에 차 있지는 않지만 낙선운동에 대한 기본 취지는 공감하는 셈이다.

구청 근방에서 음식점을 하는 홍석열씨(42세. 여)는 “이인구 의원이 명단에 든 것을 알고있다”며 “JP도 자진해서 퇴진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이인구 의원 대신 누굴 찍을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며 선거권 포기 선언을 했다.

지역할거 극복이 큰 관건

“JP가 낙천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어도 음모론과 비슷한 ‘작품’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네거티브 캠페인은 수도권에서는 성립이 가능합니다. 다른 당 후보라는 대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할거 정치구조에서 이게 어느 정도 먹힐지는 회의적입니다. 다른 당 후보가 나오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실정이지요. 충북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심지어 지방의원들도 자민련을 탈당하는 분위기였다가 한나라당이 치고 올라오고, 총선연대가 뜨면서 민주당도 덩달아 주가가 올라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공천이 희박해 보였던 대전의 이모 의원 등은 총선연대가 살려줬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대전충남 2000년 총선시민연대 김제선 사무처장의 말이다. “청주, 전주, 대전, 서울 등의 총선연대 실무자들과 지역감정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한 결과 뾰죽한 방법이 없더라구요.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거나, 지역감정 선동 정치인에 대해 유권자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한다거나, 또는 이들은 낙선운동 리스트에 포함시킬 것 등이 논의됐지만 유권자들의 참여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는 총선연대 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6월 항쟁 이후 처음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뜻으로 달려온 것은 말입니다. 이같은 힘이 지역할거구도로 꽉짜인 정치 지형을 다원주의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했으니까요. 이번, 그리고 다음 선거를 지나면서 지역주의 정치는 이제 유권자들로부터 철저히 심판받을 겁니다.”

과연 낙천낙선운동은 현실 정치권을 변화시킬만큼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의 말처럼 전국 대도시를 다녀본 결과, 낙선운동은 지역주의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해있었다. 또 이같은 상황에서 대체세력 없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한계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음모론’은 정치인이 유포한 것이 아니라 이를 대량 제작 배포한 언론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철옹성처럼 지역 정서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지역할거주의도 차츰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정치 냉소주의가 아니라 정치를 비판하면서 참여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변화돼가는 의식도 낙천낙선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지상전이 아니라 이제 막 백병전을 준비하고 있는 낙선운동이 초기의 여세를 몰아 유권자 투표 혁명을 몰고올 수 있을지. 이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이뤄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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