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7월 2003-07-01   453

7월 신용카드 위기설, 금융불안의 원인과 분석

‘금융시장의 잘못된 구조가 카드채 위기 불렀다’


신용카드 문제가 심상치 않다. 지난 3-4월 정부대책으로 위기요인은 제거되었다는 주장과 7월 위기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반복되는 위기설, 카드발 금융불안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전문가 진단을 들어보자. 편집자 주

지난 3월 SK글로벌 사태로 인해 촉발된 금융시장의 불안은 급기야 신용카드사 발행 채권인 이른바 카드채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 투신사의 환매사태를 불러왔다. 결국 정부는 이른바 4·3대책을 발표해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 공동으로 5조 원을 조성해 4∼6월중 만기 도래하는 투신권 보유 카드채(10조4000억 원)의 50% 수준을 즉시 매입(이 경우 나머지 50%는 투신사가 만기 연장)’하도록 조치했다. ‘3월 11∼31일 중 투신사 환매 규모가 27조2000억 원’에 달했다는 사실은 카드채를 포함하고 있는 전체 신탁상품시장이 얼마나 불안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4·3대책은 급박한 금융시장의 상황을 반영한 불가피한 면이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투신사의 환매는 불완전한 시가평가제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했음에도 정부는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 대책임을 강조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감추고 있다. 채권의 시가평가제는 채권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채권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채권평가사들의 평가에 의존하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가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채권이 부실화되면 채권평가사는 어쩔 수 없이 점진적으로 채권의 가격을 하향 평가하게 되고, 향후 채권평가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는 하루 속히 환매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대규모 환매요구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을 필두로 하여 환매사태가 촉발되었다.

둘째, 채권시가평가제로 인한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채권을 기반으로 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투신사나 은행은 신중하게 자산운용을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감독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시장의 불건전한 경쟁이 만연하였다. 결국 이는 금융기관의 위험관리에 큰 결함이 있음과 동시에 IMF사태 이후에 진행된 금융구조조정이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에도 채권의 부실화가 예상되기만 하면 투신사의 대량 환매사태는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모습은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의 저금리 정책은 향후 금리의 급등 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셋째, 지난 2년 동안 카드사의 대출건전성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금융기관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카드채에 투자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음에도 정부는 무차별적으로 카드사와 금융기관에 대해 지원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조장, 방조했다.

넷째,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에 대해서는 단계별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다 결국은 퇴출까지 시킬 수 있는 적기 시정조치가 있고 투신사의 환매사태에 대해서는 투신안정자금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4·3대책은 정부의 강권에 의해 은행권의 자금을 이용하고 채권의 만기를 연장하는 방법을 사용해 관치논쟁을 자초하였다. 이는 결국 현재 마련된 금융시장안정장치는 모두 허울뿐임을 정부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다섯째, 카드채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하락하면 카드채의 이자율(정확하게는 투자수익률)이 상승하고 카드채의 가격이 하락해 높은 수익률을 노리는 투기자금의 유입을 유도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의해 시장의 안정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채권시가평가제 때문에 시장에 의해 카드사별로 금리가 차등 인상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덧붙여 정부의 조급한 시장개입은 카드사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절차를 배제함으로써 인해 카드사 전체에 대한 불신감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처럼 시장원리도 작동할 수 없고 정부의 감독미비로 인해 금융기관들의 위험관리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등의 구조적인 문제는 상존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투신권의 환매사태로 인한 금융불안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안이한 대응이 결국 예견된 위기를 현실로

신용카드사의 경영에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한 정부의 태도로 인해 신용카드 빚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 더불어 카드사의 부실은 건전한 경제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 모든 사태가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해 발생하였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첫번째 정책실패로 규제를 완화한다는 미명 하에 이 모든 위기를 초래한 99년 5월 규제개혁위원회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 철폐를 들 수 있다. 사후에 알려진 일이지만 국내의 금융이용자보호제도나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제도는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임에도, 재경부나 규제개혁위원회는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한 부작용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진국 추세에 맞춰 일방적으로 규제를 완화했던 것이다.

때마침 이른바 내수진작 위주의 경기활성화대책과 더불어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카드사용 권장 정책으로 인해 신용카드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추앙될 정도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카드사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대규모의 모집인을 고용하여 마구잡이로 회원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고율의 카드대출은 주로 저소득층에게 집중되었고, 미비한 금융이용자보호제도로 인해 빚에 시달리게 된 이들은 이른바 돌려막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에 들어서면서 카드 빚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원성이 커져갔고,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시민단체가 나서기 시작했다. 참여연대에서는 수수료 인하운동을 벌였고 경실련에서는 상환능력이 없는 소비자에게 대출하는 이른바 약탈적 대출의 방지책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두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정책실패는 실상이 이러하여 거의 모든 시민단체와 언론이 대책을 촉구했음에도 재경부의 당국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무사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카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돌려막기의 한계에 봉착한 소비자들부터 시작된 연체가 급격히 증가하여 결국 4·3대책을 촉발한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인본주의 철학의 부재가 빚은 참극

현재의 정책기조로 미루어볼 때 카드채로 인한 금융불안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카드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88조 원에 달하는 카드채의 상환가능성에 달려 있는데 아직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정부는 지난 1년간 지속적으로 연체율이 곧 안정되리라고 희망적인 전망을 반복한 반면 가장 최근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연체율이 안정될 기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변변한 자료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을 정부의 세번째 정책실패로 볼 수 있다. 현재 신용카드로 인한 연체에 이어 고금리인 상호저축은행과 대부업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카드발 금융불안이 타 업종으로 전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더라도 빚에 시달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시민들의 삶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이 조만간 집행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렵다. 금융전문가들의 방만한 카드채 투자에 대해서는 5조 원을 보조하기로 결정하는데 매우 신속했던데 반해 카드 빚에 시달려 삶의 희망을 잃어가는 저소득층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재경부 당국자의 인본주의 철학의 부재, 그것이 바로 카드문제의 근본 원인이며 해결을 어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조속히 인본주의 철학에 근거한 금융이용자보호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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