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7월 2003-07-01   2245

풀뿌리 시민운동을 찾아 노숙인과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든든한 친구 “대구인권실천시민행동”

노숙인 단체목욕 성공 대프로젝트


2000년 총선 이후 시민운동이 활성화됐다고 하지만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퍽 다른 얘기가 된다.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의 시민운동은 무척이나 외롭고 힘겨운 일이다. 지역의 소외된 계층을 따뜻한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 대구인천실천시민행동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얼굴이 시커먼 게 차마 볼 수가 없네. 와이래 됐노?”

꼬질꼬질한 얼굴에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머리엔 까치집을 짓고 있는 사람들. 늦은 저녁 허기를 채우는 모습에서 그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앉아 밥을 먹거나 뜨거운 국물에 소주 한 잔 걸치던 노숙인들은 인권실천시민행동 김승무 사무국장을 보자 슬쩍 웃음을 던진다.

김 사무국장도 때로는 몸이 아픈 부모님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안부도 묻고 이런 저런 농담을 던지곤 한다. 두 손을 꼭 붙잡고 주고받는 경상도 사나이들의 대화는 알콩달콩한 맛은 없었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눈빛은 금방이라도 “내 아를 나∼도”라고 외칠 듯하다.

대구에서 시민운동하기

지역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역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인권실천시민행동(이하 인권실천)을 찾았던 지난 6월 3일. 사무실에서 상근자들을 만나고 함께 대구지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노숙인들을 만나고 나니 벌써 밤 10시가 되어버렸다. 저녁을 챙겨먹으려고 식당을 찾았으나 달성공원 주변에는 문이 열린 식당이 없다. 동대구역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거리엔 어둠만 가득했고 길가에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가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학원차량에서 내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역경제가 매우 열악해졌습니다. 대구 달성공원 근처만 보더라도 저녁 7시만 넘어도 다 철시해요. 장사가 안 되니까. 아이엠에프에 이어 대구지하철참사, 그리고 어려워진 경제까지 합세하면서 주민들은 많이 힘들어하죠. 정치에 대한 냉소도 심각합니다. 노무현정부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도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활성화 될 리 없죠. 대구지역 젊은이들이 요즘 모여 이런 갈등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단체가 적다보니 대구지역은 시민단체끼리 잘 뭉치는 편입니다. 요즘 저희 단체는 대구시장퇴진운동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인권실천은 노숙인과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을 목적으로 2001년 문을 열었다. 이들이 노숙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러한 지역문제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김승무 사무국장만 하더라도 1991년부터 대구에서 시민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사무실 근무, 밤 9시에서 자정까지 이어지는 노숙인 상담활동을 지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힘은 하루 이틀에 쌓인 게 아니었다.

노숙도 주거의 형태다

서울과 대구, 부산은 전국 노숙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이는 곳이다. 대구만 하더라도 400여 명의 노숙인이 해마다 모여든다. 최근 그 숫자가 조금씩 더 늘고 있다.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가 있지만 노숙인들은 쉼터에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쉼터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쉼터의 내부 규율을 따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들은 노숙도 주거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노숙인 문제는 해결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저희는 노숙인을 위한 드랍인(drop-in)센터를 운영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노숙인들이 언제나 자신들이 원할 때 들어와서 원하는 만큼 머물다가 갈 수 있는 곳이죠. 현재 노숙인운동의 나아갈 방향이기도 합니다. 다음달에 일본에서 열리는 노숙인 대회에서는 일본의 노숙인이 직접 나와 발표할 예정입니다.”

인권실천 활동가들은 밤마다 노숙인을 찾아 길을 나선다. 이때 사무국장과 활동가들의 차이는 없다. 김승무 사무국장과 권용현 간사는 노숙인이 주로 모여드는 역 대합실, 무료급식소, 공원, 여인숙, 쪽방, 심야만화방 등을 헤맨다. 정확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노숙인들과의 신뢰를 쌓고 무료급식이나 목욕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험한 일도 많았다.

현재는 출산을 앞두고 쉬고 있는 박수미 간사가 하루는 한 노숙인이 휘발류와 라이터를 들고 와 다 불태워버리겠다는 협박을 했었다고 전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그는 노숙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노숙인으로 살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목욕서비스도 말처럼 쉽지 않았다. 평일 저녁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곳에서 노숙인들의 단체목욕을 성사시키기까지 돌아다니지 않은 목욕탕이 없다.

“노숙인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과의 관계입니다. 잘 떠올려보면 우리가 어릴 때 살던 마을에도 그런 분들이 꼭 하나씩 있었어요. 그분들은 대부분 동네사람들의 농사를 돕기도 하고 밥도 얻어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달성공원 근처에 한 노숙인이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어요.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분이 동네청소도 열심히 하고 집은 없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사니까 주민들이 이해하기 시작하더군요. 노숙인도 주민의 한 형태로 지역에서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성매매 여성 문제로 고민중

이들이 대구에서 시작하려는 또 하나의 일은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사업’이다. 대구에도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있는 곳이 몇 군데 있으며 이들이 지역경제에 끼치는 영향도 막강하다. 본격적으로 이 사업을 꾸려나가기 위해 사무실도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많은 일명 ‘자갈마당’에 얻으려고 했으나 상인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현재 업주들은 ‘무의탁여성보호협의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언제나 이모라고 불리는 여성들의 감시 아래 움직이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보건소를 드나들며 서로 얼굴을 익히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이런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인권실천 사람들을 시민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삼승교회 주부들은 매주 모여 노숙인을 위한 음식을 직접 만들고 있으며 150명의 든든한 후원자가 이들에게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1년째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성분 씨는 “내가 내 무덤을 팠지예”라며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인권실천을 통해 깨달은 또 다른 세상을 알아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노숙인운동과 성매매 피해 여성지원사업이 끝나고 나면 지역사회의 또 다른 소외계층을 찾아가겠다는 그들. 인권·실천·시민·행동이라는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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