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0월 2006-10-01   839

다시보는 문화공간 – 공공건축물은 어떻게 지어지는가

예로부터 공공건물은 그 지역의 공간적, 사회적 중심이면서 상징이었다. 과거 유럽에서는 바실리카나 대성당이 그 지역의 공적 기능의 중심이었다면,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에 들어와서는 관공서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각 지역의 중심적 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더구나 도시경쟁력이 과거의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사회권력의 중심인 공공 청사는 지역이라는 특수성과 범세계라는 보편성 사이의 새로운 만남을 정책적으로, 공간적으로 구현할 요구를 받고 있다. 공공청사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우리시대의 표상이다. 따라서 동시대의 최고의 정신과 문화와 기술이 집약된 완성도 높은 건물이 되어야 하며 민간영역에서의 건축적, 사회적 발전을 주도하는 모범적 사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현대의 건축물이 점점 공공성, 개방성, 투명성, 그리고 친근함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인데 우리의 공공건축물은 오히려 점점 더 거대한 욕망의 집결체와도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은 상징성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우리 도시에 만연하고 있는 자기 과시적이고 파편화한 기형적인 구조물의 선두주자이다. 우리 대부분이 공공청사에 대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는 크고, 호화로운, 권위적인, 위압감을 주는, 압도하는, 폐쇄적인, 과장된, 거대주의의, 지역적 특색이 반영되지 못한, 다양하지 못한, 주변과 조화되지 못한, 딱딱한 건물에 머물고 있다.

괴물 같은 공공건물, 부적절한 발주 방식 탓도

이러한 공공건축물이 양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공건축물은 공적 공간의 풍부한 배치로 문화적인 건축이 가능하고, 건축의 새로운 경향과 시도를 담은 개성 있는 건물이 될 수 있으며, 민간건축물을 자극하여 도시풍경을 풍성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왜 우리의 공공건축물은 괴물처럼 되어가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문화적 저변이 풍부하지 못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장본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은 고민 없이 당장의 일차원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온 공공프로젝트 발주시스템에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

일반적으로 공공건축물의 디자인 발주는 가격입찰방식과, 현상설계경기, 그리고 설계시공일괄입찰방식인 이른바 턴키(Turn-Key)의 3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중소규모의 공공건축물에는 단순한 방법인 가격입찰방식이 적용된다. 설계라는 것이 다른 물품과 달리 금액만 가지고 그 내용과 질을 규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설계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조차 없이 전자입찰 등의 방식으로 발주되어 질 낮은 건물을 양산하고 있다.

현상설계경기방식은 문화적으로 기술적으로 완성도와 독창성이 높은 우수한 작품을 심사평가하여 선발하는 가장 일반적인 공공건물 디자인 발주의 방법이다. 그러나 심사위원의 선발방식 및 평가에 대한 공정성 시비, 심사위원 및 심사과정에 대한 비공개, 참여 건축가에 대한 적정하지 못한 보상 등으로 인해 많은 역량 있는 건축가들에게 외면당한 결과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보다는 기능과 현실에 안주하는 작품만이 제안되고 지어지게 되었다. 잦은 심사의 공정성 시비를 겪으면서 이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낙선으로 인해 받을 좌절과 경제적 손실 때문에 공격받기 쉬운 혁신적 것보다 세련되고 무난한 것을 찾는 자기검열이 고착되고 있다.

턴키방식은 설계 및 시공을 일괄로 발주하는 방식으로 대형공사나 기술집약적 공사에 대한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80년대부터 시도되었다. 토목공사 위주로 발주되던 턴키방식은 발주청의 업무가 줄어들고, 분리 발주보다 전체 사업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90년대 들어와 본격적으로 대형 공공건축물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토목 분야에 주로 사용되는 턴키발주 방식이 문화 예술적 성격과 도시의 상징성이 강한 건축물에까지 행정편의적으로 무분별하게 적용되면서 시공비나 공법과 같은 경제적, 기술적 요소가 지나치게 중시되고 디자인의 완성도나 독창성은 묻혀버려 수준 높은 건물을 기대하기 곤란하게 되었다. 실제로 턴키심사의 설계평가지표 및 배점기준의 항목인 계획성, 시공성, 유지관리, 안전성, 경제성, 환경성 등의 평가항목만으로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우리 시대의 삶과 문화를 건물에 어떻게 담아내야하는지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을 읽기도 힘들다.

또한 대형 건설회사들의 턴키 참여는 조직력이 뛰어난 대형설계사무소를 위주로 디자인이 진행될 수밖에 없어 젊고 실험적이고 역량 있는 건축가의 발굴과 성장에 장벽이 되고 있으며, 건실한 중소 설계사무소들의 도태를 초래하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많아도 100명 이내, 평균 20~30명으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어 세계적으로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는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건축은 문화를 표현하는 것

핀란드는 “공공건축물은 모든 시민에게 향유되어야 하는 건물이므로 최고의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공공건물은 반드시 건축설계경기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는 건물은 당연히 그 짓는 방식과 과정 자체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여야만 한다.

“건축은 문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프랑스 건축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짧은 문장 하나는 건축에 대해 프랑스 정부의 정책이 가지고 있는 태도를 설명한다. 파리의 중요한 관광지인 퐁피두센터는 1971년 36세의 젊은 영국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와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파격적인 설계안을 현상설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때 지어진 하이테크 건축은 현대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연 중요한 작품이 되었고, 두 건축가는 현대건축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또한 이 미술관은 명실공히 프랑스 현대 예술과 문화의 요람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뛰어난 건축가의 철학과 이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 가능케 한 공공정책의 결과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건축가와 세계적인 건축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박훈영민족건축인협의회, 아름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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